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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Jul 31. 2024

기계실 드나드는 여자

 

 건물에 들어갈 때 '기계실'이라고 쓰여있는 문은 절대 열지 않았다. 앞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쓰여있어 금지 구역이라 여겼다. 들어갈 수 없으면 호기심 생기기 마련인데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건드릴 수 없는 공간이었으니까. 찜질방에도 기계실이 여러 개 있다. 항상 남편이 드나들며 관리를 한다. 여탕관리자 박반장이 되어 수도꼭지 고치기, 옷장 고치기, 하수구 뚫기 등 다양한 일을 시도했지만 기계실만큼은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지금은 거의 매일 기계실에 드나든다. (남편이 쳇 하겠지. 그렇다면 정정해야겠다. 매일 아니고 자주 빈번하게) '기계실'이라고 쓰인 푯말이 있는 곳에 드나들 때 묘한 기분이 든다. 중요한 곳이라 잠겨있는데 열쇠를 열 때 왠지 모르게 희열을 느낀다. 기계실에 보통 여자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는 편견 때문인지. 여자들이 쉽게 들어가지 않는 공간을 들어간다는 우월감(?)이 든다. (우월감을 느낄 일인가 싶지만) 남들 못하는 거 해서 기분 좋은 청개구리 심정이랄까?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일을 하고 결국 해내면서 성취감이 생겼다. 기계실에 호기심이 생긴 건 그때부터였다. 공구치 인데 공구를 다루게 된 것처럼 기계들도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 따라 처음 기계실에 갔을 땐 큰 충격이었다. 무지막지하고 커다란 기계들을 보고 중압감이 들었다. 각종 기계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웨에에에에엥. 띠 띠디 띠 띠디 띠디디. 삐이이이이삐이이이 이이. 데에에에에에에에엥. 차치치이이익칙. 철철 철철 철. 쏴아아아아쏴아아아아아. 푸쉬이이이이이이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소리들이 소음으로 느껴졌다. 크기도 크고 모양도 생소한데 굉음까지 내니까 괴물 같았다. 게다가 지하실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났다. 이런 이유로 기계실에 들어가기 살짝 겁이 났다. 들어간다 해도 기계들을 조작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기계실의 '기'자도 모르는 기계 치니까. 대학 갈 때 간호학과와 컴퓨터학과에 붙었는데 기계치라 고민 1도 안 하고 간호학과에 갔다. 집에 있는 가전제품 다룰 때도 버벅거린다. 맨날 사용하던 거 말고 다른 버튼을 눌러보다 세탁기가 고장 난 적 있다. 남편은 버튼 만으로 기계가 고장 나는 게 더 신기하단다. 여하튼 이렇게 기계치인데 큰 기계들을 잘못 건드렸다 망가지기라도 하면? 대형사고니까 더 두려웠다.

 



 기계실에는 큼직 큼직한 기계들이 많이 있다. 그 기계들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있다. 알면 알수록 느끼는 건 지금껏 내가 일한 건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거다. 대어는 못 낚고 잔챙이들만 잡아보고 있었다. (여탕은 잔챙이 잡기도 중요하지. 암 그렇고 말고) 이 큰 기계들이 찜질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나니 남편이 다시 보였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들을 애송이처럼 느꼈나 보다. 기계들의 원리를 알고 싶었다. 원리를 알아야 큰 맥락을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남편에게 끊임없이 집요하게 물어봤다. 남편은 자세히 설명해 줬지만 알아듣기 어려웠다. 전공도 아니고 기계에 관해 순백의 뇌인지라 도통 뭔 소리인지. 그래도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이해 가는 것들이 생겼다. 기계실에 들어갈 때 드는 거부감도 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음으로만 들리던 각종 기계소리들이 저마다 '우리 각자 제 할 일 잘하고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크게 물 트는 기계, 물 온도 조절 기계, 난방기계가 있다.



 일단 물 트는 기계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당연히 나오는 거 아니었나? 결코 아니었다. 물은 아주 커다란 물탱크에서 조절하는 거다. 목욕탕뿐 아니라 건물도 큰 물탱크가 있어 조절한다. 그래서 손님들이 많아 물을 많이 쓰면 기계실에 있는 물탱크에 물 수위를 올려 줘야 된다. 제때 물수위를 올려주지 않으면 물이 바닥나 버리므로 그땐 정말 비상이다. 병원에서 보자면 CPR 상황. 진짜 초 비상사태. 물장사에서 물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언제 어느 때 물 수위가 떨어질지 모르므로 항상 주시한다. 방법은 제일 간단하다. 팔뚝만 한 밸브를 올리고 내리는 거다. 단순하지만 물 조절은 물수위를 보고 손님들이 몰리거나 탕 청소를 할 때 등 상황을 주시하면서 하는 거라 신경을 바짝 써야 한다. 그래서 찜질방 관리하는 사람들은 어디 멀리 가지 못한다. 족쇄처럼 발목이 묶여있다. 연중무휴 24시간 동안 언제 어느 때 물 수위가 떨어질지 모르니. 멀리 가면 불안하다. 언제 무슨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마음 편치 않다.


 두 번째로 물 온도 조절 기계다. 온도 조절도 중요하다. 일정한 수준의 물 온도를 맞춰야 수도꼭지에서 물을 틀 때 적절하게 나온다. 이걸 맞춰주지 않으면 틀었을 때 따뜻한 물 쪽으로 올려도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수시로 물 온도를 체크하며 온도를 맞춰 줘야 한다. 이건 위 사진에서 파란 기계에 버튼을 조작해서 조절한다. 급수온도, 출수 온도, 폐수 온도를 수동으로 맞춰서 물 온도를 조절한다. 수동으로 맞출 때 온도는 남편이 판단한다. 이건 오랜 경험으로 배운 거라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다. 지시 대로 버튼 조작만 하는데 계속하다 보니 처음보다 감이 생기지만 그래도 어려운 부분이다.


 세 번째로 난방기계다. 물 온도뿐 아니라 탕이나 공용실, 탈의실 바닥의 온도 조절도 중요하다. 찜질방 하면 희뿌옇고 따뜻한 탕 안으로 발가벗고 들어가도 춥지 않은 훈훈함이 있어야 한다. 이런 따뜻함을 조절하는 기계다. 특히 겨울철에는 춥기 때문에 온도에 더욱 신경을 쓴다. 이것도 수동으로 온도를 맞추기에 남편이 판단해서 알려준다. 그러면 버튼을 조작한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기계가 있지만 다 알지 못한다. 그래도 이 세 가지는 할 수 있어 남편이 하는 일을 도울 수 있다.






 기계실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이 있었다. 배우고싶지 않기도 배우고 싶기도 했다. 처음에는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기계치여서가 아니었다. 진짜 속마음은 '그 일도 내 일'이 될 까봐였다. 원래 일 잘하는 사람의 비애는 일복이 많다는 거 아니겠는가. 일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워커홀릭도 아니고 일이 많아지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스트레스 너무 받고 있는 남편을 도와주고 싶었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남편이 많이 힘들어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보며 찜질방 관리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 선택의 무게는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수시로 이벤트가 생기고 변화가 생기고 대처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각 분야 별 전문가들이 해결할 수 있을 법한 일들이 빵빵 터지는데 빠르게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래서 나도 기계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그를 도우고 싶었다. 내가 기계실에서 배운 저 3가지 기계 덕분에 남편이 자유가 생겼다. 족쇄처럼 묶여있어 찜질방 주변만 배회해야 했던 남편에게 날개가 생겼다.

 




 연중무휴. 24시간 돌아가는 찜질방에서 일하는 것은 참 고단하다. 끊임없이 기계들이 노후되고 고장 나고 변수가 생긴다. 아직도 모르는 게 매우 많지만 기계실에 드나들면서 남편의 고충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대어와 잔챙이를 생각하며 남편의 고군분투함을 높이 사게 된다. 전달하는 입장과 해결해야 되는 입장은 천지차이니까. 작은 부품이나 단순한 기계조작이 아닌 큰 기계들을 조작하는 남편의 노고를 알면서 위안도 생겼다. 나도 힘들지만 남편이 더 힘들겠다는. 그래서 나는 할 만한 거라는 안도감. ('네가 더 힘든 것 같으니, 나도 참아 볼게. 그리고 도울게.'라는 말을 이렇게 빙빙 둘러한다)


 훈훈하기만 한 건 아니다. 이제 내가 참견이 생겼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보니 여러 가지 이견이 생기고 잘 알지 못하지만 의견을 얘기한다. 남편의 머릿속에 이런 속담이 떠오를 것 같다.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체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그러기나 말기나. 기계실 드나드는 박반장은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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