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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pr 02. 2024

자기 주도 다이어트

겨울 방학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다이어트. 물론 본격적이라는 건 엄마인 내 맘이고 아이는 여전히 수동적인 자세로 다이어트 중이다. 아침 공복 몸무게를 재는 아이를 보며 '살아있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딱 그때뿐인 아이의 의지. 하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 어려운 의지를 아이 스스로 가진다는 건, 뭐 알아서 책 읽는 아이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희귀한 일이 아닐까. 


그렇기에 나의 잔소리는 그칠 줄을 모른다. 하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노라면 아휴...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먹고 싶다는 아이를 말린다는 건 사실 못할 짓이다. 


잡곡밥 한 그릇을 먹은 아이는 습관처럼 냉장고 문을 연다. 달달한 간식이 있나 찾아보는 것인데 물론 없다. 내가 아이를 위해 준비하는 것은 과일 정도다. 귤 먹어. 아님 스무디 한 잔 마셔. 매일 반복되는 저녁시간 이야기다. 


이랬던 아이가 어느 날부턴가 살을 빼야 한다고 말한다. 엥? 드디어 스스로 살을 빼보겠다고! 나의 간절함이 아이에게 통한 것일까. 그동안 잔소리라고만 여겼던 나의 주문들이 드디어 아이에게 입력되어 출력되려는 것일까. 


엄마. 나 태권도 익스트림 수업 듣고 싶어. 전 국가대표가 와서 주말마다 가르쳐준대. 그 수업 꼭 듣고 싶어. 아. 태권도.


7살부터 시작한 태권도를 5학년에 올라간 지금까지 쉬지 않고 배우는 중이다. 몸도 움직이고 줄넘기도 배우고 정도의 마인드로 시작한 태권도였는데, 언제까지 태권도를 보내야 하나 슬슬 걱정이 시작된다. 그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말까지 태권도장에 가서 익스트림 태권도를 배운다는 아이다. 


엄마. 익스트림 태권도 하려면 몸이 날렵 해야 해. 살이 찌면 제대로 할 수 없어. 그러니까 내 식단 좀 신경 써줘. 어머. 얘야. 엄마가 그동안 신경 쓴 거 몰랐니. 내가 그동안 했던 이야기들은 어디로 날아가 버린 걸까. 자기 주도 다이어트가 아닌 엄마 주도 다이어트에 한 방 맞은 이 느낌은 뭘까.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슬슬 공부에 신경 썼으면 좋겠고 책도 더 열심히 읽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아도 친구들 만나는 재미에 푹 빠진 아이가 주말마다 태권도장에 간다? 영어, 수학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인데 태권도에 거금이 들어간다? 그래도 괜찮은 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봐도 아이의 의지는 대쪽 같다. 무조건 배우고 싶다는 아이를 말릴 방법은 없는 걸까. 태권도 실장님과 통화를 하며 도대체 어떤 과정을 배우는지 듣고 나서야 조금 감이 잡혔다. 아. 익스트림. 태권도 공연과 시범. 너 막 날아다니는 건 혹시?


잠시 상상을 해본다. 키가 부쩍 더 커지고 홀쭉해진 아이가 송판을 격파한다. 560도 발차기를 하며 하늘을 날아다닌다. 


엄마가 꿈꾸는 아이는 차분하게 앉아서 책 보는 아이인데, 흠... 그건 나 혼자만의 로망이라는 걸 깨닫고 만다. 슬슬 드러나는 아이의 취향. 끊임없이 공을 만지고 아침에 눈을 뜨면 발차기를 하는 아이. 심심하면 쌍절곤을 돌리며 노는 아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아이의 미래 모습에 잠시 당황스럽지만 어쩌면 아이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만다. 


그래. 아직은 속단하지 말자. 어떤 길을 가든 아이의 의지가 있는 길로 가야지. 엄마의 역할은 그런 것이겠지. 너를 끌고 가기보단 네가 가는 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지. 게다가 아이 스스로 살을 뺄 의지가 생겼으니! 그래. 좋은 거다. 드디어 자기 주도 다이어트가 시작되는 거다. 


같은 상황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니까. 


큰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전화를 한다. 실장님. 익스트림 태권도 등록하겠습니다!

(살 좀 쪽 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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