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에 꿈이 하나 있었다. 다이어트 전문가. 내 살을 다 빼고 나면 그 경험으로 살찐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내 살을 다 빼고 나니 다이어트의 '다'자도 듣기 싫었다. 다이어트가 없는 인생이란 얼마나 황홀한 것인가.
이런 상태로 꽤 오랜 시간을 살고 있다. 기본적으로 고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채소를 좋아한다. 의식적으로 녹색을 찾아가며 먹고 있지만 입맛에 맞기 때문에 먹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어쩌면 태어났을 때부터 채식주의자로 태어났을 수도 있다. 짜장면을 처음 먹었던 날을 기억한다. 입 안에서 물컹하게 씹히던 그것을 뱉어냈던 기억. 본능적으로 삼킬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짜장면을 필두로 시간이 지나면서 뱉어내는 것들이 늘어났다. 예를 들면 볶음밥에 잔잔하게 들어간 고기, 그런 것들은 골라내기도 번거로웠지만 삼킬 수 없기에 일일이 골라냈다. 이렇다 보니 태어나서 한 번도 주문하지 않은 메뉴가 밥 위에 고기가 잔뜩 올라간 제육볶음밥이다.
성인이 되어 삼겹살 맛을 알고부터는 통으로 구운 고기는 간간히 먹고 있지만 그마저 한 달에 한 번을 먹을까 말까이니 나는 태생적으로 채식주의자의 취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진다.
이랬던 나도 아이를 낳으니 단백질에 신경 쓰게 된다. 어쩌면 단백질을 충분히 먹지 못해 내 키가 이거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니 유전을 고려해서라도 단백질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단백질은 두부, 콩, 계란, 우유 같은 것들이다. 반면 아이가 생각하는 단백질은 고기다.
나와는 반대로 아이는 그렇게 태어났다. 처음 맛보았던 고기를 뱉어내지 않았다. 뭐든 주면 주는 대로 꿀떡꿀떡 잘 받아먹었다. 이런 아이에게 음식을 덜 주기로, 심지어 나의 식습관을 일부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고기단백질, 나머지 6일은 식물성 단백질. (6일 비건 다이어트?)
방학 중인 아이는 카타르 아시안 축구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룰을 이해하고 손흥민 선수 에세이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한다. 손흥민 선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아버지 이야기로 관심이 확장된다. 초3아들의 작은 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아들의 코치가 된 아버지. 이야기를 들을수록 아이의 다이어트 코치가 된 나를 상상하게 된다. 다이어트 전문가가 되려던 작은 꿈을 이제야 이루는 건가.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골칫거리인 내 아이를 위해서.
외동인 아이는 기쁨을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 나는 요즘 2002년 이후 식어버린 축구 열정을 아이를 통해 다시 불태우고 있다. 그 시간만은 엄마가 아닌 아이의 친구로 둔갑하여 순수한 기쁨을 같이 누린다. 축구가 끝나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에게 이때다 싶어 이야기한다. 손흥민 선수에게 아버지 손웅정이 있었다면 엄마는 너의 다이어트 코치 이웅정이 될 거야. 우리 잘해 보자. 아이가 부디 손흥민선수처럼 아버지의 뜻을 순순히 잘 따르길 바라며.(과연?)
아침 공복 몸무게가 너의 몸무게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계속된 엄마의 다이어트 설교에 어느 날부턴가 아이는 아침마다 공복 몸무게를 재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침마다 외친다. 오늘은 00 킬로야! 그래, 그렇게 시작해 보자.
다이어트는 너의 일임을, 몸무게는 너의 것임을, 나는 너를 도와주는 너의 다이어트 코치임을. 너는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