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다고요?
며칠 전,
전화기 너머 엄마가 아기처럼 울었습니다.
여자는 한참을 멍했습니다. 여자는 사십을 훌쩍 넘어 또 한 번의 사춘기처럼 갱년기를 맞고 있던 터였습니다. 이제 와서 제 길을 찾아보겠다며 꽥꽥대고 있었죠. 고분고분한 삶을 살았던 여자는 언제부턴가 엄마의 말 한마디에도 곧 잘 고꾸라지곤 했습니다.
자연스레 안부 전화는 뜸해졌지요.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엄마는 세 달이 넘도록 아파했습니다.
처음에는 아픈 허리를 파스로 도배했지요. 그러면서도 걷기 운동은 꾸준히 했습니다. 전에도 종종 찾아오던 요통. 그 원인이 운동 부족이라 여겼기 때문이었죠.
그래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엄마는 한의원을 찾아갔습니다. 바늘을 극도로 경계하는 엄마가 침을 맞으러 갔다는 건, 진짜 아프다는 신호입니다.
걱정은 했지만 곧 나을 거라 희망했습니다. 뜨문뜨문한 안부 전화 속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뿐이었죠.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매번 뜨뜻미지근했습니다. 걱정하던 마음도 자연스레 식어갔지요. 그렇게 두어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엄마는 안 되겠는지 이번에는 통증 클리닉을 찾았습니다. 한 달간 통증 주사를 수 차례 맞았고요. 이번만 맞으면 다 낫겠지 했던 다섯 번째 주사를 맞고는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집으로 와서는 그대로 몸져누우셨지요.
급기야 그날 밤,
엄마 입에서는 종합 병원에 좀 데려다 달라는 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황당하게도 결과는 척추골절이었습니다.
넘어졌거나 어디에도 부딪힌 적이 없었기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더 놀랐던 것은 골절이 하나도 아닌 세 개.
심지어 한 개는 완전히 바스러진 상태였다는 것이었죠. 지금은 기침만 해도 뼈가 부러질 정도로 약해져 있다 했습니다.
여자는 그날,
그저 그런 안부를 물으려 의무감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 이 기막힌 소식을 들었던 것이지요.
엄마에게
중증환자용 강력한 진통제가 처방되었습니다.
허리에는 깁스를 대체할 고정 장치가 입혀졌고요.
손에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지팡이가 들렸습니다.
여자가 봐도 어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죠.
그런데 더 힘들었던 건 의사가 던진
이 한 마디였습니다.
"이제 영영 못 일어나실 수도 있습니다."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죠.
엄마는 이 말을 전하며 그렇게도 서럽게 우셨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건,
진통제 힘을 빌어서라도 움직임을 계속한다면
다시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골절 환자라면 삼 개월간 누워서 기다려야 할 시간입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시간 고통을 견뎌가며 움직이고 또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시 걷기 위해.
명절 때마다
엄마가 넋두리처럼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곱게 길러 시집보냈더니 명절 때는 시댁만 먼저 챙긴다고 말이죠. 이 말에도 그저 뿌루퉁했던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엄마의 소원을 들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깊은 생각이 종종 일을 그르치곤 했기에 여자는 바로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글이 재미지려면 시어머니의 극한 반대가 치고 나와야 하는데. 아쉬운 건지 다행인 건지, 시어머니는 흔쾌히 친정행을 이해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이번 명절, 십오 년 만에 처음으로 친정으로 갑니다. 조금은 무거운 발걸음으로요.
둥근 보름달이 뜨면 단 하나뿐인 소원을 빌어볼겁니다.
'우리 엄마 꼭 다시 걷게 해 주세요.'
photo by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