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졌다. 손과 귀가 얼얼할 정도로 찬 바람이 부는 날이면, 찜질방은 본격적으로 대목이다. 한겨울 찜질방만큼 잘 되는 곳은 아마 감기약 말고는 없을 거다.
주말 아침. 날씨는 흐리고 바람은 매섭고 손님들은 몰려들어왔다. 모두가 안다. 오늘도 좌식 샤워기의 눈치게임이 시작됐다는 것을. 카운터에서 티켓을 끊고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그리고는 바로 돌진. 목욕바구니를 들고 샤워기 앞으로 간다. 비어 있는 의자를 보면 본능적으로 바가지, 수건, 린스통, 샤워볼, 심지어 헤어핀까지 총동원해서 "여기 내 자리에요."를 온몸으로 외친다. 언제부턴가 목욕탕의자는 기싸움의 전리품이 되었다.
그 자리. 내가 막 찾아 앉았는데 "거기 제 자리예요."라는 말이 들려오면 그냥 몸만 민망해지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애매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그래. 이 자리는 목욕의자가 아니라 작은 영토였구나..." 문제는 이 '점령'이 탕 안에 이는 동안만 유지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찜질방으로 한참 가 있다가, 나중에야 돌아와서 "어머 아직도 내 자리네~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동안 그 자리는 비어 있지만 비어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비어 있다. 그러니까 이건 '거짓 빈자리'다.
얼마 전부터 민원이 계속 들어왔다.
"왜 자리가 없냐."
"왜 자리 맡아 놓은 걸 안 치우냐."
... 사실, 저희도 모릅니다. 그걸 막으려면 "자리 맡지 마세요." 같은 팻말이라도 붙여야 하나 싶었지만 그건 뭔가 찜질방의 평온한 분위기에 초를 치는 느낌이었다. 고민이 시작 되었다. 사소하지만 이용에 불편을 줄 수 있는 큰 문제였기 때문에. 이건 시설 문제가 아니라 손님들이 서로 배려해야 되는 문제인데 배려를 억지로 하게 할 수도 없고.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르니 잘못했다가는 오해가 될 수도 있고.
고민 끝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선반. 그렇다. 모든 전쟁은 결국 수납에서 시작되고 수납으로 끝난다. 샤워기 옆에 선반을 두면 잠시 찜질방 가 있을 때 바구니를 거기 올려두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의자엔 누구나 앉을 수 있고. 순환이 생기고. 평화가 돌아오고. 목욕의자의 민주화.
문제는 문구였다.
"여기 바구니 올려주세요."는 너무 명령조고
"혹시 가능하시면"은 너무 약하고
"맘껏 앉으세요."는 또 너무 막 나간다.
며칠을 고민했다.
문장 하나에 너무 큰 꿈을 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무 말도 없이 두긴 또 섭섭했다. 핵심은 자연스레 느껴 배려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골똘히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문구.
이제는 선반을 준비해야 했다. 탕 안에 놓아야 하니 쉽게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선반을 구입해 직접 조립했다.
스테인리스 4단 선반. 직접 조립하면서 몽키를 돌릴 때, 어디선가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싶은 허무함도 있지만 그러니까 내가 박반장이지 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모습. 이제 손님들이 이걸 이용해주시는게 관건인데. 과연?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 처음 며칠은 0건. 한동안은 아무도 이용하지 않았다. 선반은 말 그대로 그냥 '선'과 '반'일 뿐이었다. 기능도 목적도 없었다. 나는 "역시 한국은 계몽이 쉽지 않다."고 체념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작은 문구 스티커를 좌식의자 옆에 하나씩 붙여봤다.
며칠 뒤. 하나, 둘. 선반 위에 바구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어느 날은 4단 선반이 풀장착된 걸 보았다. 나는 그날, 진심으로 '풀방의 행복'을 느꼈다. '자리를 맡아두지 마세요.'라는 강압적인 말로는 해결이 안 되었겠지.
얼마 전 뉴스에서는 대통령이 갑자기 계엄령을 선포했다. 너무 뜬금없는 선포에 현실감이 없었다. 아니, 이런 것도 21세기 한국에서 가능한 일이었나? 정치에 무심한 편인 나조차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해님과 바람' 이야기가 떠올랐다. 강제로 바람 불어 옷을 벗기려는 대신, 햇살로 천천히 따뜻하게 만드는 방식. 물론 해님의 인내는 어마어마한 수준이겠지만. 강제와 억압의 결과는 늘 불신과 반발만 남긴다는 걸 우리는 늘 너무 늦게 깨닫는다.
찜질방 운영도 결국 똑같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로는 사람 마음이 안 움직인다. 작은 불편을 해결하려다 오히려 큰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내가 좋은 의도로 만든 게 "서비스 왜 이래요."라는 말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오늘도 선반 위에 바구니가 하나 둘 올라가고 있다. 누군가는 선반을 보고 "이걸 누가 쓰겠어?" 하고 지나갔겠지만 지금은 자리 하나 없이 다 찼따.
강제보다 배려. 지시보다 제안. 계엄령보다 선반.
오늘도 찜질방의 평화는 그렇게 지켜지고 있다.
“점잖고 다정함이 노함이나 강제보다 언제나 더 힘이 세다.”
동화 [해님과 바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