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아니었지만 낯설어서 도저히 책을 읽을 수 없던 곳 도서관, 나에게 도서관이란 그런 이미지였다. 대학생 때는 도서관에 가면 주로 잠을 잤다. 고요함 속에 사락사락 넘어가는 책장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던 곳이다. 그곳에 이번엔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처음으로 마주친 어린이실은 놀라웠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 책이 다 있다고 생각될 만큼 많은 책이 있었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놀라움은 잠시 접어두고 나와 아이의 회원증을 만들었다. 그리고 야심 차게 도서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글을 못 읽는 아이는 책냄새를 맡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천방지축 날뛰는 아이를 본 사서선생님에게 아이단속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제야 얼른 아이 손을 붙잡고 밖으로 나가 물을 마시게 했다. 진정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서둘러 가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는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제법 따뜻한 날이었다. 아무도 없는 칼국수집에 들어서니 흥분이 가라앉았다. 우리는 도서관에서 못 읽었던 책을 칼국수 집에서 읽었다. 그날, 아이는 '축구왕 해리'를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다. 우리의 첫 도서관 나들이였다.
그날 이후, 우리는 매주 혹은 격주로 도서관에 갔다. 그곳에서 진득하게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집중된 분위기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좋았다. 그리고 그 속에는 열심히 책을 고르는 내가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울적하고 찌뿌둥하다가도 도서관만 가면 신이 났다. 아이보다 엄마가 더 신나서 공짜책을 마구 집어왔다.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자 '한 달이면 도대체 얼마의 돈을 아끼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신간들을 마음대로 볼 수 있다니! 그동안 재활용장을 어슬렁거렸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빌려온 책은 책장의 한 칸을 비우고 그곳에만 두었다. 그리고 이주일 동안 그곳의 책만 읽었다.
어느새부턴가 집에 있는 책들은 공간만 차지하며 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만 다 읽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공간만 덩그렇게 차지하고 있는 책을 보려니 머리에 후덥지근한 기운이 몰려왔다. '우리 집 벽이 답답하진 않을까' 샤워를 시켜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생각을 해봤다. 나는 도서관에 2주에 한 번씩은 다니고 있다. 그리고 21권의 책을 빌려온다. 우리는 2주 동안 21권의 책을 읽는다. 사실 그것만 다 읽기에도 급급하고 시간이 모자라다. 그렇다면 책장의 책들은 언제 읽지? 이런 생각에 이르자 책장은 덩치 큰 짐처럼 느껴졌다. 책에는 먼지만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어느 날부턴가 조금씩 책을 비우기 시작했다. 욕심으로 들고 온 책들은 도로 내어놓고, 일부는 동생네로도 보내고, 일부는 나눔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나브로 책장을 비웠다. 한 칸씩 책을 비우고 걸레로 먼지를 쓱 닦아낼 때의 상쾌함이란. 아마도 비운자 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일 거다. 책장을 비워나가자 비로소 숨을 쉴 것 같았다. 내 욕심도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평화로웠다.
비움이 시작되고부터는 책을 사지 않았다. 툭하면 재활용장을 돌아다니며 책을 집어오는 일도 그만두었다.
그리고 생각을 살짝 바꿔보았다.
도서관은 내 거다! 이 많은 책을 내 집 대신, 이런 넓은 공간에 보관해 주다니!
게다가 공짜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자, 동화책 한 권 없던 나는 갑자기 세상 제일 책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꼬마들을 볼 때면 내 책을 잠시 빌려 읽는 열혈 독자들로 보였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눈이 웃고 있었다. 나는 많은 책 중에서 이주동안 읽을 책을 내 집으로 가져가서 읽고, 다시 보관장소에 가져다 둔다. 죽어도 다 읽지 못할 만큼의 책을 소장한 나는 더 이상 책을 사지 않아도 된다. 아니 사지 않는다. 머리가 살짝 미치자 세상이 즐거웠다.
햇수로 3년, 나의 도서관 다니기는 계속되고 있다. 아이는 한 달이면 책장 두 칸 분량의 책을 읽으니 그것만 계산해 보아도 책장 3개 분량의 책을 읽은 셈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아찔해진다. 그 많은 책을 다 샀다면, 물론 다 살 수도 없었겠지만, 아마 집안은 온통 책이 차지하고 말았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다행이다 싶다. 요즘엔 이마저도 전자책을 이용하는 횟수가 늘고 있으니 조만간 도서관 가방이 가벼워질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책이 있다면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을 해본다.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웬만하면 사지 않는다.
가슴이 뛰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
한번 보고 잠들 책은 사지 않는다.
책내용은 머리에 넣을 뿐이다.
밑줄은 긋지 않아도 좋다.
정 긋고 싶다면 필사를 해서 독서노트에 기록한다.
급하면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해서 반드시 곁에 두어야 할 책이라면 산다. 그것이 일 년에 두어 권이다.
먼 길을 돌아 이곳에 왔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생각해 보니 참 길고도 먼 길이었다.
임대료도 들지 않는 나의 도서관.
그곳엔 나의 책이 있다.
나는 더 이상 책을 사지 않는다.
by 약간 미친 미니멀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