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감의 살아 퍼득이는 가슴
이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동네에 내린 모든 눈을 기록하는 나는
무척 아쉬웠다.
강설량,
강설 시간,
강설 시의 기온과 미세먼지 농도,
와사삭 찰나에 부푼 얼음 솜털의 개수,
손바닥에 못 미처 녹는 민첩함, 차가움을 맛보이는 귀여운 속임수, 세찬 바람을 만났을 때 콧구멍을 간질이고 눈꺼풀을 끔뻑이게 하는 재주, 사뿐하고 공손하고 은밀하게 내려서는 솜씨, 합심하여 창문을 하얗게 채우는 존재감, 그러고도 힘이 남아 세상을 밝히는 조도(照度), 뽀드득 밟을 때의 떨림과 손으로 쓸어 담기는 장난기,
이 모두를 만족하는 눈은 아니었다.
실망하며 부엌 창문을 내다보니 어!
아직 떨어지지 않은 감이 오돌오돌 떨고 있네, 눈이 찔끔 내리던 며칠 전보다 살이 많이 내려서는.
얘들아, 언 감들아,
너희는 남들이 익어서 떨어질 때 무얼 했니.
지난번 부를 때는 새초롬히 눈길 한번 안 주더니 까마귀에게 쪼아 먹힌 반쪽 입술로, 성에 낀 쉰 소리로 용을 쓰며 답한다.
그 모습이 또 딱해서
나는 방충망까지 열어젖히고 찬 공기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걸 몰라서 물어, 사십 먹은 맹추야, 우리가 다 떨어졌으면 이 날씨에 까치, 참새가 무얼 먹고 당분과 비타민C를 보충하니. 네가 흘린 빵 부스러기, 음식물 찌꺼기로는 걔들이 배를 주려야 한다고. 땅이 꽁꽁 얼어서 벌레 구하기도 힘들대.
설마,
그 많던 감을 다 따 먹고서, 언감생심(焉敢生心) 우리까지 탐내는 거냐.
가을 내내 우리 동 앞 감나무는 아래 가지에 달린 열매로 사람들 배 불리고, 낮은 곳에서 톡, 떨어뜨린 열매로 길고양이를 먹였단다.
언 감은, 사람 눈길 안 닿는 곳에 있어도, 천천히 자라도, 그 덕에 작게 익어도, 탓하는 법이 없다. 지금 사는 모양새, 감생(生)에 깃든 뜻을 누구보다 밝게 알고 누가 뭐래도 굳게 고집한다. 제 살길도 모르는 애송이가 시비를 걸어도 쉽사리 파르르 타오르지 않고,
끈덕지게 거듭 묻는 이들에게만 넌지시
언 감 생심(生心)을 건넨다.
* 파도시집선 011 지구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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