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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Feb 17. 2024

아이와 채식을 시작합니다

엄마! 오늘 아침 몸무게 46kg이야!


뭘 했다고, 다이어트 결심을 하고 약간의 간식을 제지시키고 적당량의 밥 한 공기와 샐러드를 주었을 뿐인데. 그새 공복 몸무게가 2.5킬로그램이나 줄었다. 역시 시작이 반이다.


반면 아이의 다이어트 코치라고 외치던 나의 몸무게는.

헉. 이런...

+3kg.


아이의 다이어트를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나의 몸을 점검하게 된다. 이는 나와 살아가고 나를 보고 배우고 내가 먹는 음식을 먹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손웅정 님도 아들과 똑같은 운동을 한다고 하지 않나. 본인은 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시킬 수 없다던 말이 강렬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오히려 한창때의 아들보다 근육이 더 탄탄해 보이던 손웅정 님! 


그런데 나의 상황은... 십 년 동안 꿈쩍하지 않던 몸무게가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겨울 내 수면바지에 감춰져 있던 허벅지와 엉덩이가 둔탁해졌고 팔뚝이 통통해지기 시작했다. 야금야금 늘어가던 몸무게를 애써 외면했는데 오늘 재보니 정확히 3킬로그램이 늘었다. 이건 비상이다. (아이 다이어트를 신경 쓰다 내 살이 찌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겨울 내 먹어온 팝콘과 맥주의 부작용인가. 그것도 아니면 시럽 두 번 넣은 카페라테의 저주?


아이와 먹는 것이 거의  나. 내가 먹는 것이 곧 아이의 먹거리가 된다. 그렇다면 나부터 잘 먹어야 한다. 아이를 바꾸기 위해선 내가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고로 나의 다이어트이기도 하다.


오물거리던 과자는 끊었고 더불어 팬트리의 간식도 싹 비웠다. 비워낸 자리가 허전하지 않게 식재료를 채운다. 역시나 나의 계획은 채식이다. 10킬로그램을 뺏을 때도, 10년 넘게 몸무게를 유지했을 때도 변함없이 함께했던 채소들.


비건으로 태어난 엄마의 영향인지 아이도 채소를 잘 먹는 편이지만, 다이어트를 위해선 조금 더 공격적으로 채소를 먹이기로 결심한다. 살을 빼는 다이어트가 아닌 아이의 입맛을 바꿀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


이번 겨울엔 부쩍 채식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관심이 관심을 불러 모은다고 인스타 알고리즘은 수없이 많은 비건들의 메뉴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제는 매일 샐러드를 만들어야 하기에 여러 레시피들을 틈나는 대로 찾아보고 저장한다.


이 정도로 채소를 좋아했었나. 샐러드 한 접시를 툭탁툭탁 휘리릭 만들어 내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진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여지없이 전날 봐둔 채소들이 장바구니에 소복이 담겨있다. 딩동. 배달까지 초스피드.


자르고 씻고 스피너에 돌려 착착착.

샐러드볼을 미리 만들어 두면 먹을 때 편리해요

냉장고를 열면 뿌듯함과 푸릇함이 가득하다. 그 와중에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간식은 오로지 과일뿐. 변해버린 입맛으로 손을 멀리하던 귤을 열심히 까먹는 아이가 예뻐 보인다. 아니다 안 예뻐 보인다. 한 번에 8개씩은 안된다! 4개만 먹어!


방학엔 아이와 하루 두 끼를 먹는다. 여름에도 그랬고 이번 겨울에도 마찬가지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으로는 과일과 요거트, 계란을 위주로 먹는다. 예전엔 빵과 잼, 치즈, 아이가 좋아하는 팬케이크도 자주 해주었지만 이젠 그마저도 주지 않는다. 야박한가? 야박한 엄마는 탄수화물로 감자를 준비한다.


태권도 학원에 다녀온 오후 시간, 아이는 유독 배가 고프다. 배고픈 아이의 뱃속으로 간식이 들어가기 전 오늘의 메인 저녁요리를 재빨리 준비한다.


오늘 메뉴는 뭐야?

샐러드!

매일 반복되는 질문과 한결같은 대답.


오늘은 어떤 샐러드를 만들어볼까. 어떤 재료를 넣어야 아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샐러드가 탄생할까. 어떤 메뉴가 되었든 아이의 밥그릇 옆에는 샐러드 한 접시가 놓인다.(샐러드는 다 먹으라는 무언의 메시지도 반드시 함께 놓인다.)

샐러드가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 이 맛을 아이도 알았으면 좋겠다. 고기를 찾는 아이지만 그건 일주일에 한 번만. 대신 너를 키워줄 콩과 친해지길.


너의 입맛은 자라는 중이야. 나는 너에게 채소의 맛을 알려주고 싶어.
다양한 친구를 알아가듯 채소 하나하나의 맛을 천천히 알아갔으면 좋겠어.



나는 오늘도 아이와 샐러드 한 접시를 맛있게 먹는다. 채소를 오물거리는 아이의 입은 얄미울 정도로 귀엽다. 어느새 나의 눈엔 다 큰 아이의 모습이 어린다. 키 크고 늘씬한 남자가 나와 함께 샐러드 한 접시를 맛있게 먹고 있다.(음하하)



띠리릭. 꿈에서 깨라는 소리다. 현관문이 열린다. 그가 들어온다. 

어휴. 오늘도 과자 사 왔어... 역시나 방해꾼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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