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이 의미하는 것
"엄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요."
어지간히 아파서는 표현하지 않는 아이가, 전화기 반대편에서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주방 서랍장 두 번째 칸에서 타이레놀 한 알 꺼내먹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너무 어지러워서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열흘간 장염 증세로 동네의원을 들락거리던 중이었는데, 난데없이 머리가 아프다니. 머리가 아프기 전에는 갑자기 빛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앞이 잘 안 보였다는 것이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거다. 뇌수막염일 때처럼 열이 난 것도, 축농증이 도진 것도 아니다. 그 이상 심각한 경우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사무실에는 조퇴해야겠다고 말하고, 급히 채비했다. 당장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는지, 외래와 응급실 중 어디로 가는 게 더 나을지 생각하면서,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 두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오후 3시라 당일 외래진료는 어렵고 응급실로 가야 했다. 기왕 가는 거, 규모가 더 큰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택시를 잡아탔다.
'엄마가 지금 출발했어. 이제는 좀 어떠니?' 물으려고 전화를 여러 번 걸었는데 아이는 통 받지 않았다. 까무룩 잠이 든 것인지, 혹시 화장실에 들어가서 토하고 있는 건지, 설마 의식을 잃은 건 아닐는지, 불길한 생각이 자꾸 달려들었다. 다리를 달달 떨며 '아냐,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 되뇌었다.
다급한 마음에 바로 119 구급차를 부르려고 하다가, 일단 아이 상태를 보고 택시나 자가용으로 가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생각하며 택시에서 내려 횡단보도에 섰다. 빨강이 초록으로 바뀌는 그 몇 초가, 이리도 길었던가. 퇴근길, 달콤한 나의 집을 향해 들썩이며 걷던 분홍빛 거리가, 찬란한 가을 낮에 퍼렇게 질려있었다.
2층까지 단숨에 뛰어 올라와서인지, 아니면 긴장한 탓에 교감신경이 항진된 탓인지, 땀에 젖은 외투를 벗어 바닥에 내던지다시피 하며 아이가 누워있는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맹꼬야!"
현관에서부터 허물 벗듯이 외투와 가방을 떨구고 겨우 이부자리에 든 아이가, 그제야 힘겹게 실눈을 떴다.
"엄마."
"응, 엄마 왔어. 지금도 많이 아파?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엄청 걱정했어."
"미안해요. 머리가 너무 아파서 잠들었는데, 전화소리를 못 들었어요."
머리가 아프다는 아이의 말에, 이토록 긴장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작년 초, 남편이 뇌경색으로 입원치료를 받았었다. 매일 운동하고 식사량도 조절하며 건강만큼은 자부했고, 게다가 뇌경색을 앓기에는 젊은, 40대 중반이었다. 남편은 진단받기 일주일 전에 몇 시간 동안 '지끈거리는' 심한 두통을 느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날의 두통이, 뇌경색의 전조증상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좁은 입원실, 남편 곁에 누워서 생각했다. 내 가족은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있을 줄 알았고, 그렇기에 작은 일에도 짜증 내고 잔소리하고 다투었다. 앞으로는 당신에게 괜한 일로 화내지 않고 다정한 아내가 될 테니, 이 수액을 맞고 악화되는 것만 면했으면 좋겠다고.
내 간절한 기도가 응답을 받은 건지, 다행히 남편은 큰 후유증 없이 회복했다. 매 순간 마지막인 것처럼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어떤 현자가 이야기했다지만, 그이의 병이 악화되거나 재발할 수 있다고 매일 되뇌며 살다 간, 되려 내가 제 명에 못 살터. 여하간 그날 이후 '두통'은 중요한 단어가 되었다.
'ㅇ'병원 응급실에서 아동 진료가 안 된다며 문전박대 당한 후, 샛강을 도로 건너 'ㅈ'병원으로 달려왔다. 응급실 소아 진료 구역의 침상 옆에 앉아,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 학원 선행진도 못 나가는 게 대수며, 학업 성적이 그리 중한가. 이 녀석은 뱃속에서 꼬물거릴 때부터 열두 살을 넘긴 지금까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주었고 앞으로도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다.
열은 없었지만, 아이들에게 비교적 흔한 뇌수막염일 가능성부터 배제하기 위해서, 의사는 아이의 목과 다리를 들어 올리면서 목이 뻣뻣해지는 증상이 있는지 신체검진부터 했다. 그 후 혈액검사를 기다리며 진통제 수액을 맞았다. 이 약으로 진정될 만한 통증이라면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긴장성 두통'의 원인이야 무지 다양하지만, 응급실에서는 담당과 교수님을 호출할 만큼 심각한 경우인지만 감별할 것이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퇴근하고 응급의학과 당직의사가 교대한 저녁시간에는 더더욱 그렇다.
가장 아팠을 때 10점 만점에 11점이던 통증이,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7점, 진통제 수액을 맞고 난 후 6.9이란다. 교과서에서처럼 통증이 드라마틱하게 호전되지 않자, 뇌출혈이나 뇌종양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 응급의학과 당직의는 전산화 단층 촬영(CT)을 권했다. 검사 결과는 '그런 거 아님'이었다. 마지막 관문까지 넘고 나니 어느덧 8시. 갑자기 극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엄마, 라면 두 개 먹어도 돼요?"
"응, 당연하지. 나도 두 개 먹을래. 참, 돈가스도 곁들여서. 너어무 배고파! 오늘은 쯔양(먹방 유튜버)도 이길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