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의자는 기싸움의 전리품
날씨가 쌀쌀하다. 손과 귀가 시리고 찬 바람이 부는 겨울철이 되면 찜질방은 대목이 된다. 1년 중 손님이 제일 많은 시기다. 추워서 뻣뻣해진 몸을 뜨듯한 탕에 앉아 풀기 좋지.
주말 아침. 매서운 바람이 불고 날씨가 흐리다. 찜질방에 손님들이 몰려 온다. 손님들은 카운터에서 결제를 하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눈치게임이 시작된 거다. 신발을 신발장에 넣고 옷장에 옷을 벗고는 탕에 들어가 제일 먼저 자리부터 잡는다. 빈자리로 보이는 곳에 목욕용품과 바가지 등을 이용해서 '여기 내 자리예요'라고 표시하기 위해서. 언젠가부터 목욕탕의자는 기싸움의 전리품이 되었다. 자리싸움이라는 전쟁에서 빈자리를 발견하거나 타이밍 좋게 일어나는 손님의 자리를 차지하거나. 이럴 땐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기쁘다. 반대로 다 사용 중이거나 빈자리가 없으면 물건 둘 때도 마땅치 않다.
탕에 들어간 손님들의 순환이 잘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쉽지 않다. 좌식 샤워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빈자리는 하나도 없다. 좌식 샤워기를 모두 사용해서 자리가 없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자리만 맡아놓은 사람들 때문에 씻을 자리가 부족하다. 탕에 자리를 잡고는 찜질방에서 찜질을 하다가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어있는 좌식의자는 많은데 막상 사용하려면 다른 사람의 목욕물품이 있어 사용하기 불편하다. 잠깐 써야지 하고 쓰다가 주인이 나타나면 눈치를 보며 나와야 한다.
얼마 전부터 앉을자리가 없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탕에 가보면 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이미 맡아둔 자리라 쓰기 애매해서였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자리를 맡지 말아 주세요."라고 할 수도 없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사소하지만 이용에 불편을 줄 수 있는 큰 문제였기 때문에. 이건 시설 문제가 아니라 손님들이 서로 배려해야 되는 문제인데 배려를 억지로 하게 할 수도 없고.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르니 잘못했다가는 오해가 될 수도 있고.
다른 목욕탕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다들 이런 고충이 있을 텐데 뾰족한 방법은 없는 걸까?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목욕탕 안에 선반을 두는 거였다. 탕 이용 안 하고 찜질방에 한참 있다가 오는 손님들이 목욕바구니를 선반에 올려두면 좌식샤워기의 순환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문제는 위에 문구인데. 자칫 잘못하면 곡해할 수 있어 신중하게 적고 싶었다. 핵심은 자연스레 스스로 느껴 배려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골똘히 생각했다. 이럴 때 글을 잘 쓰는 분들은 적절한 문장이 바로 생각나지 않을까 싶은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며칠을 고민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문구.
탕 안에 놓아야 하니 쉽게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선반을 구입해 직접 조립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모습. 이제 손님들이 이걸 이용해주시는게 관건인데. 과연?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 한동안은 아무도 이용하지 않았다. '역시 쉽지 않겠구나.' 싶었다. 홍보가 잘 안 된 걸까 싶어 저 문구를 작게 만들어 좌식샤워기 중간중간에 붙여봤다. 며칠 뒤 선반에 목욕가방이 1~ 2개씩 놓아지더니 이제는 4단 선반이 꽉 찰 정도로 올려져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억압적인 방식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연스럽게 자리 순환이 되게 하고 싶었다. '자리를 맡아두지 마세요.'라는 강압적인 말로는 해결이 안 되었겠지. 이 정도면 대성공이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너무 뜬금없는 선포에 황당하기도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 입장도 이해는 간다. 예산이 삭감되고 국정이 마비되고 계속되는 탄핵 등의 문제로 국가가 흔들렸을 테니. 그렇다고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정치적 안정과 국정 운영을 위한 조치로 '계엄령 선포'라는 극단적이고 강압적인 방법 밖에 없었던 걸까? 계엄령 사태는 세계적으로도 큰 이슈라 외교문제도 생기고. 일반 시민이라 정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관심을 크게 두진 못했지만 이건 아녔다는 생각이 든다.
동화 '해님과 바람'도 생각난다. 강제로 바람을 불어 옷을 벗기려 하지 말고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들게 했어야 했는데. 물론 누구나 알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건 아닐 테지만. 대통령의 자리가 정말 쉽지 않은 자리인 것 같다. 앞으로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대통령이 나왔으면 하고 바래본다.
더불어 찜질방 안에서도 손님의 입장과 눈으로 바라보며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게 더욱 노력해야겠다.
“점잖고 다정함이 노함이나 강제보다 언제나 더 힘이 세다.”
동화 [해님과 바람]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