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물건은?
"지금 여탕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해서요. 경찰 불렀어요.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찜질방 카운터에서 날아온 전화 한 통. 그 말 한 마디에 나는 반쯤 마른 머리와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으로 번개같이 달려 나갔다. 아니, 화장실도 못 가고 뛰쳐나왔다는 게 더 정확할까.
"무슨 일이에요? 여탕에 어떤 도난 사건이 났다는 거예요?"
"화장품이래요. "
"......화장품이요?"
화장품이라니. 핸드폰이나 지갑, 목걸이 등은 들어봤어도 화장품은 처음이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 화장품 인덱스를 돌리기 시작했다. 에스티로더 갈색병? 혹은 샤넬 르 리프트 나이트크림? 아니면 SK-II 피테라 에센스 한정판? 아무리 봐도 경찰까지 부를 급이면 최소 '씨가 말랐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하이엔드 뷰티 제품이어야 한다. 이 정도면 이미 내 통장으로는 구경조차 힘든 계급의 물건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경찰이 도착했다. 남자 경찰 두 명이었다. 여기서부터 이미 상황은 슬쩍 비껴가기 시작했다.
'오 마이갓. 여탕인데요? 아무리 도난이라지만 여긴... 여.탕. 이요.'
황급히 남자 경찰분들께 탈의실이라는 CCTV없는 프라이버시의 심장부임을 설명했다. 그러자 지구대에 여자 경찰분을 요청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그 사이 손님은 펄펄 뛰기 시작했고, 나는 점점 멘탈이 탈의실 바닥 타일 사이로 스멀스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드디어 도착한 여자 경찰관과 함께 사건의 중심, 그 한가운데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실장인데요. 화장품을 잃어버리셨다면서요?"
그 순간, 손님이 말했다.
"범인 알아요."
".......?"
고개를 갸웃하기도 전에 쐐기를 박는다.
"청소 아줌마가 가져간 게 확실해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동공이 동시에 흔들렸다. 심지어 선풍기 바람도 멈춘 것 같았다.
그녀의 논리는 이랬다. 화장품을 바구니에 넣어 두고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청소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화장품이 사라졌고, 그러니 청소 아주머니가 훔쳐간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디에 숨겼는지도 안단다.
"드라이기 밑에 있는 하부장 안에 숨겨놨어요. 거기 열어보세요!"
그 말에 청소 이모님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꾹 참고 말했다.
"내가, 살다 살다, 별 억울한 일도 다 겪네. 하부장 다 열어봐요. "
결국 전 직원과 경찰, 손님까지 탈의실에서 하부장 탐사대가 되었다. 마치 탐정이 된 것 처럼 하부장의 구석구석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드디오 드러났다. 손님의 잃어버린 '귀한 보물'의 실체.
"아모레퍼시픽 하얀색 샘플이요."
"......샘플이요?"
그 순간, 세상이 정적에 잠겼다. 정확히 말하면, 누구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한 진공의 5초가 흘렀다. 마치 장중한 클래식이 끝난 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 그 정적처럼.
그렇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대중 브랜드 샘플 하나가 사라졌고, 그 샘플은 청소 이모님이 훔쳐간 게 확실하다는 주장이 경찰을 부르게 했다. 그 주장엔 어떤 물증도 없었고, 결국 그 샘플도, 아무데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격앙된 손님은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았고 고성이 오가며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청소 이모님은 "그게 뭐라고 내가 훔쳐가요?"라는 말을 무려 두 시간 동안 가슴에 품고 있다가 끝내 뱉었다. 경찰분들은 "화장품 샘플 하나 때문에 사람을 잡아갈 순 없습니다."라는 법과 상식이 담긴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 흥분이 도저히 가라앉을 것 같지 않던 손님은 경찰분들의 끊임없는 회유 끝에 겨우 진정되었다. 지칠만한데도 끝까지 평정심을 찾는 경찰분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경찰분들이 집에 모셔다 드린다고 하고 데리고 갔다. 그렇게 아모레퍼시픽 샘플 실종 사건은 막을 내렸다.
드라이기 밑에 있는 하부장 그 어디에도 손님의 화장품인 아모레퍼시픽 샘플은 나오지 않았다.
뒤늦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 손님은 조현병을 앓고 계셨다고 했다. 망상과 의심이 심해, 가족들도 돌보느라 많이 지쳐 있었다고.
그 얘기를 들으니 문득 생각했다.
"진짜 잃어버린 건 샘플이 아니라 신뢰였겠구나."
사건이 있고 며칠 후 어떤 손님의 목욕바구니에 하얀색 아모레퍼시픽 샘플을 발견한다. 이제 그걸 볼 때마다 그 손님이 생각나겠지. 어떤 일이든 세상에는 샘플 하나로도 경찰이 출동하고, CCTV 없는 공간에선 누구도 쉽게 의심을 받는다. 가장 억울한 사람은 말조차 삼켜야 하는 그런 날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아무 일 없던 평범한 날의 샘플조차 작은 평화처럼 느껴진다는 것도.
대한민국 경철, 청소 이모님, 그리고 잃어버린 마음의 조각에게.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그나저나 그 하얀 아모레 퍼시픽 샘플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