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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조각들 그림이 되다
04화
남의 집을 훔쳐보다.
by
차고기
Aug 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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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버릇이 생긴 건 이사하고부터다.
자꾸 남의 집을 엿보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머릿속에서는 외치고 있었지만
,
어느새 나는 커튼을 살짝 젖히고 있었다.
처음이 무섭다고 한 번 시작한 일은
멈
출 줄 몰랐다.
햇살이 좋아 창밖을 내다보다가도, 커피 한 잔 들고 어슬렁 거리다가도 어김없이 내 시선은 창밖
.
그 집으로 향했다.
높다란 장벽을 세우기라도 한 듯 전면을 다 가린 그 집. 하지만 31층
우리 집에서
그 집은 손바닥 안에 있
었
다. 좁은 틈으로
도
모든 것이 가늠되었다
.
그 집.
새벽부터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나는 억지로라도 잠을 깨우기 위해 커피
수혈이
필요
한
시간이다. 나와는 바이오 리듬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
그 시간.
폭우가 쏟아져도, 요즘 같은 폭염에도
.
그 집 사람들은 정말이지
똑
같은 시간에 약속이라도 한 듯 움직인다. 그들을 바라보며 괜스레 내 몸을 움직거려 본다.
딱 하루.
그들에게도 '쉼'을 실천하는 날이 있다. 일요일. 딱 하루. 그날만큼은
신기하리만치
고요하다. 그렇지만 일요일의 고요함은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또 하나의 씨앗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아침형 인간이 되어 염탐의 시간을
늘리고 있었다.
어느 날 오전,
나
는 두 눈이 똥그래졌다.
그 집을 둘러싼 장막이 모두
걷혔던
것이다. 장막이 걷힌 자리는 초록
식물들로
가득했다. 그 집 사람들은 식물을 좋아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정확히 말해 그 집 모두의 취향인지 아니면 안주인만의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어떤 것은 잎이 아주 크고 넓적했다. 또 다른 것은
길쭉길쭉 뾰족했다. 잎이 너무 작아 모양
조차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런
것들은 그저 커다란 초록 솜사탕처럼 보였다.
그 집의 변화는
나를 재촉하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움직임도
단번에
잡아내라고
. 명사냥꾼이
되라고
명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왔다.
꾸준히 훔쳐본 기나긴 시간에
보
상이라도 주는
듯. 이번에는 초록 식물들 사이사이에 개구리와
백
로 장식품이 놓였다. 꽤 큼직한 크기였기에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집주인이
인테리어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
그 집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그 집이 궁금해진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 식구들은 나의 이 묘한 행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분명 이대로 더 질주하다가는... 미친 x 소리를 들을게 뻔했다.
의식적으로 정신을 가다듬어
봤다
.
앞으로는 절대 그 집을 들여다보지 않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실패.
.
.
의지와는 다르게 그릇된 행동으로 지쳐갈 즈음.
우연히 거실 창문에 매미처럼 딱
달라붙어
있는 두 사람을 봤다. 남편과 아들이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그동안 마음속 짙은
먹구름이 쾌청한 가을 하늘 마냥 말끔히 걷혔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우리 집
두 남자도 그 집을
엿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남의
집을 훔쳐보는 이상한 가족이 되었다.
우리 가족이 엿보고 있는 집.
옆 단지는 입주 준비로 시끌벅적합니다.
새벽부터 모닝콜 대신 저의 잠을 깨워주곤 하지요.
며칠 전은 답답했던 펜스가 모두
철거
되었습니다
.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나
할까요?
저만 지켜보는 줄 알았는데
,
남편은 한 그루 한 그루 심어지는 나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아이는 놀이터 조형물 개구리와 백로에 마음을 뺏겨 있었습니다. 저만 훔쳐보고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하하하.
새로운 이웃이 생긴다는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안물안궁이지만
여름휴가로 수요일 발행이 늦어졌습니다. 끙.
메인 사진 _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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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생각의 조각들 그림이 되다
02
먼지가 되고 싶어.
03
이번 추석은 친정에만 갑니다
04
남의 집을 훔쳐보다.
05
컵라면을 세 개나 꺼낸 이유
06
어른들이 이렇게 말을 안 들을 줄이야.
생각의 조각들 그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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