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Jan 19. 2024

다시, 시작합니다

오늘 아이의 인바디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채식인간이 되고자 결심했는데... 오늘 아이의 결과지는 활활 타오르는 집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그래. 다이어트 시작이다.


이건 나의 다이어트가 아니다. 나의 다이어트는 십 년 전에 끝났다. 다시는 내 인생에 다이어트가 없다고 기뻐했다. 그 기쁨이 이렇게 허망하게 날아갈 줄 몰랐다. 내 다이어트보다 이토록 더 비장할 줄은 몰랐다.


아이는 누구인가. 어쩌면 내 인생 최대의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아닌데 내 맘대로 안되면 미치겠다. 이런 표현을 쓰는 이유는 정말 딱 미칠 것 같아서다. 이런 감정을 훠이훠이 다 날려 보내고 그들을 손님이라 칭한 '이적 엄마' 박혜란 님은 딴 세상 사람이다. 어떻게 해야 그런 마음의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음을 끊으려 노력해 봐도, 아이는 나에게 손님이 될 수 없다. 신경을 엄청 써야 하는 VIP손님?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아이가 밉다. 아니다 아이가 너무 예쁘다. 아니다 아이가 너무너무 밉다. 하루에도 이런 마음이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니 과연 내가 엄마가 맞는지 모르겠다. 나는 분명 엄마인데 나이기도 하고 또 엄청 엄마이기도 하다. 실은 오로지 나이고 싶은데 아이가 생긴 이상 그것은 불가능하다. 


아. 다시 돌아와서 오늘의 결심은 아이의 식단을 엄격하게 관리하자! 는 것이다. 살이 찌는 건 좋지 않으니까. 하늘로 치솟는 자존감쯤은 꺾어버려도 좋겠지만 심하게 상처 나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내가 과거 그런 이유로 다이어트를 했다는 것인데 이런 이론을 아이에게 끼워 맞추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너는 앞으로 이렇게 먹어야 해... 를 일장연설하고 아이이저녁을 차렸다. 비건을 지향하지만 성장기이니까 고기단백질은 줘야겠고... 오늘의 메뉴는 소고기 갈빗살과 양파 브로콜리 구이다. 비건지향 엄마는 너에게 매끼 야채를 주는 것으로 너의 다이어트를 시작하련다.


아이가 샤워하는 시간. 혼자 팝콘을 먹었다. 미안했지만 와그작와그작 씹는 맛은 대단했다. 곧이어 샤워기 끄는 소리가 들렸고 깜짝 놀란 나는 얼른 팝콘을 밀봉해서 세탁실에 숨겼다. 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