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옷을 사지 않는다

by 이다

미니멀리스트인 나는 옷을 사지 않는다. 이렇게 지내온 지 10년이 넘었다. 정확히는 결혼을 하고부터다. 결혼이 경제관념이라도 심어 준 것인지, 나는 나를 위한 쇼핑에 손을 대지 않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어디서 생겨나는지 옷이 자꾸 생긴다. 내 돈으로 사지는 않지만 보다 못한 내 엄마가, 내 신랑이 가끔 선물을 해오기도 한다. 그것도 아니면 어디선가 옷뭉치들이 나에게 자꾸 흘러들어온다.






내 엄마는 쇼핑중독자였다.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 가끔 지름신이 오기도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일취월장했으니 더 이상 중독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집으로 들어오는 내 엄마 손에는 항상 커다란 쇼핑백이 몇 개나 들려있었다. 가끔은 너무 무거우니 가지러 나오라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쇼핑백을 받아 든 나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낑낑대며 들고 들어온 쇼핑백에서, 오늘은 어떤 물건이 나올까, 내심 기대하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들여온 쇼핑백엔 항상 옷이 들어 있었다. 오늘도 얼마를 썼으려나 궁금했지만 그건 내 엄마의 돈이니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 가세가 기울어 전학도 많이 다녔고 집안이 넉넉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몇 해가 흘러 집안 형편이 나아지자 아빠는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울화가 치밀었던 내 엄마는 언젠가부터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수입코너에서 발견한 특이한 그릇들, 어디 놓일지도 알 수 없었던 각종 장식품들을 비롯해 빨간 립스틱을 유난히 좋아하던 내 엄마는 번호만 다른 빨간 립스틱을 끈질기게도 사들였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하루도 빠짐없이 옷을 사들고는 발갛게 흥분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내 엄마였다. 그리고 나는 엄마덕에 쇼핑을 맛보는 아이였다.



물건의 맛을 알고 쇼핑의 흥분을 알았던 나는, 또한 가세가 급속히 기울었던 걸 생생히 기억하는 나이기도했다. 그래서 돈을 잘 쓰지 않는 나였다. 이런 나를 내 엄마는 쩨쩨하다고 했다. 그 말이 듣기 싫었지만 나는 천상 쩨쩨한 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니멀리스트라는 자아가 슬며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쩨쩨한 나를 소비의 미니멀리스트로 바꾸어 놓았다.



물건을 잘 사지 않게 된 나는 특별히 내 옷에 관해서는 철저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이것은 옷 쇼핑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내 엄마를 통해 일찌감치 깨달았고, 더불어 패션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 또한 그 값비싼 옷들이 얼마나 상업적인가를 알게 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패션 일을 하면서 수많은 명품들을 밥먹듯이 봐온 나는 그것들이 잘 꾸며진 허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옷을 안 산다는 게 그새 소문이라도 났는지, 내가 사들이지 않은 물건들이 나에겐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 대부분은 내 엄마가 사들인 것의 소분거리이며 거기에 한몫 더하는 내 아빠의 홈쇼핑 잔재들이다. 그리고 더 이상 옷을 사지 않는 나에게, 어느샌가 내 동생은 작아진 옷들을 철마다 안겨준다. 더 웃긴 건, 내 신랑도 어디서 얻었을지 모를 옷뭉치들을 자꾸 가지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에겐 아주 많은 옷이 생기고 만다.


"너 패션 전공한 애 맞니?"


구색 안 맞는 옷을 입은 나에게, 툭하면 옷 잘 사는 내 동생이 자주 하는 말이다.


그렇다. 나는 어느샌가 내가 의도치 않은 옷을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얻어 온 옷뭉치에서 건져 올린 것이다. 나에게 들어온 옷이지만 맞지 않거나, 도저히 내 취향이 아닐 때는 슬그머니 분리수거함에 넣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잘 입어보자 다짐하며 꽤 열심히 입고 다닌다. 일종의 재활용이다. 그래도 뭐 눈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니 그런대로 괜찮다. 멋 부릴 나이도 지났으니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감당할 수 있어 한편 다행이기도 하다.


이렇게 사는 나에게 내 엄마는 종종 이런 말도 한다.


"평생 얻어먹는 팔자"


조금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지만 이 말도 맞다.

가만히 있어도 먹을 것이 생기고, 입을 것이 생기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옷을 사지 않는다.

사지 않아도 이렇게 비울 것이 많은데, 나까지 옷을 사 들인다면 안 그래도 작은 나의 옷장은 아마 숨을 쉴 수 없을 것이다.

평생 얻어먹는 팔자면 또 어떤가. 소비단종 미니멀리스트인 나에게는 감사한 일이다.


돈을 쓰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안 쓰고 살고 싶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살림에 필요한 물건이 끊임없이 생기기 때문에 무언가를 사긴 사야 한다. 그러니 옷을 포함한 사치품이 제외된 나의 쇼핑목록은 잡다한 생필품과 먹을 것으로만 빼곡하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버겁다.



사들이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에는 더욱 좋다는 걸
내 엄마도 언젠가 알았으면 좋겠다.



쇼핑중독자의 딸이었으며 오늘날 미니멀리스트인 나는 오늘도 사지 않고 비우기로 다짐한다.

내 엄마가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면, 나는 비우기로 당당하게 내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그렇게 해서 비워진 공간은 쇼핑으로 채워지는 공간보다 더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이렇게 해서 남아도는 통장의 잔고는 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