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를 교과서에서 배울 땐 그냥 고리타분한 옛말 같았다. 그때는 ‘인생은 변화무쌍하다.’ 정도의 뜻풀이로 외웠다. 막상 살아보니 그게 제일 세련된 진실이다. 수많은 사자성어 중에 새옹지마가 이토록 마음에 와닿는지 이제야 알겠다. 인생이란 게 참 묘하다.
찜질방에서 땀 뻘뻘 흘리며 박반장 노릇하다가, 어느새 간호학원 강단에 서 있는 나. 설마 내가 강의실에서 “여러분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며 강의할 줄 알았겠는가. 뜨거운 한증막이 있는 찜질방과 칠판과 책상이 있는 교실의 아이러니.
사실 찜질방에서 일할 때는 매일이 전쟁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일은 도저히 못 해 먹겠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가족 사업인데 그만둘 수도 없고 또 다음 날이 되면 출근한다. 땀 냄새와 식혜 냄새가 섞인 공기 속에서 하루를 알차게 보낸다. 박반장 하면서 온갖 잡일 다 하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얻은 건 뜬금없는 용기였다. 찜질방에서 박반장을 하며 별별 진상 손님과 해프닝을 겪은 덕분일까. 그때는 이걸 내가 왜 해야 하지? 싶은 순간들도 있었다. 돌아보니 그 모든 게 근력 운동 같은 일종의 훈련이다.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는 역도를 계속 들다 보니 근육이 조금 붙은 기분이랄까. 물론 아직도 무거운 건 싫지만. 묵직한 근육통은 남았지만 덩달아 잔잔한 근육도 붙은 셈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 모든 게 나를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아직도 유리 멘털일 때가 많긴 하다)
그렇게 두 가지 직업을 병행하며 세월이 흘렀다.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는 인생. 찜질방이 휘청해서 간호학원 강사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처음엔 이게 내 길인가 긴가민가했는데 이상하게 욕심이 난다.
간호학원 강의라는 작은 방을 넘어 더 많은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강의하고 싶다. 찜질방에서 다양한 방을 경험해 보고 싶은 기분이랄까? 황토방에서 ‘이 정도가 딱이야.’라고 생각하다가 도대체 사람들은 왜 소금 위에 눕는 건지 의문이 든다. 그러다 결국 제일 뜨거운 불한증막까지 도전하고 싶은 거처럼. 사우나실 문을 열면 김이 확 나오듯 내 인생도 그런 뜨거운 순간들을 계속 열어가고 싶다. 성격도 원래 뜬금없이 도전정신이 강한 편이다. 무모하다고 해도 즉흥적으로 콜을 외쳐버리는 쪽. (20대 때 우연히 현수막에 적힌 ‘전국 그네뛰기 대회’ 보고 정말로 출전했던 것처럼. 그때 예선에서 2등 하고 본선에서 9등을 했다. 결국 상은 못 탔다는 이야기.)
어떻게 하면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을까 고민했다. 흡연 예방 강사, 군 인성 강사 등 다양하게 지원했다. 계속 불합격하던 차에 ‘행정안전부 안전교육 전문인력’을 뽑는다는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생활안전, 교통안전, 자연 재난 안전, 사회기반체계 안전, 범죄 안전, 보건 안전. 6개의 안전분야 중 24개의 영역이 있다. 이 중 내 경력과 맞아떨어지는 세 가지 응급처치, 중독안전, 감염안전 분야에 지원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되면 재밌겠다 했는데 덜컥 합격했다. 행정안전부 소속 안전교육 강사가 되면 보통 군부대에 강의를 간다. 그렇게 갑자기 군부대 강사가 되었다. 찜질방 박반장의 인생에 또 다른 부업이 추가된 셈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막상 군부대에서 강의를 하려니 걱정이 태산. 간호학원에서 3년 가까이 강의를 했지만 군인은 완전히 다른 종족이 아닌가. 그동안 강의했던 수강생들은 대부분 여자였는데 이제는 전부 남자다. 여탕 손님만 상대하다가 갑자기 남탕 손님 앞에 서야 하는 기분. 나는 평생 남자들 앞에서 말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심지어 간호사 시절 산부인과 병동에서 근무해 남자 환자와 마주한 적도 없었다. 그러니 군부대 강의가 떨리지 않을 리가 있나.
이미 지원서 넣고 합격까지 했는데, 엎질러진 물이다. 다시 담을 수도 없다. 그냥 맨땅에 헤딩하듯 부딪혀 보기로 했다. 이은경 선생님이 그러셨다. “글쓰기, 이거 누가 시켜서 하는 건가요?” 맞다. 군부대 강사도 누가 억지로 떠맡긴 게 아니라, 내 의지로 도전한 거다. 이건 내 역량을 키울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첫 강의 일정이 잡혔다.
그날부터는 정신없는 준비의 연속. 강의 관련 교육을 듣고, PPT 만들고, 연습도 하고. 강의하기 며칠 전부터 초조함이 상상 초월로 치솟으면서 신경성 장트러블이 폭발했다. 배속은 부글부글, 머릿속은 뒤죽박죽. 간호학원에서 했던 첫 강의 때 실수했던 기억까지 떠오르며 패닉이 몰려왔다. (팽팽한 긴장감이 있던 첫 강의 내용은 다음 편에 써볼 생각이다.)
한 사람의 아내였다가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고 찜질방 박반장을 하며 간호학원 강사로 살다가, 이제는 군부대 강사까지 겸업을 얹은 사람이다. 공통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지만 이상하게 이 일들이 서로 묘하게 도움이 된다. 버겁고 복잡하고 가끔은 힘에 부치지만 그 덕분에 덜 지겹게 살고 더 많은 도전을 하게 된다. 결국 이 모든 시초는 찜질방 박반장인 거 같다.
앞으로 찜질방 박반장은 또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이라고 부르는 노래 가사처럼 알 수 없는 인생의 연속이다.
인생은 회전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