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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에 손을 대다

by 이다

의상학과. 그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몇 개의 이론 수업을 제외하곤 모두 움직이며 돌아다니는 실기수업이었다. 그런 분위기의 수업을 처음 본 나는 어리둥절했다. 더군다나 지난 2년 동안 들었던 모든 수업이 전공으로 인정되지 않아, 졸업을 하려면 앞으로 모든 과목을 의상 전공으로만 들어야 하는 가차 없는 운명에 놓여있었다. (이론 2과목을 빼고 모든 과목이 실기였다) 젠장 살 금방 다 빠지겠다. 이런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행히 금방 친구를 사귈 수 있었는데 나처럼 과를 바꿔 들어온 친구 김은영이었다. 한눈에 봐도 평생 살 한 번 안 쪄본 친구였다.


"너는 어떻게 먹길래 살이 안 쪄?"


내 관심은 당연히 이거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매일 점심을 같이 먹던 은영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은영이는 많이 먹지 않았다. 편식이 있는 친구였는데 특히 계란은 절대 먹지 않았다. 아니 왜. 은영이가 말하길 비둘기를 싫어한다고 했다. 이가 버글버글 들끓는 비둘기가 푸드덕 거리며 날아다니면 이가 떨어질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쳐 새를 몽땅 싫어한다는 이야기였다. 새의 친구 닭도 싫고 그 닭이 낳은 계란은 고로 먹을 수가 없다는 논리.


아. 그렇구나.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계란 대신 먹어주기. 어떤 메뉴를 골라도 으레 계란이 들어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계란을 빼달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온통 내 차지가 되었다. 어쩌면 이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의외로 내가 계란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나는 매일 2-3시까지 깨어 과제를 했다. 매일 패션드로잉을 그리고 재봉질을 하고 패턴을 그리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뭔가를 만들고 싶었던 내 적성에 꽤 잘 맞았는지 다행히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밤마다 열정을 불태웠다고나 할까.


눈앞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니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은 조금 수그러 들었지만 그렇다고 다이어트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 한순간도 다이어트는 내 시야에서 살아진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대망의 마지막 학년이 다가왔다. 조금 있음 졸업사진도 찍어야 하고 취업도 해야겠지. 안 되겠다. 다시 한번 박차를 가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학교 4학년, 어느새 10년 차에 들어선 나의 다이어트는 한마디로 정체기였다. 적게 먹고 열량을 소비하면 된다는 단순한 진리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 단순한 진리 사이에 먹방신으로 갈등하는 자아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될 노릇이 없었다. 무언가를 바꿔주어야 했다.


7700칼로리는 1킬로그램
내가 과학적으로 신봉하는 단 하나의 명제다.



게다가 두 번에 걸친 다이어트의 성공은 나를 무섭게 살찌는 체질로 바꾸어 놓았다. 내 몸은 들쑥날쑥 요요 그 자체였다. 먹고는 싶은데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머리 한 구석엔 늘 먹을 것이 동동 떠다녔다. 어느새 이 지난한 다이어트는 내 머릿속에 들어온 먹방신과의 끝없는 싸움이 되고 있었다.


바로 이때, 구세주와도 같은 엄마가 나타나 말했다.


"너, 살 빠지는 약 먹어볼래?"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어떤 약이나 보조수단을 이용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끊임없는 먹는 양 조절과 운동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런 약이 설마 있겠어.라는 생각 생각을 했지만 나는 단박에 외쳤다. 약 먹을래!


파란 알약이었다. 한 번에 한 알 하루 세 번.


약을 먹어서 그런지 느낌상 그런 것인지 이상하게 식욕이 돌지 않았다. 어째 속도 메슥거렸다. 약간 어지러운 듯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2주 정도가 지나니 5킬로그램이 빠져있었다. 오 예!


그날 밤, 그것이 알고 싶다 비슷한 류의 방송을 보게 되었다. 후드득, 파란 알약이 종이 위에 흩뿌려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게 바로 신종 다이어트 마약이다. 남대문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아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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