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둘이는 참 달라"
이 별 것 아닌 문장을 "넌 뚱뚱하고 언니는 날씬해"라고 오역한 나의 다이어트는 첫 시작부터 실패였다.
사춘기 소녀의 다이어트는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다. 우선 살을 빼기로 결심은 했는데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이 문장은 하루라도 안 들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만큼, 알 수 없는 불안에서 나를 건져주는 유일한 말이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현실의 모습이야 어떻든 언니와 다르다는 그 말만이 떠올랐다. 목표는 단 하나, 그저 언니처럼 날씬해지고 싶다. 허리 24인치의 가늘가늘한 스물한 살 그녀가 부럽다. 언니 바지에 다리를 욱여넣어봐도 언니처럼 예뻐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통통하고 짧은 다리만 드러났다. 엄마는 "넌 사춘기라 지금은 옷 사기가 애매해. 맞는 바지가 별로 없어서 옷 사기가 힘든 때야"라며, 활활 타오르는 불에다 기름을 들이부었다. 이 말은 "네 다리는 아직 짧고 통통해서 맞는 바지가 없다"로 들렸다. 지금은 널린 게 청소년 옷인데 왜 그때는 그렇게 찾기 어려웠을까. 한참을 더 커야 하는 성장기의 소녀는 통통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아무런 정보가 없던 소녀는 첫 번째 다이어트 방법으로 굶기를 선택했다. 많이 먹어서 통통한 거라면 안 먹고 빼주겠어. 배가 고파도 끝까지 참는 것. 아주 단순한 결론이자 사춘기소녀에게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었다. 안 그래도 더 크려는지 앉은자리에서 밥 한 그릇씩 뚝딱하던, 입맛만 살아있던 소녀에게 음식과의 안녕이란 커다란 고통이었다. 음식을 보고 참아야 하다니.
가장 신경 쓰이던 때는 신체검사였는데, 목표 몸무게를 이루기 위해 세명의 친구와 3일간 단식에 돌입했던 적이 있다. 하루 이틀은 괜찮았다. 그런데 3일째 되던 날, 웬일인지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표현하기 힘든 허기가 몰려왔다. 휘청휘청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자동으로 냉장고문을 열었다. 눈이 뒤집힐 것만 같은 허기에 밥통 뚜껑도 열었다.
반찬을 꺼낼 힘도 없던 나는 어둠 속 시뻘건 냉장고 불빛아래서 밥통을 껴안고 음식을 마구 입에 쑤셔 넣었다. 영락없는 호러물의 좀비였다. 다행히도 이런 나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었다. 5분 정도 그렇게 밥을 퍼먹으니 살 것 같았다.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파 잠에서 깨기도 하는구나. 이래서 아픈 사람에게 포도당을 놔주나 보다'
배고파 죽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제대로 실감한 아침이었다.
방법을 몰라 선택했던 가장 원초적인 방법, 굶기는 사춘기 소녀의 성장을 멈춰 놓았다. 부작용은 심각했으니 이 다이어트 방법은 무섭게 살이 찌는 몸으로 체질을 바꿔 놓았고, 한낱 어린 소녀를 음식 추종자로 만들어버렸다. 음식 샘이 없었는데 음식을 끝없이 갈망하는 자아가 생겨난 것이다. 잘 못 뿌린 씨앗, 인과응보였다.
머릿속엔 항상 음식이 둥둥 떠다녔다. 떠올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꿈에서도 먹을 것이 나타났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굶으면 안 돼요. 큰일 나요. 처음엔 빠지는 듯 하지만, 음식을 끝없이 갈망하는 자아가 생긴답니다.
그리고 그 자아는 절대 막을 수가 없어요.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요. 그러니 굶지 마세요.
그땐 정말 몰랐답니다. 전 그저 빨리 바뀌고 싶었어요. 다이어트를 오래 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이렇게 오랜 싸움이 될지 몰랐답니다.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보면 통통하고도 앳된 내가 웃고 있다. 미안하다 그 아이에게. 제대로 된 방법을 알려줬어야 했는데, 그땐 내가 방법을 몰랐어. 지금이라면 너에게 친절하게 알려줄 수 있을 텐데. 성과 없는 6년이 지나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다이어트는 시작도 되기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