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웬 6.25 시절 이야기. 먹을 것이 넘쳐 나는 지금,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피자도 치킨도 아닌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끈한 '흰쌀밥'이다. 아이러니한 건 이 아이의 엄마인 내가 오리지널 흰쌀밥을 더 이상 짓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책은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이었다. 엄마가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이른 시각, 슬며시 잠에서 깨어난 남매는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구름을 떼어와 엄마에게 건넨다. 그렇게 건네진 구름은 빵반죽이 되고 오븐에 구워져 동그란 구름빵이 된다. 빵을 먹은 남매가 둥실 떠오르던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지만 그날부터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빵은 구름빵을 닮은 모닝빵이 된다. 아침이면 구름빵을 달라는 아이와 따뜻하게 구워진 모닝빵을 먹었다. 먹고 또 먹으며 '이 빵을 먹으면 우리도둥실 떠오를 수 있을까'를 상상하는 시간은 행복한 아침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이렇게 모닝빵에 맛을 들인 아이는 유독 하얗고 쫀득한 질감의 탄수화물을 좋아한다. 떡만둣국을 끓이면 떡을 더 달라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떡볶이를 해달라고 조른다. 삶은 만두 한 봉지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던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하얀 탄수화물 마니아가 되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흰쌀밥을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거지?
가끔 집 근처 삼겹살 집에 간다. 아이는 고기도 좋아하지만 으레 흰쌀밥을 제일 먼저 찾는다. 그리곤 삼겹살이 미처 다 구워지기도 전에 된장찌개와 밥 한 공기를 뚝딱 먹어 치운다. 밥을 퍼 담은 숟가락이 얼마나 봉긋한 지 '천천히', '꼭꼭'이란 말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밥을 다 먹은 아이는 손을 번쩍 들고 말한다. 밥 한 공기 추가요! 그 모습이 귀여웠다. 밖에 나오니 밥맛이 꿀맛이지, 그래 인정한다. 나도 그러니까.
그런데 이건 아니다. 밥 두 공기는 금세 비워지고, 세 번째 밥 추가요를 외치는 찰나 내 귓불은 화끈거린다. 밥 잘 먹는 아이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장님에게 억지 미소로 화답하던 나는 급기야 아이를 째려본다. 이렇게 먹다 보면 고기가 구워지는 속도에 맞춰 밥 세 공기는 순식간에 비워지고 엄마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밥 한 공기 더를 외치고 싶은 아이의 모습은 더 이상 예뻐 보이지 않는다.
그만 먹어!
삼겹살 3인분을 먹었는데 옆에 놓인 밥공기는 네 개가 넘어간다. 밥을 그만 먹으라는 소리에 아이는 잘 구워진 구이용 떡으로 눈길을 돌린다.
나는 하얀 쌀밥이 제일 좋아!
언젠가부터 아이가 하는 말이다. 많고 많은 음식 중 하필 쌀밥을?
누가 들으면 흰쌀밥을 안 주는 엄마라고 오해하겠지만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아이 밥을 소홀히 한 적은 없다. 언제나 메인 메뉴는 흰쌀밥이었다. 그러나 체지방률이 경도비만을 넘어 비만이 나온 아이를 보니 더 이상은 아이가 좋아하는 흰쌀밥과 구름빵을 줄 수 없게 되었다. 하얀 탄수화물이 아이 비만의 주범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은 먹는 양을 줄이기로 했다. 그러려면 밥을 딱 한 공기만 먹게 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를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흰쌀밥을 짓지 말자'는 거였다. 그리고그날 이후 나는 잡곡밥을 짓는 중이다.
백 퍼센트 잡곡밥도 지어보았지만 남편의 투덜거림이 심해 흰쌀 30%에 현미와 보리를 섞는다. 거기에 병아리콩을 넣으면 쫀득하면서도 고소한 밥이 완성된다. 밥에 들어간 검은콩을 유달리 싫어하므로 검은콩은 반찬으로만 이용한다.
이렇게 지어진 밥은 현미가 대부분인 잡곡밥이다. 잡곡으로 밥을 지으면 아이의 밥 먹는 속도는 현저히 느려지고 가끔은 남기기도 한다. 흰쌀밥이 아니기에 느긋한 속도의 식사가 가능해진다. 드디어 아이는 적당 양의 식사를 마친다.
남겨도 돼?(잡곡밥의 신비한 힘)
물론이지! 배 부르면 먹는 거 아니야.
예전부터 내가 강조하는 말인데 배부르면 남겨도 된다는 것. 버릴 것인가 내 뱃속에 집어넣을 것인가. 뱃속에 버리지 말고 남겨라. 아깝지 않냐고? 아까우니까 나머지는 내 차지가 된다. (본의 아니게 내가 늘 배부른 이유다)
이렇게 오늘도 아이의 배는 조금씩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46,47kg을 왔다 갔다 하지만 지금의 목표는 몸무게 유지이기에 이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정상체중이 41.6kg지만 성장기 아이에게 그것은 불가능할 듯하고,정상 몸무게가 되는 날까지 현 체중을 유지하도록 한다.
얼마 전 친정엄마와 외식을 했다. 오랜만에 먹는 한우를 두 번이나 주문했고 무한리필인 흰쌀밥을 다섯 번도 더 가져다 먹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기겁을 했다. 그야말로 식욕이 폭발했다. 잘 먹어서 예쁜 게 아니라 그만 먹어라가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마법의 음식, 그건 바로 아이의 최애 음식, 다이어트의 적! 흰쌀밥이다. 고로 나는 흰쌀밥을 짓지 않는다.
기다려라 아이야. 생일이 되면 뜨끈한 미역국에 흰쌀밥 한 공기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