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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금자씨와 일머리의 미학

by 다몽 박작까

찜질방을 둘러보고 가려는데 카운터 직원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사건이 하나 있어요."


목소리 톤이 심상치 않다. 잔뜩 긴장하며 듣는데 내용은 의외로 '회원권 환불요청'이었다. 어느 손님이 영수증 정리를 하다가 찜질방 회원권 구매 내역을 발견했다는 거다. 그런데 그 손님은 이 동네 사람이 아니고 멀리 산단다. 회원권 산 적이 없는데 회원권 구매를 했으니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결론은 하나. 환불을 해달라는 것.






회원권 구매한 적이 없는데 회원권 영수증을 가지고 있다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확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CCTV를 돌려보려 했지만 하필이면 두 달 전 일이었다. 우리 찜질방 CCTV는 한 달 단위로 덮어쓰이니 이미 흔적은 사라진 뒤였다. 두 달 전 영수증을 이제야 꺼내 드셨다니. 그 꼼꼼함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타이밍이 아쉽다고 해야 할지.


해결하기 힘든 문제였다. 그래서 카운터 직원분들과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해 봤다.


1. 혹시 직원의 실수?

먼저 카운터 직원이 포스기 버튼을 잘못 눌렀을 가능성을 생각해 봤다. '대인 여자' 버튼 근처에 '회원권' 버튼이 아주 가까이 붙어 있다. 혹시 손가락이 미끄러져 잘못 누른 거 아닐까?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회원권 판매는 따로 공책에 기록해 두는데 영수증의 날짜와 시간이 정확히 일치했다. 즉, 실수로 누른 게 아니라 누군가 실제로 회원권을 산 거다.


2. 손님의 착각?

혹시 손님이 헷갈리신 게 아닐까? 가끔 3~4명이 함께 와서 처음엔 개인 요금으로 끊었다가 회원권 사면 만 원이 할인된다는 소리에 다시 결제를 하는 경우가 있다. 손님은 3명이서 같이 왔다고 했고 오전 11시에 갔다고 했다. 영수증은 저녁 6시가 찍혀 있었다. 두 달 전 기억이라면 기억이 왜곡된 거 아닐까? 회원권을 산 게 맞는데 착각한 게 아닐까?


3. 영수증이 바뀐 걸까?

카운터 직원 분 중에 한 분인 금자 씨는 혹시 몰라 앞 뒤 영수증을 확인했다.

앞 영수증 : 남자 1명

뒤 영수증 : 여자 1명

그런데 문제의 손님은 여자 셋이서 왔다고 했다. 퍼즐 조각이 맞지 않았다. CCTV도 확인 안 되고 증거도 확신도 없었다. 이쯤 되면 그냥 환불해 드리고 끝내는 게 마음 편할 수도 있다 싶었다.





그때 금자 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영수증. 혹시 카드 명세서랑 비교해 봤어요?"


그제야 깨달았다. 손님이 들고 온 건 단순한 포스기 영수증이었다. 카드사 내역이 아니라 그저 종이 한 장. 금자 씨는 회원권 결제 내역을 뒤져 카드 종류와 번호 일부를 확인했다. 회원권 결제한 카드는 하나카드. 하지만 손님의 카드는 국민카드였다. 진범은 '앞 손님'이었다. 손님이 실수로 앞사람의 영수증을 챙겨간 거였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회원권 환불이라는 작은 해프닝 하나가 찜질방 안의 균형을 살짝 흔들었지만 결국 금자 씨 덕분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나는 생각했다. 세상에는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그건 단순히 일을 잘한다는 말이 아니다. 일의 맥을 짚는 사람. '무엇이 중요한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사람. 그리고 남이 대충 넘어갈 틈새에서 '이건 좀 이상한데?' 하고 걸리는 감각을 가진 사람. 금자 씨가 딱 그렇다.


그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 같다. 손님이 몰릴 땐 카운터 앞을 누비며 동시에 다섯 가지를 처리한다. 한가할 땐 '이럴 때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다. 창고 정리를 하거나 비품 정리를 하고 포스기 오류를 미리 점검해 둔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냥 '그게 일이라는 걸 아는 사람'. 어쩌면 금자 씨는 일이라는 걸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여기 있다는 증거'처럼 다루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금자 씨가 손이 닿은 자리는 어딘가 단정하고 반듯하다. 그런 사람 옆에 있으면 묘하게 안심이 된다. 내가 잠시 한숨 돌려도 이 공간이 무너지지 않겠다는 확신 같은 것.

요즘 세상엔 일머리보다 말머리가 더 빠른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금자 씨 같은 사람이 더 빛이 난다. 금자 씨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했다.


"금자 씨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현명하게 대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별일 아니에요. 그냥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봤을 뿐입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그냥'이라는 말 안에 얼마나 많은 책임감과 눈썰미. 그리고 일에 대한 사랑이 숨어 있는지. 찜질방 명탐정 금자 씨. 그녀 덕분에 오늘도 이곳은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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