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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Dec 02. 2024

밤 12시에 냉탕출입


"으아아아아악. 이렇게 차가운데 지금 냉탕에 들어가라고?"


냉탕에 들어갈 때 발 끝만 닿아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차가움에 온몸이 찌릿해지는 기분이 싫다. 사우나하고 땀을 폭 내면 냉탕 물이 시원하다는데 아무리 더워도 냉탕에 들어가지 않았다. 좋아하지도 않아 들아갈 일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당장 들어가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자정이 넘은 이 시간에.


  요 근래 냉탕 물의 수위가 자꾸 내려갔다. 냉탕 물의 수위는 원래 조금씩은 내려간다.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물이 넘치게 되기 때문이다. 파도풀이나 폭포 같은 버튼을 누르면 물이 넘실넘실 대다 수위가 내려간다. 그런데 며칠 사이는 매우 심하게 떨어졌다. 이상을 감지했지만 도통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냉탕 안에 타일이 깨진 부위가 있나? 타일 사이에 빈틈을 메워주는 줄눈이 빠졌나?'


 며칠 전 냉탕 물이 비워졌을 때 샅샅이 확인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는데 자꾸 냉탕 물 수위는 떨어지니 매우 답답했다. 냉탕은 여탕 중에 최대 규모라 물도 많이 들어간다. 물세가 한두 푼이 아니기에 이유를 빨리 찾아야 한다.






 여탕 안에 냉탕이라 혼자 골똘히 생각하며 원인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결국 여탕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탕 손님이 없는 밤 12시에 남편과 함께 들어갔다.


남편도 이리저리 살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나에게 말을 했다.


남편 : "지금 냉탕에 들어가 봐. "

나 : "지금? 물이 이렇게 깊은데? "

남편 : "(여기 여탕인데) 내가 들어갈 수는 없잖아."

나 : "옷 벗고? "

남편 : "……그건 알아서 하고. "


 물 수위가 떨어졌다고 해도 깊이가 꽤 있어 엉덩이 정도까지였다. 그렇다고 옷을 벗고 들어가자니 너무 춥기도 민망하기도 했다. 남편 앞이고 남편과 나와 탕청소 이모밖에 없는데도 공공장소이니 괜히 부끄러웠다. 찜질복을 입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 바지만 걷어 들어갔다. 바지를 팬티모양으로 만들어 까치발을 하고 천천히 들어갔다. 발 끝에 차디찬 물이 닿자마자 소름이 쫘악. 냉탕 물은 추운 겨울철이 되면 훨씬 더 차가워진다. 안 그래도 추위 많이 타는데 닭살이 돋고 털이 바짝 솟는다. 종아리까진 어떻게 들어가겠는데 무릎이 지나자 시큰한 느낌이 든다. (나이는 못 속여~ ) 허벅지에 닿자마자 '으으으윽' 곡소리가 절로 난다. 바닥까지 들어가니 까치발을 들어야 겨우 팬티모양이 된 바지가 젖지 않을 정도다.


 냉탕 안에 물 빠지는 구멍과 파도가 나오는 구멍에서 물이 빠지는 느낌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가만히 있어도 힘든데 까치발을 하고 조심조심 발을 내디뎠다. 내딛을 때마다 바지가 젖는 느낌이다. 결국 엉덩이 부분이 다 젖었다. 바지와 팬티까지 젖고 나니 무념무상. 상의라도 젖지 말자 생각하며 여기저기 확인하였다. 파도풀 구멍은 이상이 없었다. 냉탕 물 빠지는 구멍을 확인하는데 뭔가 물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구멍을 발견한다.


'여기구나! '


 분명 탕 청소 이모가 여기 확인해 보시고 괜찮다고 했었는데. 꼼꼼히 보지 않으셨나 보다. 역시 직접 확인해봐야 한다. 물이 세는 위치는 찾았지만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마개를 열어봐야 한다. 마개 여는 것도 쉽지 않다. 탕에 물이 가득 차 있으니 수압이 세기 때문이다. 탕 마개 빼는 갈고리로 열심히 열어보는데 잘 되지 않는다. 5분 정도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전문가가 나섰다. 탕 청소 이모님이 빼주셨다. 마개를 겨우 열어보니 마개에는 이상이 없다. 며칠 전 새 마개로 바꿨던 거라 이상이 있을 리 없다. 남편이 다른 탕에 있는 마개를 살피더니 마개가 껴지는 부분 아래 바닥에 있던 고무링을 확인한다. 냉탕은 그 고무링이 빠진 모양이다. 그래서 그렇게 물이 빠졌나 보다. 어떻게든 틈을 막아야 한다. 어설픈 걸로 잘못 막으면 하수구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하수구가 막히기 때문에 그때는 더 큰일이다.


'어떻게 하지?'





 남편이 폴리에스테르 재질의 두껍고 마개보다 조금 큰 지퍼백을 가져왔다.  마개 아래 지퍼백을 넣고 마개를 닫으라고 했다. 말은 간단한데 실제는 간단치 않다. 물이 없는 상태였다면 간단했을 텐데. 물이 빨려 들어가는 압이 워낙 세니 어렵다. 잘못해서 지퍼백이 빨려 들어가면 초비상 사태가 돼버린다. 상의만은 젖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젖을 수밖에. 이제는 온몸이 들어간다. 잠수까진 힘들지만 거의 목까지 들어가야 작업을 할 수 있다. 잠수를 못하니 볼 수도 없고 감각에 의존하여 지퍼백을 깔면서 바로 마개를 닫아야 한다. 냉탕에 오래 들어가 있으면 차가운 온도에 적응할 만도 한데. '으으으윽' 소리가 절로 난다. 어금니 꽉 깨물고 참아본다. 급박한 상황인데 머릿속에는 1박 2일이 떠오른다. 1박 2일 속 예능인들은 겨울철 게임을 통해 차가운 물에 입수하는 벌칙을 받는다. 벌칙 받던 연예인분들의 노고가 느껴지면서 새삼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는다. 그러는 사이 상의 옷이 다 젖어서 물에 빠진 생쥐가 된다. 이럴 거면 옷을 벗고 들어갈 걸 그랬나.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들어갈 걸 그랬나. 별 생각을 다하면서.

 

 며칠간 냉탕 물 수위가 뚝뚝 떨어져 걱정이었던 일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나중에 고무링이 올 때까지는 다른 마개로 물을 빼기로 했다. 전날 강의 준비한다고 3~4시간 밖에 못 자고 피곤했는데 하루가 아주 길게 느껴진다. 하~아~. 하품을 쩍쩍하면서 생각한다.


'찜질방 일이 밤에 많이 작업해서 다행이야. 그러니까 N잡이 가능한 거겠지.'


찜질방 내에서도 밖에서도 N잡러인데 경험치가 늘어나는 기분이 싫지 않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나면 파워 업그레이드 된 무기를 장착한 느낌이랄까? 더 극강의 힘듦이 오더라도 여러 경험치가 쌓여 덜 힘들 것 같달까? 이런 생각이 들며 오늘은 두 다리 뻗고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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