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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Nov 14. 2023

참지 울긴 왜 울어

어른도 아프다

  "아아악!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아요!"

  그날 오후 무릎 수술을 했던 젊은 남자환자의 울부짖음이, 우리 병동을 넘어 3층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간호부장님과 회식이 있다고 일렀건만! 저녁근무를 맡은 후배가 벌써 두통째 전화를 걸어왔다.

  '우우웅, 우웅, 우웅, ......'

  "급한 전화 아니니? 어서 받아."

  송구한 자세로 받은 전화 내용인즉, 인계인수 직전에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그 환자가 방금 전부터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는 것. 예상보다 일찍 회식을 파하게 되어 기쁘지만, 또다시 죄송함을 피력하며 병동으로 달려왔다.


  옆 병실에 있던 환자들까지 그 환자 침상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고, 보호자도 근심 어린 표정으로 환자 곁을 지키고 있었다.

  "주치의 연락했니?"

  "네. 갑자기 아프다고 하는데, 다른 병실에도 돌봐야 할 수술 환자들이 많아서요, 어쩔 수 없이 전화드렸어요."

  "응, 잘했어. 너는 가서 일 봐."

  황급히 발가락 움직임, 색깔, 붓기를 살펴보고, 활력징후(체온, 호흡, 맥박, 혈압)를 체크했다. 수술 당일, 그것도 일반 병실에서 의사 없이 수술부위 붕대와 반깁스를 다 풀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의사도 금방 도착했다.


  "10점 만점에, 지금 통증은 몇 점인가요?"

  "12점이요! 애 낳는 것보다 더 아파요!"

  20대 초반 남자 환자의 대답이라니, 곁에 있던 환자 어머니가 피식 웃으셨다.

  "야, 네가 애 낳아봤냐? 얘가 평소에 엄살이 심하긴 해요. 그래도 무슨 문제인지, 빨리 좀, 봐주세요."


  수술 상황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주치의다. 환자는 척추마취를 했기 때문에 의식은 있었지만 하반신 감각도 없었고, 자기 수술 장면을 보지도 못했다. 오늘 수술은 아주 평범했다는 게 의사의 얘기였다.


  "혹시, 소변은 봤나요?"

  "아뇨. 그게 이렇게 아픈 거랑 무슨 상관이죠?"

  극심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대꾸해 주는 환자가 고마웠다. 통증의 원인은 아마도, 아랫배에서 만져지는,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방광이었다.


  척추마취 후 하반신이 서서히 깨어나는데, 제일 늦게 깨는 부위가 요도나 항문 괄약근이 위치한 회음부다. 마취가 덜 깨어 소변 보고 싶은 걸 못 느끼는 경우가 많고, 그대로 방치하면 방광이 너무 부풀어 손상될 수 있다. 마취가 깨는 동안 침상에 누워 소변을 볼 수 있도록 독려하는데, 정신 말짱한 성인이 그렇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인실이었지만 움직일 수 있는 분들께 양해를 구해, 휴게실로 옮겨 잠시 자리를 피해 주시도록 했다. 병실 조명을 최대한 낮춘 후 침상 커튼을 쳐 주고, 나도 나왔다. 그때쯤이면 마취도 거의 다 풀렸을 거고, 아랫배 마사지 없이도 소변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환자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방광을 다 비워냈다.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자, 환자는 침착한 표정으로 퇴근 후에 이렇게 와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날의 소동은 다행히 이렇게 끝이 났다.




  통증은 매우 주관적인 증상이다. 병명이 같거나 같은 수술을 받았더라도, 그에 따른 반응은 사람마다 천양지차다.


  암 환자들이 경험하는 통증은 증상 그 자체라기보다는 공포에 가깝고, 치료를 포기할 만큼 심각한 경우도 있다. 그걸 지켜본 가족들은, 마약성 진통제를 지속 주입하기 시작하면 다시는 그와 대화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고통을 줄여주는 쪽을 택한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통증도 존재한다. 엄살로 치부되는 통증. 어른이면 그쯤은 눈 질끈 감고 남몰래 주먹에 힘주고 악 소리를 꿀꺽 삼키며 이겨내야 하는, 그런 통증 말이다.


  주삿바늘 공포증을 가진 사람을 종종 만난다. 건장한 체구의 그 학생은, 팔에서 혈액을 뽑는 도중 백지장처럼 질린 얼굴로 "어지러훠, 효." 한 마디를 힘겹게 내뱉고 어찌 손 써 볼 틈도 없이 픽 쓰러졌다. 주사가 무서워요, 이 바늘 왜 이렇게 굵어요, 많이 아플까요? 하는 말도 시원히 못 해 보고, 속으로 얼마나 떨었을까, 무서웠을까.




  'K' 학술지를 펴내는 연구소에서, 간호사들이 연구계획을 세울 때 도움을 주고 연구진행 중 힘들어 할 때 상담하는 일을 잠깐 했었다. 학술지에 실린 대부분의 연구는 거시적인 건강 실태나 정책에 관한 것이었고, 환자를 돌보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것은 드물었다.


  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게 주특기인지라, 병원에서 근무하는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현장에서 중요하고 자주 일어나지만 연구로 다루어지지 못했던 주제'에 골몰했다.


  "이건 좀 그럴 거 같은데......"

  "아냐, '좀 그런 것'이 아주 좋은 주제일 수 있어. 그냥 말해 봐."

  "음, 나는 말이야, 주사 아파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덜 아프게 주사 놓는 방법, 어떤 게 가장 효과적인지 궁금하거든. 아기들 대상으로 한 연구는 많던데, 성인 대상 연구는 별로 없는 거 같더라고."


  그리하여 착수한 연구는 계획서를 제출할 때부터 많은 의문과 공격에 부딪혔다. 그럴싸한 연구자들의 언어로 포장은 했으나, 한 마디로 '그게 연구가 되겠냐'는 거였다. 성인에게 주사통증이 뭐 그리 대단한 문제가 된다고 연구비를 신청했냐는 말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 간의 연구보고서를 종합해 보니, 그런 피드백이 어느 정도 옳았다. 스스로 주사해야 하는 환자들, 예를 들어 매일 자기 몸에 인슐린을 주사해야 하는 환자들이 통증을 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주삿바늘의 길이나 굵기를 최소화하거나, 주사 부위를 달리 하거나, 온도나 진동 같은 자극을 적용하고 그 효과를 보는 연구들이 보고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래전 연구가 대부분이었고, 수준 높은 과학적 근거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야, 큰일 났다. 걱정했던 대로네. 성인의 주사 통증은 연구거리가 아닌가 봐."

  "아냐, 제대로 된 연구가 적다는 걸 보고하는 게, 우리 연구의 가치인 거지."

  동력을 잃으려 할 때마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가까스로 연구보고서를 완성했다. 어른들에게 안 아프게 주사 놓는 방법을 알고 싶었는데, 우리는 끝내 연구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새로운 질문거리를 찾았다. 왜 성인의 주사 통증을 줄이기 위한 실험연구는 적을까. 바늘이 피부, 근육, 정맥을 뚫을 때, 어른은 어린아이들보다 통증을 적게 느끼는 걸까, 아픈데 잘 참는 걸까? 아니면 잘 참아야만 하는 걸까? 표정, 행동, 말로 통증을 표현하면 안 되는, 주변의 기대나 사회 규범에 압박을 받는 걸까? 혹은 '아파하는 어른'을 '지켜보는 어른'이 부끄러워하거나 외면하는 걸까?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에 답할 가치가 있는 걸까? 그런 연구를 한 우리는 이면지를 생산한 걸까? 분명히 연구 하나를 끝냈는데, 질문은 더 많아졌다.


*사진: Unsplash (National Cancer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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