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참새를 만난 건 아이와 산책하던 중이었다. 갈대만 넘실대는 너른 공터. 그 옆길을 따라 신나게 걷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홀로 우뚝 선 버스 정류장. 거기를 막 지나고 있을 때,
작은 참새 한 마리를 만났다. 평상시 볼 수 있었던 총총걸음은 아닌, 단잠을 자는 듯, 아직은 온기를 머금은
주검으로.
신나게 나아가던 발걸음은 “악” 소리와 함께 스텝이
꼬여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버스 정류장 옆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참새를 지켜보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파란 하늘 작은 날개로 누볐겠지.
총총걸음 밟아가며 작은 부리 콕콕 먹이를 구했겠지.
사람들이 나타날 새면 포르르 재빨리 날아올랐겠지.
애도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참새를 잘 묻어주고 싶었다. 허나 난 겁보에 쫄보. 따뜻한 눈빛과 언어로의 교감은 레벨 최상위이나 접촉의 교감은 극하위에 머문다. 산책 중에 반갑다고 달려드는 강아지에게도 뒷걸음을 치는 나이기에.
하물며 죽음을 맞은 생명체를 만진다는 것은
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리는 애도를 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와 나는 산책 친구였다. 산책하면서 길 잃은
지렁이들을 많이도 만났다. 운이 좋을 때는 미아가 된 지렁이들을 축축한 땅으로 다시 되돌릴 수 있었다. 허나 목숨을 다한 지렁이들, 마른 나뭇가지인양 바짝 말라비틀어진 지렁이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났다. 우리는 화석처럼 굳어진 지렁이들을 화단으로 옮겨주곤 했는데, 늘 낙엽이나 풀을 뜯어 그 위를 덮어 주곤 했다. 마지막엔 잊지 않고 풀꽃 한 송이 꺾어 헌화의 마음도 보탰다. 물론 쫄보인 엄마 덕에 늘 행동대장은 아이가 차지했지만 말이다. 난 뒤에서 훈수를 두거나 낙엽 정도 모았을 뿐.
한 번은 겨울 수락산에 올랐을 때 동면에 실패한 개구리를 만난 적도 있었다. 얼음장 같은 계곡의 물보라 속, 한자리에서만 빙빙 돌고 있던 개구리. 아이는 옷이 젖을까 봐 조바심도 내지 않고, 개구리를 단번에 건져 올렸다. 딱딱히 얼어 있던 땅을 뾰족한 돌멩이로 콩콩 부수고, 나뭇가지로 파냈다. 개구리를 조심조심 묻어 주고는 작은 둔 턱을 만들어 나무 막대기를 꽂아 주었다. 늘 그렇듯 마지막엔 “잘 가”라고 읊조리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이도 주저했다.
우리 동네 비옥한 화단을 책임진 수많은 지렁이들,
개구리가 살고 있을까 의심했던 나에게 당당히 존재를 보여준 수락산 개구리,
아이의 절친이 되어 준 고마운 장수풍뎅이,
멋진 뿔을 뽐냈던 토종 사슴벌레,
느리지만 꾸준하고 기특한 걸음을 보여 준 달팽이
그리고
새끼도 많이 낳아 알콩달콩 다복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구피까지.
모두 마지막 가는 길을 자기 손으로 보내줬던 아이였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못하겠노라고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나도 용기 내지 못하는 판에 아이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법. 주변을 서성이다가 무거운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그 뒤로,두고 온참새 한 마리 생각이 머릿속에 둥지를 틀었다. 잊을 만했다가도 불쑥불쑥 찾아왔다. 두고두고 무거웠다.
죽음을 하나, 둘 마주할 때마다 나에겐 이상한 바람이 생겼다.
‘나 먼지가 되고 싶어. 내 마지막 모습은 먼지처럼
가볍고 흔적도 없었으면 좋겠어.’
늘 생을 다한 것들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작디 작은것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만지거나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내가 앞으로 직면할 죽음들과 내 마지막 모습도 가늠해 보게 된다.내 마지막 모습은 대면하기 어려운 섬뜩함 보다는 산뜻하고 가볍고 싶다. 마지막에 무거움을 남겨 두고 싶진 않다. 남은 자들에게도 곤욕이 되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