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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Nov 07. 2023

이맘때 목도리를 꺼내세요

초겨울, 내 혈관을 지키는 아주 간단한 방법

  응급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겨울 초입에 갑자기 쓰러져서 실려오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된다. 초겨울 이른 아침, 고혈압이 있는 50대 남성 'ㅂ'님은 가벼운 옷을 입고 문 밖을 나서는데, 뒷목이 뻐근하고 어지럽더니 정신이 아득해지셨다고 했다. 매일 고혈압 약을 꼬박꼬박 드셨고 꾸준히 운동도 하셨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해하셨다.


  'ㅂ'님은 다행히 금방 가족에게 발견되어 병원을 찾으셨고, 검사 결과 뇌혈관에 이상이 없어서 퇴원하셨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응급실 문을 나서는 그분의 뒷모습에, 우리 아버지가 겹쳐 보였다. 10월에는 집안 어른들께 전화를 돌린다. 이때만큼은 어른들께 잔소리를 할 수 있다. 레퍼토리는 딱 두 가지, 한결같다.


  "독감 예방접종을 꼭 받으세요. 신문기사 보시면 연령별로 무료 접종해 주는 기간이 나와 있고요, 가까운 의원이나 보건소에 전화로 확인하시고 방문하세요."

  "나, 작년에 접종받았는데, 아픈 주사를 또 맞니?"

  "독감 바이러스는 변이를 잘 일으켜서, 해마다 유행하는 바이러스가 달라요. 그래서 매년 맞으셔야 해요."

  "그래, 알았다. 끊으마."


  "아니, 잠깐만요. 갑자기 추워지면 실내와 바깥 온도 차이가 많이 날 거예요. 목도리, 장갑, 모자를 미리 꺼내 놓으세요. 일기예보에서 아침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고 하면, 현관문 열기 전에 반드시 모자 쓰시고 목도리 칭칭 감으시고 장갑도 꼭 끼세요. 찬 바람 안 들어가게요."

  "이 정도 추위에? 한겨울도 아니고, 그런 거 안 해도 된다."

  "안 돼요. 혈압 있으시잖아요. 추운데 갑자기 나가면 혈압이 갑자기 높아질 수 있어요."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밥수저로 연거푸 떠먹거나, 얼음 갈아 넣은 주스를 굵은 빨대로 마구 들이켜 본 분들은, 골치가 뻐근하게 아파본 경험이 있으실 거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


  입과 목 내부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면, 머리 안의 혈관이 급격하게 확장되면서, 많은 양의 혈액을 끌어와 체온을 다시 높이려고 한다. 이렇게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려는 보상 작용의 결과로, 짧고 강렬한 두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전신이 추운 환경에 노출되면 체온을 뺏기지 않으려고 혈관은 급격히 수축하게 된다. 지극히 정상적인 우리 몸의 작용이지만, 혈관의 탄력성이 떨어져 있는 분들께는 자칫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갑자기 높아진 혈압을 혈관이 견디지 못해서, 혈관의 약해진 부분이 찢어지거나 심하면 터질 수도 있다.




  작년에 뇌경색으로 입원치료를 받았던 남편도 잔소리 대상 중 한 명이 되었다. 요 며칠 푹했다가 갑자기 추워지는 바람에, 그만 잔소리 시기를 놓쳤다.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이라 다행인데, 오늘은 회식이 있어서 술을 몇 잔 마셨단다. 금연과 금주는 방한대비만큼 혈관 건강에 중요한데, 술을 마셨다니 걱정이다. 잔소리를 평소의 몇 곱절로 퍼붓자, 그가 화제를 돌려보려고 끼어든다.


  "그렇잖아도, 엊그제 선배 한 분이 뇌출혈로 쓰러지셨다는데."

  "거 봐, 이렇게 갑자기 추워질 때, 지인짜 조심해야 한다니까."

  화제 전환은커녕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간호사 아내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참고자료 :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 뇌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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