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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Mar 15. 2024

지방아 멈추어다오

인바디 결과지가 말하길 근육 3.5kg을 늘리고 체지방은 무려 9.6kg을 줄이란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지방 9.6킬로그램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양일까? 뭉글뭉글한 지방덩어리가 아이 몸 어느 구석에 속속 숨어있는 것일까. 가장 확실하게 눈에 띄는 곳은 배와 허벅지지만 턱선과 팔뚝에도 어느새 퐁실한 지방이 내려앉았다. 그나마 옷을 입혀 놓으면 통통한 얼굴이 귀여워 그럭저럭 봐줄 만(?)하지만 샤워한다고 옷 벗고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란... 입이 잔소리를 하고 싶어 근질근질할 지경이다.


근육은 모자라고 지방은 많은 아이. 체중까지 오버되어 버린 아이. 운동과 적당한 식사로 지방은 줄여나간다지만 근육은 엄마의 몫인가. 이로써 목표는 더 세분화되고 확실해진다. 근육은 늘리고 지방은 태워버린다. 태우지 못한다면 늘어나지 않게 최대한 버틴다.




채소를 기본으로 적당한 탄수화물을 먹이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단백질에 최대한 신경을 쓰는 중이다. 고기를 준다면 기름 부위는 싹둑싹둑 잘라내거나 대부분 삶고 굽는다. 모든 음식은 튀기거나 볶지 않는다. 볶음 요리의 경우엔 물로만 볶아내는 편이다. 오일은 샐러드에 뿌리는 올리브오일만 허용한다. 사실 오일은 거의 쓰지 않는다. 목표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지방아웃! 이미 충분하게 차고 넘친다.


고기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주는데 그 와중에도 기름기가 적은 고기를 고른다. 실은 그마저도 주고 싶지 않지만 성장기니까. 소고기 지방이 가장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있으므로 소고기는 가끔, 주로 돼지고기와 닭고기로 요리한다. 닭고기는 삶거나 구워 샐러드와 한 접시에 담아내는 편이고 불고기를 할 경우에는 고기 양의 두 세배되는 채소를 넣는다. 이건 떡볶이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인데 떡볶이라기 보단 양배추 빨간 국일 정도로 채소가 많이 들어간다. 가끔은 떡볶이인 척 고구마를 길게 잘라 넣기도 한다.  


가장 열심히 먹이려고 노력하는 단백질은 콩이다. 고소한 병아리콩을 잔뜩 삶아 샐러드로도 주고 밥에도 넣고 가끔은 견과류인 척 입에 넣어주기도 한다. 맛이 괜찮은지 꽤 잘 먹고 있는 병아리콩은 이미 우리 집에서 없어선 안 되는 식재료가 되었다.


다음은 두부. 두부는 일단 내가 좋아한다. 그렇기에 이 국, 저 국에 항상 두부가 떠다닌다. 미역국에 넣은 두부는 맛이 조화롭기까지 해 강력히 추천한다. 푹 익어 몰캉한 두부를 건져먹을 때의 기분이란. 은 내가 차려놓고 마치 엄마가 해준 밥상을 받는 느낌이랄까. 왜 이렇게 두부가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고기를 잘 안 먹는 내겐 없어서 안 되는 재료이니 언제나 한모 정도의 두부는 쟁여둔다. 가끔은 말간 순두부국을 끓여 새로운 두부 식감을 즐기는 것도 좋아한다.


단백질의 보고 달걀은 늘 냉장고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데 하루 한 알 정도만 허용한다. 저녁보다는 주로 아침에 삶은 달걀 하나를 주는 편인데 갓 삶은 달걀이 맛있는지 바쁜 아침 메뉴로 아이가 즐겨 먹는다. 달걀 또한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인데 달걀 때문에 완전한 비건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 정도로 우리 둘은 달걀을 좋아한다.


정말 다행인 건 언젠가부터 아이 스스로 우유를 잘 마시고 있다는 것이다. 간혹 우유의 진실이란 찜찜한 이야기가 들려오지만 성장기니까 꼭 챙겨주려고 노력한다. 키가 유독 작았던 나의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물대신 우유를 마셔야 키가 큰다고. 나는 이렇게 작지만 물대신 우유만 마신 동생은 180cm가 넘었다고. 한이 되셨는지 엄청 강조하신 기억이 나는데 정작 나는 실천하지 못했고 같은 한을 가진 사람으로서 아이에게 잘 써먹는 중이다. 일주일에 우유 4팩 주문을 절대 잊지 않는다.  


좋은 식습관을 물려주고 싶다. 더불어 엄마와 즐겁게 먹었던 식사시간의 추억을 주고 싶다. 그렇기에 식재료를 강요하기보단 입맛에 맞게 요리하고 정성스럽게 담아 대접받는 느낌을 주고 싶다. 가끔은 두부를 다 먹으라고 넌지시 강요하기도 하지만 뭐, 정 다 못 먹으면 내가 먹으면 되니까. 그 정도의 융통성은 가진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아이는 나에게 온 vip손님이니까. 이 정도는 해드리고 싶다.




띠리릭... 방해꾼이 나타났다. 오늘따라 치킨이 손에 들려있다. 이런! 오늘은 망했구나. 흥분한 아이가 치킨은 못 참는다며 달려든다. 그래 먹자. 단! 치킨 껍질은 기름 덩어리니까 모두 벗겨내고 포실포실한 살만 먹도록 한다. 알았나! 이런 나의 강요가 먹혀들었는지 아이는 치킨 껍질을 벗기고 먹는 아이가 되었다. 벗겨낸 껍질을 아깝다며 가져가 먹는 애아빠는 결국 말리지 못한다.


어린 시기엔 지방세포수가 늘어난다. 반면 성인이 되면 지방세포수는 늘어나지 않지만 비만이 될 경우 이미 자리 잡은 지방 세포의 크기가 커져 몸이 커진다고 한다. 가끔 상상한다. 촘촘하고 몰캉한 지방세포가 타이어에 바람 들어가듯 부풀어 오르는 상상을. 지금이라도 지방세포수를 늘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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