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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Oct 22. 2024

베테랑 2 볼 운명이 아닌 부부


"베테랑 2 개봉했대. 보러 가자."


 남편은 영화 개봉하기 전부터 보고 싶어 했다. 계속 같이 가자고 졸랐다. 영화 보는 걸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지만 왠지 보기 싫었다. 벌려 놓은 일이 많아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서 그랬다. 그리고 내 취향도 아닌 영화를 보는 게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계속 보고 싶어 했다. 인스타에 누가 영화 본 인증이 올라오면 나만 안 봤다는 둥 누구 때문에 못 봤다는 둥 영화 보는 게 뭐 그리 어려워서 못 가냐는 둥. 제대로 삐짐을 표출했다. 어쩔수 없이 영화 보자고 했을 땐 이미 마음 상해서 됐다며 삐침이 오래갔다.


 남편과 화해해 다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애들 재우고 심야 영화를 볼 계획을 세웠다.


 '지난 번에 안본다고 튕겨 투닥거려서 미안했는데 만회 해야지. '


 그렇게 영화를 예매했는데 결국 취소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발목을 잡는다. 맨날 건강한 둘째인데 갑자기 뜬금없이 열이 나기 시작한 거다. 열나는 아이 잠들고 심야영화를 보러 갈 수 없지. 그렇게 '베테랑 2' 영화랑은 인연이 닿지 않았다. 영화관에서 볼 팔자가 아닌가 보다 하며 넷플릭스 개봉하면 보나 싶었다.


 그런데 다시 영화를 볼 나이스한 기회가 생겼다. 애들이 고모와 고모부랑 놀다가 고모네 집에서 자고 싶다고 한 것. '역시 우리 애들 효자다 효자.' 속으로 야-호를 외쳤다. 오랜만에 부부가 둘이 데이트할 기회가 생겼다. 그렇게 모처럼 데이트를 즐겼다. 역전할머니 가서 라볶이에 짜파구리를 시켜 생맥 한잔하고 밤길을 산책도 하면서. 심야 영화가 좋다는 남편의 취향 따라 밤 11시 5분으로 예매했다. 그렇게 영화관에 도착해 괜히 인형 뽑기도 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이제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다녀와 영화관에 들어가자 했는데 갑자기 가게에서 전화가 왔다.






직원 : "지금 여탕에서 손님 한분이 신발장이 안 열려 못 나가고 있어요. 마스터키를 해도 안 열리네요. 손님이 화내고 난리 났어요."


 영화 보기 딱 5분 전이었다. 아이 C가 절로 나왔다. 하필 타이밍이 진짜 그지 같다. 아까 여유 부릴때 연락왔다면 차라리 좋았을텐데. 차가 있었다면 후딱 가 해결하고 보는 건데. 산책하며 간다고 옆동네까지 걸어서 온 거라 도로 걸어가야 했다. 그렇게 할인 없이 예매한 28000원이 날아갔다. 영화도 못 보지만 아까 여유롭게 걸으며 산책했던 길을 이제는 빠르게 뛰다시피 갔다. 차로는 10분. 걸어서는 30분 되는 거리인데 야밤에 택시도 안 다니는 동네라 뛰어갈 수밖에. 남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어렵게 어렵게 보게 된 영화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 나도 속상했다. 오늘만큼은 영화봐야지 했는데.






 사실 찜질방에서 일하면서 마음 편히 영화를 본 적이 별로 없다. 손꼽을 정도. 가게가 평안하고 조용해 영화를 예매한 건데  보다가 전화가 오거나 가봐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끝까지 못 보는 운명인가. 아이들이랑 쿵푸판다를 보러 갔을 때도 가게에 하수구가 막혔다는 연락이 와서 나만 빠져나왔다. 최근에는 개봉한 와일드 로봇도 마지막에 가게에서 연락이 와서 끝은 제대로 못 보고 바로 가게로 튀어갔다. 24시간 연중무휴 자영업의 비애. 영화관에서 제대로 본 것보다 보다가 도중에 전화 오거나 가봐야 해서 못 본 게 더 많을 정도다.


 그렇게 한밤중에 달리기 해서 가게에 갔다. 걸어서 30분 거리를 15분 만에. 그런데 15분을 못 참고 손님은 화를 내며 직원용 슬리퍼를 신고 집에 갔단다. 자신의 운동화를 퀵으로 보내라고 화내면서. 15분만 참지 라고 생각하다 15분도 기다리려면 길게 느껴지겠지 한다. 손님의 짜증과 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달밤에 힘들어도 꾹 참고 열심히 달리기 해서 왔건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영화 볼 걸 그랬나. 어차피 택배는 주말 지내고 보낼 수 있는데. 아니면 천천히 걸어 올 걸. 속상하니 유치해진다.

 

 어찌 됐든 신발장을 확인한다. 하필 안 열리는 신발장은 꼭대기에 있는 거다. 작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갔다. 비상시를 대비해 가지고 있던 마스터키로 열어보는데 키가 먹통이다. 이유를 알 수 없어 황당하다. 혼자 감당 안 돼서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여탕 출입구를 잘 막고 남편이 신발장을 열었다. 남편이 해도 안 열리는 상황. 계속해도 안 열려서 어쩔 수 없이 신발장을 뜯었다. 뜯는 것도 쉽지 않아 어렵게 뜯었는데 허무했다. 신발끈 때문이었다. 신발끈의 왕리본이 신발장 걸이와 맞물리면서 꽉 끼어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마스터키로도 안 열리는 거였다. 손님이 맨 꼭대기에 신발을 넣느라 고리가 걸린 줄도 모르고 잠그셨나 보다.


  손님에게 전화해 상황을 전달드렸다. 신발장 문제라고 생각해 화가 났던 손님은 자신의 운동화끈 때문이라는 소리에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가까우면 직접 드리려고 주소가 어디냐고 물어보았는데 멀리서 오셨단다. 먼 데서 오셨는데 그런 일 겪었으니 흥분할 만도 하지. 월요일에 얼른 우체국에 가서 퀵으로 보내드렸다.




  해프닝이 일단락되었다. 영화를 예매하고 시간에 맞춰 보는 게 뭐 그리 어려운 거라고. 영화도 마음 편히 못 보는 우리 부부는 언제쯤 편안히 볼 수 있을까 싶다.


  우여곡절 끝에 며칠 전 드디어 봤다. 영화 '베테랑 2'. 이번에도 못 보면 평생 보지 말자고 하면서 초연한 마음이었다. 그만큼 불안 불안했다. 다행히 영화 보기 드디어 성공. 진짜 눈물겨운 영화 보기다.


 다음에는 남편이 영화 보러 가자고 할 때 내 취향 아니래도 얼른 나서야겠다. 우리는 영화를 언제 못 보게 될지 모르는 부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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