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나

by 이다

미니멀리스트.

이 단어가 일상에 울려 퍼진 지는 꽤 된 것 같다.

티비에서는 신박한 정리라며 물건을 정리해주고 버리기를 독촉한다.

우르르 떼로 나타난 정리 전문가들은 아수라장이었던 집을 순식간에 정리해주고 사라진다.

구석구석이 말끔해져 있다. 보는 내가 다 시원하다.

따따라라라~ 익숙하게 울려 퍼지는 BGM은 '들어와 보세요. 이렇게 바뀌었어요'라고 얘기해주는 듯하고, 정리를 당한 주인장은 어느새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한다. 이윽고 감사하다며 눈물을 펑펑 쏟아낸다.

그 장면을 보는 나도 덩달아 울어버린다.

'그러게 좀 치우고 살지 그랬어. 내가 가서 도와주고 싶다. 진심으로.'






미니멀리스트가 된 지 5년이 되었다.

잠도 오지 않던 어느 날 밤, 우연히 발견한 블로그가 발단이었다.

블로그 주인장은 글도 잘 썼지만 주인장이 보여 준 집안 풍경은 순간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아 무 것 도 없다. 거실에 아 무 것 도 없다. 사진으로 보이는 싱크대 위 역시 아 무 것 도 없다.


그나마 거실과 이어진 주방엔 식탁과 의자 두 개가 있었고, 다행히도 냉장고는 하나 있었다.

화이트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스메그 냉장고였다.

없을 건 없어도 제대로 된 걸 갖추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찰나, 보여준 또 다른 사진엔 딸랑 침대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날 밤 받았던 충격은 내 머리를 타고 발 끝으로 내려와 찌르르르 소리를 내며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뭐지? 나 지금 뭘 본거지?

그런데 왜 세수한 아이 얼굴을 보는 것 마냥 개운해지는 느낌이 드는 걸까.

주인장은 아무것도 없는 거실을 매일 밀대 걸레로 청소한다고 했다.

먼지 하나 없는 뽀드득한 거실에 하늘거리는 커튼, 그 사이로 내리쬐던 한줄기 햇살은 맑은 유리같이 빛났다.


그날 밤의 충격은 이후로도 가시지 않았다.

당장 정리가 하고 싶었다.

거실을 싹 비우지는 못해도 최대한 삶의 많은 부분을 덜어내고 싶었다.

다른 블로그들을 검색해보니 1일 1 버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루에 하나씩 물건을 버리라고?

주워오면 주워왔지 버린 적이 없던 나는 아직 그것까지는 못하겠다며 청소를 시작했다.

매일 쓸고 닦고 눈앞에 보이는 물건들이 있으면 각 잡아 정리하며 정리 전문가가 되어갔다.

더군다나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던 아이 물건은 나를 더욱 정리의 길로 이끌었다.

비우고 치우기만 꼬박 일 년. 하루에 3시간 정도는 무조건 청소와 정리를 했다.

머릿속의 목표는 항상 그녀의 거실이었다.


'아, 이렇게 정리만 하다가는 더 이상 못살겠다!'


정리에 두 손 두 발 든 나는, 어느 날 드디어 버리기 시작했다.






우선,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물건들 위주로 정리가 시작되었다.

일 순위는 옷. 나가지도 않는데 언젠가는 입을 거라며 한자리 차지하고 있던 옷이 타깃이었다.

'이게 얼만데. 입을 거 같은데' 옷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려도, '아니야. 넌 5년 내 자리만 차지했다고. 이제 좀 나가줘야겠어' 과감히 비우기 시작했다.

한번 버리기 시작하니 거침이 없었다. 버리면 버릴수록 공간이 생겨났고 새로 만들어진 공간은 이상한 쾌감을 주었다. 물건을 버림으로써 공간을 얻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우리 집을 다 차지하고 있었군. 더군다나 나까지 일을 시키면서'


그 이후로 1일 1 비우기가 아닌 눈에만 띄면 버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버리기는 평소에도 틈만 나면 실행했지만, 주말은 대대적으로 비우는 날이 되었다.

옷장을 연다. 마음이 설레지 않으면 버린다. 이 방법은 일본의 유명 미니멀리스트 책을 읽으며 터득한 방법인데, 첫사랑 같은 감흥이 없는 물건은 버리는 것이다. 버리기 시작하니 과감해졌다. 몇 개 없던 명품도 더 이상 필요 없다며 갖다 버렸다. 웬일인지 비싼 물건을 버릴 때의 쾌감은 더했다. 입고 있던 코트도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무거운 옷'이라는 생각에 그 즉시 버렸다. 손님이 많이 오지 않아 남아도는 그릇은 나눔으로 내어 놓았다. 운동화만 신어 더 이상 신지 않는 구두도 버렸다. 이불은 건조기가 충분히 말려주니 계절당 3벌을 남기고 몽땅 버렸다. 거실을 차지하고 있던 덩치 큰 소파는 극성맞은 엄마와 어린 아들이 낑낑대며 내다 버렸다. 티비를 받치고 있던 티비장도 버렸다. 자잘한 소품들은 수시로 버렸다. 보는 순간 '넌 아니야' 하는 느낌이 들면 바로 버렸다. 이렇게 하루를 멀다 하고 버려대는 엄마와 아들을 경비 아저씨는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집안의 물건을 빼내기에 매일이 바빴다.

이렇게 버린 지가 5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집이 넓어졌냐고? 거실에 물건이 하나도 없냐고?

이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딱히 사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디서 나를 찾아온 물건들이 그렇게나 많은 건지, 아직도 우리 집 거실엔 물건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져다 버린 소파가 무색하게 그 새 '미니멀한' 소파가 떡하니 거실에 놓여있다. 내가 실천하는 미니멀리즘엔 아이러니한 점이 하나 있다. 핵심은 나를 설레지 않게 하는 물건 버리기인데, 간혹 물건을 버리러 가면 나를 사로잡는 물건들이 있다. 멀쩡한데 버려지는 물건들이 종종 내 눈에 띄는 것이다. 심장이 쿵쿵 뛴다. 뭐야 사랑에 빠진 거야? 줍고 싶지 않은데 어느새 내 손은 딸려온 그 아이들을 박박 씻겨주고 있다. 너에게 반했다고. 어떻게 너의 주인은 너 같은 아이를 못 알아보고 버릴 수 있냐며. 우리 집에서 잘 지내보자고.


갑자기 이런 노래가 떠오른다.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5년을 꾸준히 버리며 내가 얻게 된 것은 무엇일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항상 깨끗하고 정리 정돈되어 있는 집안 상태다.

나를 미니멀리즘의 세계로 빠트린 그녀의 상쾌한 거실을 나 또한 얻은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물건이 많다. 아직 그녀만큼 비우지 못했다.

아니, 그녀만큼은 비울 수 없을 것도 안다.

아무리 비워도 나를 설레게 하는 물건들이 끊임없이 나의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히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

이제 내 주위는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나의 버리기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1. 나를 힘들게 하면 버린다.

2. 나를 가슴 뛰게 하지 않으면 버린다.

미안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면, 나를 가슴 뛰게 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버려진다.

이렇게 정리된 우리 집은 사방을 둘러봐도 내가 애정하는 물건들로만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미니멀리즘을 꾸준히 하며 깨달은 것은 결국은 물건에게도 주인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주인만 알아볼 수 있는 물건의 생김새다.

이전엔 그저 물건과 같이 동거했던 것이라면 지금은 내가 그것들을 흡족하게 사랑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아빠! 엄마 또 버려"

"그만 좀 버려라. 그리고 부탁인데 내 건 버리지 말아 줘"

주말이 시작된다. 사랑의 레이더가 돌아갈 시간이다. 이번 주말엔 어떤 걸 비워볼까.

정말 신기한 건 어떤 것을 버릴까 하는 마음이 어떤 걸 살까 하는 마음만큼 설레고 두근댄다는 사실이다.

나는 텅 빈 미니멀리스트가 아닌 애정으로 꽉 찬 미니멀리스트다.

비움으로 알아낸 그 상쾌한 공기를 알기에 난 오늘도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