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 부릅뜨고 대장내시경 검사받는, 나란 여자
아야얏! 가뜩이나 내시경 장비에서 불어내는 공기 때문에 뱃속이 빵빵해져서 불편한데, 장비가 S자 결장을 사정없이 쑤셔댄다. 태동보다 몇 배는 날카롭게, 광섬유 다발이 뱃속을 긁어댄다. 항문, 직장, 하행결장 순으로 잘 올라오던 카메라 장비가 꺾이는 구간에 진입하려고 후진, 전진을 반복하고 있었다. 무통주사 없이 자연 분만을 해 낸 철의 여인이라도 이건 못 참겠다.
“아, 너무 아픈데요?”
"아이고, 장이 너무 뻣뻣해요. 요거트라도 챙겨 드세요."
"아, 아, 유산균 매일 먹는데요?"
아프다고 했더니 의사는 내 장을 탓한다. 성격만 뻣뻣한 줄 알았는데 장도 그렇다니, 서른 둘에 처음 알았네. 내시경으로 내장 근육의 유연성까지 검사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전날 밤부터 맛없는 음료수를 들통으로 먹어댔는데 억센 위장은 꿈쩍도 안 했나 보다. 민망하게 찌꺼기가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인생 첫 대장 내시경을 두 눈 부릅뜨고 강행한 후에도 장 내시경 검사는 비(非) 수면으로 하겠다는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웃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 첫째 함께 가 줄 보호자가 없었다. 남편은 출장과 전근이 잦아서 나의 보호자가 되어 줄 거라 기대할 수 없었고, 이모님은 아이들 봐주시기 바빴으며, 수면 내시경 받겠다고 동료까지 휴가를 받게 할 수도 없었다. 아니, 그러기 싫었다. 이런 것쯤, 혼자 알아서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둘째, 의심이 많다. 내시경이 찍은 영상을 현장에서 봐야 속이 후련했다. 검사 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시 대충 보고 나오는 건 아닌지 내 눈으로 봐야 했다. 셋째, 약을 싫어한다. 장에서 변이 배출되도록 씻어내는 ‘정결제’를 병째 마시고, 위장이 덜 꿈틀거리도록 만드는 '진경제' 주사도 맞아야 하는데, 수면제와 각성제까지 투여받고 싶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두 번째, 세 번째 내시경까지 맨 정신으로 잘 마쳤다. 두 번째 내시경에서도 장 청소가 잘 되지 않아 무척 민망했었기에, 세 번째 검사 전에는 철저히 준비 작업을 했다. 3일 전부터 잡곡밥, 오이, 키위, 고춧가루, 참깨 등 작은 입자가 든 음식을 피했다. 변비가 심한 경우, 즉 나처럼 장이 뻣뻣한 유형은 일주일 전부터 섬유소가 많은 음식도 피하라고 했다. 채소, 고춧가루를 빼고 나니 먹을 게 없었다. 흰쌀밥에 가자미, 식빵과 요구르트를 먹으며 연명했다. 기운이 없었지만 3일만 버티자, 정신줄을 부여잡았다.
검사 전날 맛없는 흰 죽을 먹고, 주린 배를 부여잡고 잠이 들었다. 배가 고파 새벽에 일어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비장한 각오로 물통에 장 정결제와 비타민 가루를 붓고 잘 녹였다. 신규간호사일 때 내시경을 앞두고 장 정결제를 먹다가 헛구역질하던 환자들을 여럿 봤었다. 그때는 약통도 더 컸다. 그래봐야 역한 맛을 숨길 순 없지만, 새콤달콤한 맛이라도 더해 줄 비타민 가루도 없었다. 환자들은 내시경 검사 자체보다 정결제 먹는 게 더 고역이라고 입을 모았다. 세월이 흘러, 그때 그들이 그렇게 염원했던 알약으로 된 정결제도 나왔단다. 여전히 들통으로 먹는 게 더 효과적인 듯 하지만 말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노력한 만큼 깨끗한 장 속을 보며 흐뭇했다. 긴 카메라 줄을 꽂은 채였지만 '비수면 베테랑' 답게 S자 굴곡 통과할 때 자세도 잘 바꾸고, 장 점막 생중계 영상 한 구간도 놓치지 않고 시청했으며, 의사 선생님이 번거롭지 않도록 실시간으로 질문도 하고 설명도 잘 들었다.
검사를 무사히 마치고 의사가 한 마디 했다. "다음부터는 수면으로 하세요." 요즘은 각성 상태인 환자를 내시경 검사하는 게 드문 일인가 보다. 나는 괜찮았는데, 점점 더 잘해 내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다음에도 비수면으로 할 거예요.
* 사진 : 나 혼자 산다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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