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춘기소녀의 다이어트

by 이다

"너희 둘이는 참 달라"

기억도 나지 않는 오빠가 한 말을 뼈에 새기며 '내 반드시 살을 빼주리라' 절치부심했던 사춘기 소녀.

이 별 것 아닌 문장을 "넌 뚱뚱하고 언니는 날씬해"라고 오역한 나의 다이어트는 첫 시작부터 실패였다.




사춘기 소녀의 다이어트는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다. 우선 살을 빼기로 결심은 했는데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다이어트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떠오른 사람은 엄마였다. '살찌는 더러운 팔자를 타고났다'던 엄마는 참 열심히도 몸을 움직였다. 엄마가 하던 동작을 떠올려 봤다. 쫄쫄이를 입고 신나는 음악을 튼다. 구령 소리에 맞춰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배를 튕긴다. 그런 동작이 매일 30분 이상은 계속되었다. 엄마도 매일 살을 빼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결과를 내 두 눈으로 본 적은 없었다.


살은 도대체 어떻게 빼는 거지.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14살 소녀의 친구들은 다이어트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누구 하나 터 놓고 말할 곳이 없었다. 그 당시 나의 유일한 해우소였던 단 한 사람, 향미언니를 제외하곤. 어차피 나와 언니가 다름으로 인해 시작된 다이어트니까 언니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아무 죄도 없던 향미언니는 나에게 모진 고문을 당하기 시작했다.


"언니 나 뚱뚱해, 안 뚱뚱해?"

"괜찮아. 안 뚱뚱해"

"진짜?"


이런 대화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오갔다. 그런 질문을 계속하는 나도 '내가 왜 이러나' 답답하고 미치겠는데, 매일 대답을 해주던 언니는 오죽했을까. 그 수고로움을 알지 못했던 나는 강박증세까지 보여가며 잠이 들 때까지 끈질기게도 물어봤다.


"언니 나 뚱뚱해, 안 뚱뚱해?"


그렇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기도 전에 난 이미 강박증 환자가 되어 있었다. 뻔한 답을 기다리면서도 그 답이 나오지 않을까 봐, 매일매일 확인 질문을 재차 해댔다. 그만하라고 소리 한번 칠법한데도 언니는 끝까지 웃으며 말해줬다.


"괜찮아, 안 뚱뚱해"


이 문장은 하루라도 안 들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만큼, 알 수 없는 불안에서 나를 건져주는 유일한 말이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현실의 모습이야 어떻든 언니와 다르다는 그 말만이 떠올랐다. 목표는 단 하나, 그저 언니처럼 날씬해지고 싶다. 허리 24인치의 가늘가늘한 스물한 살 그녀가 부럽다. 언니 바지에 다리를 욱여넣어봐도 언니처럼 예뻐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통통하고 짧은 다리만 드러났다. 엄마는 "넌 사춘기라 지금은 옷 사기가 애매해. 맞는 바지가 별로 없어서 옷 사기가 힘든 때야"라며, 활활 타오르는 불에다 기름을 들이부었다. 이 말은 "네 다리는 아직 짧고 통통해서 맞는 바지가 없다"로 들렸다. 지금은 널린 게 청소년 옷인데 왜 그때는 그렇게 찾기 어려웠을까. 한참을 더 커야 하는 성장기의 소녀는 통통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아무런 정보가 없던 소녀는 첫 번째 다이어트 방법으로 굶기를 선택했다. 많이 먹어서 통통한 거라면 안 먹고 빼주겠어. 배가 고파도 끝까지 참는 것. 아주 단순한 결론이자 사춘기소녀에게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었다. 안 그래도 더 크려는지 앉은자리에서 밥 한 그릇씩 뚝딱하던, 입맛만 살아있던 소녀에게 음식과의 안녕이란 커다란 고통이었다. 음식을 보고 참아야 하다니.


그러나 결론은 내려졌고, 음식과의 기나긴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 방법으로 성공한 적이 있었던가 되짚어 본다. 어느 여름, 딱 한번 5킬로그램을 뺀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원상 복귀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그렇게 나의 중학생 시절은 자괴감과 더불어 음식을 향한 갈망과 미움, 그리고 강박으로 점철되었다.




별다른 성과도 없는 이 무식한 다이어트 방법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그 당시 사진을 보면 중학생에서 고1로 넘어가는 순간, 몸이 동글동글해진 게 눈에 띈다. 마지막 성장기였다. 키가 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단 말이다.


미워하다 정든다 했나. 음식에 신경을 쓰는 만큼 살이 빠지기는커녕 식욕은 나날이 폭발해 갔다. 그 당시의 나는 교복을 예쁘게 입기 위해선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며 친구들에게 살 빼기를 전파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책상과 책상사이에서 불편한 교복을 입은 채로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귀가 솔깃한 몇몇 친구들은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나를 따라 하기도 했다.


가장 신경 쓰이던 때는 신체검사였는데, 목표 몸무게를 이루기 위해 세명의 친구와 3일간 단식에 돌입했던 적이 있다. 하루 이틀은 괜찮았다. 그런데 3일째 되던 날, 웬일인지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표현하기 힘든 허기가 몰려왔다. 휘청휘청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자동으로 냉장고문을 열었다. 눈이 뒤집힐 것만 같은 허기에 밥통 뚜껑도 열었다.


반찬을 꺼낼 힘도 없던 나는 어둠 속 시뻘건 냉장고 불빛아래서 밥통을 껴안고 음식을 마구 입에 쑤셔 넣었다. 영락없는 호러물의 좀비였다. 다행히도 이런 나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었다. 5분 정도 그렇게 밥을 퍼먹으니 살 것 같았다.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파 잠에서 깨기도 하는구나. 이래서 아픈 사람에게 포도당을 놔주나 보다'


배고파 죽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제대로 실감한 아침이었다.


엉망진창 다이어트를 한 지 6년 차의 나는 드디어 고3. 수능에 집중해야 했기에, 잠시 다이어트를 내려놓기로 했다. 시험 볼 때까지만 나에게 음식의 자유를 허락했다. 그러자 그동안의 설움이 폭발했는지 음식이란 음식은 다 내 입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하루에 도시락을 두 개씩 까먹으며 뱃살을 늘려나갔다. 도시락은 2교시에 미리 까먹고 점심시간엔 친구들 것까지 뺏어 먹으며 음식 사냥을 하고 다녔다. 하루 종일 앉아 있기만 하던 그때, 어느 날부턴가 숨만 쉬어도 교복치마허리가 툭툭 터져나갔다. '괜찮아, 수능만 끝내자, 지금은 어쩔 수 없어' 바느질을 하는 건 다행히도 엄마 몫이었다.


방법을 몰라 선택했던 가장 원초적인 방법, 굶기는 사춘기 소녀의 성장을 멈춰 놓았다. 부작용은 심각했으니 이 다이어트 방법은 무섭게 살이 찌는 몸으로 체질을 바꿔 놓았고, 한낱 어린 소녀를 음식 추종자로 만들어버렸다. 음식 샘이 없었는데 음식을 끝없이 갈망하는 자아가 생겨난 것이다. 잘 못 뿌린 씨앗, 인과응보였다.

머릿속엔 항상 음식이 둥둥 떠다녔다. 떠올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꿈에서도 먹을 것이 나타났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굶으면 안 돼요. 큰일 나요. 처음엔 빠지는 듯 하지만, 음식을 끝없이 갈망하는 자아가 생긴답니다.
그리고 그 자아는 절대 막을 수가 없어요.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요. 그러니 굶지 마세요.
그땐 정말 몰랐답니다. 전 그저 빨리 바뀌고 싶었어요. 다이어트를 오래 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이렇게 오랜 싸움이 될지 몰랐답니다.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보면 통통하고도 앳된 내가 웃고 있다. 미안하다 그 아이에게. 제대로 된 방법을 알려줬어야 했는데, 그땐 내가 방법을 몰랐어. 지금이라면 너에게 친절하게 알려줄 수 있을 텐데. 성과 없는 6년이 지나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다이어트는 시작도 되기 전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