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면 기분이 좋다. 다 먹고 나면 기분이 상한다. 내 뱃속으로 또 음식이 들어갔다. 빼내자. 이 단순한 생각은 몸에 안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 잘 못된 생각이 거식 혹은 폭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뼈만 남은 모델들의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고 정신없이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증상들이 티비 프로그램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나도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계속된 절식과 요요는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어갔다. 먹을 때는 행복감이 마구 밀려오다가도 어느 순간 내가 뭐 하고 있나를 깨닫는 순간 심한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의 식사패턴은 폭식증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병원을 가보는 건 어때?"
이 물음에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내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는 거겠지. 어디 단식원이라도 일주일 다녀오고 싶었다. 그곳에 갇혀있는 나를 떠올리며 결국은 먹고 싶어 뛰쳐나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즈음엔 자꾸 튀어나오는 식욕을 어쩌지 못해 씹고 뱉어내는 것도 해보았다. 그리곤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래서 먹고 토하는 거식증이 오는 거구나. 무서웠다. 토하는 것은 아니지만 음식을 씹고 바로 뱉어내니 아무 맛도 느낄 수가 없었다.(더러운 건 내 몫이었다) 음식은 꼴깍 삼켜야 비로소 만족감이 든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다가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인간이 되었을까. 이런 내가 싫었지만 한 번 들어온 강박은 쉽게 뿌리칠 수가 없었다. 살을 뿌리 뽑든 강박을 뿌리 뽑든 무언가를 해야 살 것 같았다. 그때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한 여인이 있었다. 살이 찌고 모든 것이 망가졌다. 200킬로그램의 거구가 된 그녀 옆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남편마저도 떠났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 날 그녀는 결심한다. 한 발자국만 걸어보자. 초고도비만의 그녀는 잠깐만 걸어도 숨이 찼지만 그렇게 한 발자국을 내디뎠고 어느 날부턴가 조금씩 더 걸을 수 있었다. 슬금슬금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죽을 것만 같았던 그녀는 살고 싶어졌다.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자 그녀는 그 길로 운동을 시작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운동을 했다. 다리가 부러지면 상체운동이라도 했다. 운동은 그녀 삶의 철칙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끝내 150 킬로그램을 감량하며 50킬로그램의 근육질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부기가 빠져 늘어진 살들은 어쩔 수 없이 잘라버렸다. 그녀가 바뀌니 그녀 주변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사랑하는 사람까지 생기게 된 건 덤이었다.
이 에세이를 읽고, 다이어트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무얼 한 걸까. 다이어트는 무작정 살을 빼는 게 아니다. 다이어트는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고, 무너진 생활 습관을 다시 잡는 것이다. 좋은 루틴을 만들어 나를 깨우는 것. 이것이 다이어트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자 가슴이 뛰었다. 그래, 눈에 보이는 살에 집착하지 말고, 내 안에서부터 나를 바꿔보자.
생각을 바꾸자,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작심삼일로 무너지는 날들이 많았지만, 다시 시작하기만 하면 힘이 솟아 나왔다. 다이어트하면 떠올랐던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고 다이어트는 자다가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아주 긍정적인 어떤 개념이 되었다. 뭐 그렇다고 단번에 이런 마인드가 정착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이런 생각이 나에게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거다. 책을 통해 깨닫는 것이 생기고 그 뒤로 몇 권의 비슷한 책을 더 읽으며 마인드를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잠깐 다이어트 코치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나처럼 고민할 누군가를 정신무장시키고 들들 볶아 살을 쪽 뺄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너나 잘하고 말해라)
운동도 계속되었다. 신디크로포드 다이어트 비디오 1,2편을 마스터할 때쯤 , 곧이어 우리나라에서도 이소라, 조혜련 다이어트 비디오가 연달아 나왔다. (요즘 같이 유튜브가 있었다면, 나는 아마 잠도 안 자고 운동하고 있었을 거다!) 정신무장이 된 나는 무섭게 운동을 해나갔다. 그만큼 운동이 생활 깊숙이 파고든 때였다. 평생 할 운동을 이때 몰아서 다 했는지 지금은 산책만 해도 그때가 떠올라 무섭다.
1학년을 마치고 돌아보니 일찌감치 정신 차린 똑똑한 동기들은 벌써 제 앞가림을 하고 있었다.
'이제 나를 찾자. 살 말고 살 속에 갇힌 나 말이야'
짝사랑도 음식도 계속 나를 아프게 했지만 그럴수록 조금씩 나에게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내 전공에서도 헤매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끝없이 밀려왔다. 마침 우리 학교에는 유명한 과가 있었다. 의상학과. 그나마 무언가를 끄적일 수 있는 곳.
문과대 바로 뒤편이 걔네들의 건물인데 점심시간에 보면 항상 뒤뜰에 나와 드로잉 과제를 하는 것이 보였다.
걔네들이 끙끙대며 붓질을 하는 모습이 내 눈에는 마냥 신기하고 훔치고 싶은 것이었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느 날, 누군지도 기억나지 않는, 나와 같은 학번이라던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다.
"내가 곧 너네 과에 갈게. 기다려"
다이어트를 하면서 나를 알게 되었다. 나는 뭐든지 시작하면 무섭게 직진한다. 빨리 되기를 바란다. 그게 나였다. 빨리 끝내고 싶어 하고 무섭게 집중하는 사람. 간혹 실패해서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백번이라도 일어나려고 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