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살을 빼지 않는다. 이유는 살이 다 빠져서다. 우하하하. 이렇게 웃고 있는 나에게는 죽기보다 싫었던 처절한 다이어트사가 존재한다. 꺼내기도 지긋지긋한 그 이름 다이어트. 이 단어가 내 인생에서 사라져 나는 더없이 기쁘다.
때는 바야흐로 14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자기 생긴 것에 관심을 가지던 무렵. 그날. 나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너희 둘이는 참 달라."
찌지직. 순간 전기에라도 감전된 줄 알았다. 애써 참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14살 소녀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 심하게.
그 당시 나는 만나보기도 어렵다는 6촌 언니와 같은 방을 쓰며 지냈다. 언니는 엄마가 운영하는 매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나이는 꽃다운 21살, 자그마한 얼굴에 동양적인 눈매, 고른 치아를 가진 날씬한 체구의 여성이었다. 흡사 하얗고 작은 고양이 같았던 언니. 난 언니가 좋았다.
사춘기에 막 들어선 아이가 자기의 감정을 모두 쏟아부어도 한 치의 모자람 없이 다 받아주었던 언니. '사랑받는다는 게 이런 걸까'를 알게 해 주었고, 말 많고 철없던 나를 아껴주던 언니. 엄마에게 풍족하게 받지 못한 사랑을 언니에게 대신 받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니 내가 더 사랑했다. 향미언니를.
그런데 난 언니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무엇이 다른데.
당연히 우린 만나보기도 어려운 6촌 사이니까 생김새부터가 완전히 달랐다. 나로 말하자면 통통한 체격에 아직은 더 먹고 자라야 하는 이제 갓 중학교 1학년이 된 애송이였다. 뚱뚱은 아니었는데 통통은 했다. 한참 커야 해서 그랬는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배가 몹시 고팠다. 매일 냉면대접에 밥 한 그릇을 비벼먹고는 잠을 퍼잤다.
그렇게 자다 보면 저녁인지 아침인지 분간이 가질 않아 어슴푸레한 노을에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간 적도 있다. 정신없이 먹고 자며 불쑥불쑥 크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그 당시 언니를 흠모했을지도 모를 한 정체 모를 오빠가 던진, 그 청천벽력 같던 말 한마디는 나에게 정확히 이렇게 들어와 박혔다.
너희 둘이는 참 달라. (언니는 날씬한데, 넌 뚱뚱해)
그렇다. 이렇게 멋대로 해석한 이 한 문장이 나의 20년을 통째로 먹어버렸다. 아, 억울하고 분하다. 나는 한창 커야 했다. 그런 어린 소녀 앞에서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서슴없이 해버리다니. 넌 누구냐. 기억도 나지 않는 넌. 앞으로 말 좀 조심하고 다녀라. 부디.
그날 나는 아무도 보지 못하게 속으로 많이도 울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울며 불며 눈물 콧물을 뺐다. 지금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는 걸 보니 충격은 충격이었나 보다.
그날 이후로 키가 한창 자라야 하는 소녀에게는 그 당시 유행하지 않아서 들어보지도 못했던 다이어트가, 그래, 살 빼기가 인생 최대 미션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할 것이 얼마나 많았는데 온 신경을 살 빼기에 썼단 말인가.
우리는 살면서 알게 모르게 남의 말로 상처를 많이 받는다. 작은 돌멩이에 개구리 한 마리가 맞아 죽는 것처럼 말이다. 그건 어쩌면 의도하지 않았던 타인의 무심한 한 문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름의 해석을 한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말이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 뜻으로 해석하는 건 아니다. 그냥 인정사정없이 날아와 그렇게 꽂히므로 그렇게 해석되는 거다. 그날의 그 문장도 그랬다. 그리고 내 인생 죽을 것 같았던 20년의 다이어트는 그 길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