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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Nov 21. 2023

'돌보는 마음'을 바라보다

돌보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 세상에서, 조용히 분투하는 마음*

  김유담 작가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에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웃들이 등장한다. 사십여 년 간 남편의 형제, 자매 가족까지 건사하고 해마다 여덟 번의 제사를 도맡았지만, 요양병원에서 홀로 돌아가신 '큰 엄마.'** 온 가족이 매달려 할머니를 간병하던 어느 날, 할머니가 간절히 드시고 싶어 하는, 옛집 마당 나무에 열린 사과를 따면서, "할머니가 이걸 맛있게 드시고 어서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소년.***


  내가 잘 알고 있는 어떤 이들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목 늘어진 티셔츠 바람으로 놀이터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해맑게 노는 아이를 텅 빈 눈으로 바라보는 엄마.  '#덕분에, 엄지 척'을 받들어 보여주던 이들이 하나둘 떠나고, 열악한 처우가 그대로인 일터에 남겨진 그들.


  간호사이기에 앞서,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챙기고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이자, 가족 내 돌봄을 대신하여 다양한 타이틀로 돌봄 노동****을 하고 있는 수많은 분들의 동료 겸 이웃으로서, '돌보는 마음'을 바라본다.


*김유담, 『돌보는 마음』 , 민음사, 책 표지.

**위의 책, p.23.

***위의 책, p.41.

****위의 책, p.297. (허윤 문학평론가의 작품해설)




  "어르신, 그러니까아, 어디로 가셔야 한다고요?"

  "1층, 골다공증 검사받는 곳. 아고, 큰 소리 내지 말어. 귀 안 먹었어. 너들, 내가 늙었다고 무시하지? 니들도 늙어봐라, 아고......"

  "차암, 누가 어르신을 무시했대요? 잘 안 들리실까 봐 그랬죠.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나, 목말라. 물 좀 줘."

  "잠시만요, 정수기가 저쪽에 있으니까 잠깐 들렀다가 가요."

  보건소 결핵실에서 일하는 김순예 주임은, 기침을 오래 한다며 결핵검사를 받으러 왔던 민원인의 휠체어를 끌었다. 보건소까지 박 어르신을 모셔왔던 경찰관이 왜 그리 짜증스럽게 인계하고 떠났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던 참이다.


  "푸흡, 이거 찬물이여? 늙은이한테 이렇게 찬물 주는 법이 어딨어, 잉? 미지근한 물로 다시 떠 와."

  "아이코, 날이 더워서 시원한 물 드린 건데, 많이 찬가요? 다시 떠다 드릴게요. 죄송해요."

  1982년부터 혼자 사셨고, 서류상 직계가족이 있어도 연락 한 번 없이 외롭게 지내신다는 박 어르신. 가족을 대신해 잠시 이 분의 보호자를 자처했고, 내 일이 아니지만 의무감이 몸에 배어 외면할 수 없었다. '주임님은 참 친절하세요. 고생 많으셨어요.'라는 인사가 다였다, 그것도 직원들끼리 주고받는 에티켓으로.


  그는 스스로 건방지다, 겉멋에 산다고 생각했다. 손에 쥐는 월급이 170만 원이지만 '내 이름 석자를 걸고' 최선을 다했다.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텅 빈 집에 돌아와서 펑펑 울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남편도, 아이도 없었다. 없는 편이 나았다. 하루종일 민원인들에게 시달리고, 집에 와서까지 가족을 건사해야 했다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직업으로서 '간호'의 역사는, 어머니가 가족들을 돌보던 것에서 출발했어요. 그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전문직'으로,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기도 하고요......"

  어떤 특강에서 교수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엄연한 직업 행위가 비전문적이고 사적인 돌봄과 닮았다는 것, 그리고 고결한 어머니의 돌봄과 비슷한 이미지여서 평가절하된다는 것도.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여러 일터를 전전하다 보니,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돌봄은 '본디 그러한 것', '원래 주어지는 것', '아무런 대가 없이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성'이자 '본능'에서 기인했고, 어머니가 된 인간의 기본 덕목이라고, 모두가 그렇게 믿고 배웠다. 숭고한 것이기에 감히, 금전적 가치를 매길 수 없다고 펄쩍 뛰었고, '미래에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귀한 새싹'들을 기르는 '어머니 혹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아버지'에게, 사회가 제대로 된 '한 달치 봉급'을 치른 적이 없다.


  4년 간 비싼 등록금을 내고 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면허시험에 통과했을 때, 그는 꿈에 부풀었었다. 세상이 입 모았듯, 취업이 잘 되고 초봉부터 많이 받는 간호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24시간 3교대 근무를 경험하고 깨달았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을. 명석한 두뇌로 성실히 공부하며 그 정도 등록금을 갖다 바쳤으면, 이것보다는 나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억울했다.


  낮에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니, 경쟁은 치열하고 월급은 훨씬 적었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3교대를 계속하다가는 병원비가 더 들 테니 이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몸은 한결 가뿐해졌으나, 고객이 부당한 요구를 해도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고 모든 걸 내어 주어야 할 것 같은 '백의의 천사'적() 속성은 변함없었다. 거짓 미소 뒤에서 영혼은 닳고 시들어 갔다, 오늘 같이 막무가내인 민원인을 만났을 때는 더더욱. 게다가 박 어르신은 누가 봐도 약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빠져나갈 틈도 없었다.


  "퇴직금, 정산해 주세요."

  돌아보니 이래저래 계약 연장을 하여 이곳에 십 년 가까이 있었다. 이제는 떠나야겠다, 더 늦기 전에.

  "어디, 멀리 옮기시나요?"

  "아뇨. 그냥, 좀...... 간호사 일은 그만하고 싶어요. 이 면허, 쓸 만큼 써봤네요. 나무 만지는 일, 해 보고 싶어요. 조각하고 가구 같은 것도 만들고요. 막연하지만, 그래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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