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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떨리는 순간에 대하여

군부대 첫 강의

by 다몽 박작까

행정안전부 보건 안전교육 강사로 등록된 지도 몇 달이 흘렀다. 그런데 연락은 감감무소식. ‘아. 이거 그냥 이름만 올려놓고 실제로 불러주진 않는 거구나. 역시 쉽게 기회가 올리 없지.’ 싶어 서운해질 무렵, 드디어 첫 연락이 왔다. 그것도 문자로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oooo 부대 인사과장 중위 ooo입니다. 강사님 모시고 안전교육 진행하고자 연락드렸어요.”



순간 심장이 요동치며 빠르게 뛰었다. 등록만 해놓고 잊었던 일이 이제 현실이 되려는 듯 보였다. 문제는 그 문자를 하필이면 하루 지나서 확인했다는 거다. 나는 카톡만 쓰지 문자를 안 쓴 지 오래였다. 택배 배송 알림이나 광고 말고는 거의 본 적 없지 않은가. 그날 이후로 문자 알림음을 설정했다. 문자 알림음이라니. 이게 몇 년 만에 들어보는 단어인가. (그 이후로 띠링 울릴 때마다 ‘혹시?’ 하며 심장이 두근댄다.)

급히 답장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답이 늦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어떤 교육일까요?”

“응급처치 교육입니다.”

“제가 할 수 있어요. 편하실 때 연락 주세요.”


그렇게 싹이 트는 듯하더니, 일주일째 회신이 없다. 첫 강의가 이렇게 물거품이 되는 건가 싶어 다시 조심스레 문자를 보냈다.


“응급처치 교육은 다른 강사님이 하시게 된 건가요? 다음 강의 때 꼭 불러주세요~”


돌아온 답장은 의외였다.


“제가 코로나에 걸려 출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다음 주’는 달력이 두 장 넘어간 뒤에야 찾아왔고 강의를 결국 했다. 첫 연락은 그렇게 첫 강의로 이어지지 않았고 두 번째 다른 부대에서 연락이 왔다. ‘드디어다. ’ 싶었는데 며칠 후 문자가 왔다.


“죄송합니다. 부대에서 다른 분으로 선정해서 후반기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군부대 강의란 쉽게 연락이 오는 게 아니었다. 와도 금세 취소되고 취소된 곳에서 다시 연락이 올 수도 있다. (밀당하는 남녀 사이도 아니고) 결국 나의 첫 강의는 한참을 돌아 취소됐던 그 부대에서 연락이 다시 온 덕분에 성사됐다. 드디어 강의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강의 내용에 대해 논의하는데 담당자님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응급처치와 중독에 대해서 해주세요.”

“중독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나요?”

“마약 중독이요.”

“(몇 초 있다가) 아. 네~ 알겠습니다.”


잘 마무리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끊자마자 띠용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생각한 건 식중독, 일산화탄소 중독, 알코올 중독 정도였다. 그런데 마약이라니. 마약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전혀 달랐다. 남편에게 전했더니 시큰둥하게 하는 말.


“마약 중독 강의 해본 적 있어?”

“아니. 없지. 근데 이제 해야지.”

“그럼 일반인이 강의하는 거랑 뭐가 달라?”


남편이 팩트를 날린다.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렇지만 강의 의뢰가 들어왔고 구두계약을 한 이상 내가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어떻게든 전문가가 되는 척하기. 그때부터 마약 관련 자료는 모으고 또 모아 PPT를 만들었다. 멘토 강사님께 조언을 구했더니 “조금은 퍼포먼스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해주셨다. 예를 들면 풍선에 ‘마약은 하지 말자’라고 쓰고 터뜨리거나 종이비행기에 다짐을 적어 날려 보내는 방식이었다. 간호학원에서 시험 문제만 풀던 나에겐 생경했지만 뭔가 새롭고 살아있는 강의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강의 날짜가 다가오자 '군인들 앞에서 이런 걸 하면 너무 유치해 보이지 않을까?' '내가 준비한 걸 과연 흥미롭게 들어줄까?' 하는 불안이 점점 커졌다. 강의를 하는 강의실 구조, 조명, 마이크의 유무, 화면 크기 등을 모르니까 온갖 변수를 예측했다. 급기야 강의 전날에는 초조함을 달래 보겠다고 뜬금없이 매니큐어를 발랐다. 강의 준비와 매니큐어 사이의 인과관계를 묻는다면? 나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강의 당일에는 전혀 떨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날 밤 큰 아들을 데리고 응급실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목을 다쳤는데 동네 소아과 선생님이 목신경 손상일 수 있다며 대학병원에서 MRI를 찍으라고 했다. 순식간에 공황 상태에 빠진 기분이다. 아이에게 계속 어디가 저린지 확인하며 응급실에 데리고 갔다. MRI를 찍고 여러 검사를 거친 끝에 다행히 신경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밤 11시가 다 되어야 집에 돌아왔고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바로 다음 날 아침에 군부대 첫 강의를 갔다. 담당 간부님이 강의 시작 전 주의집중을 도와준 덕분에 군인들도 잘 따라와 주었다. 강의도 잘하고 준비한 퍼포먼스도 잘 마쳤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이렇게 인생은 종종 아이러니하게 흘러간다고. 몇 달을 기다린 첫 강의. 당연히 군인들 앞에서 염소 소리로 떨며 강의할 줄 알았다. 그런데 군부대 첫 강의보다 훨씬 더 떨리는 건 아이가 혹시 반신 마비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였다. 그렇게 긴장의 정점을 찍고 나니 군부대 첫 강의의 떨림은 참 시시했다. 결국 매니큐어 바른 손으로 첫 마약 예방 강의를 한 강사가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인생에서 진짜 떨리는 순간은 강단 위가 아니라 응급실 의자 위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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