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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날들

독백 아닌 독백

by 나탈리 Jan 30. 2025
서산을 넘지 못한 달님, 왠지 아쉬움이.....


마가 낀 것 같았어. 토요일, 혼자 근무하는 날이라 좀 일찍 출발했는데, 지하철역에서 나와 환승할 버스를 

기다리는 것까진 괜찮았어. 차가운 아침 공기, 바삐 오가는 차량들, 높고 낮은 빌딩 너머로 서산을 향하던 달이 잠시 주춤하는 모습! 무심코 지나치기엔 아까워 두어 컷 정도를 찍었어. 곧 도착할 버스 노선번호 두 개가 전광판에 떴고, 그중 내가 기다리는 버스도 있었어. 됐다 싶었지. 도착 시간을 계산해 보며 무심코 올라탔어. 출근 카드를 찍고 나서부터 해야 할 일이 순차적으로 머릿속을 휘젓고 빠져나갔어. 아무 생각 없이 가다 보니 

버스가 사거리에서 우회전이 아닌 직진 코스를 가고 있는 거야. 화들짝 놀라 주위를 살펴봤어. 

‘이런이런! 잘못 탔네.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나란히 오던 버스 중 뒤의 것을 타야 했는데 앞의 버스를 타고 만 것이었어. 


'유치원생도 이런 실수는 안 하겠다, 바보 아니야?’ 

못마땅해하는 내면의 음성을 애써 무시하며 카드를 단말기에 찍고 가까운 정류장에 내렸어. 택시마저 잡히지 않더군. 체념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어. 아까 갈아탔던 지하철역. 마음은 급한데 아직도 머릿속 악마는 

질책을 멈추지 않는 거야. 썩 꺼지라고 소리치고 싶었지. 다시 한 바퀴 돌아, 버스정류장으로 갔어. 

실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버스 기다리는 동안, 회사 도착 시간을 계산하고 일과를 가늠해 봤어. 

워낙 일찍 나와 지각은 면해도 아침 일이 30분 지체될 참이었어. 시간을 조물조물, 늘렸다 줄였다 조정할 

수도 없는 일이고, 지금 이 상황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한데, 왜 자책하는 목소리와 한숨은 그치지를 않는 

것인지. 낙관론자 같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괜찮아,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이러한 다독임으로 가벼이 넘기겠지? 유감스럽게도 난 그게 잘 안 돼. 

30분 늦어진 토요일의 일과는 더딘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흘러갔어. 퇴근 후에서야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지. 그것으로 마가 낀 토요일은 마감이 되는 듯했어. 


가지에 붙들린 비닐봉지,  자꾸만 감정 이입이......



주일. 교회 식사 당번이라 9시 예배를 드려야 했어. 일곱 시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했지. 그런데, 마음이 

몸보다 앞서간 탓일까? 냉동실을 열다가 사고가 터지고 말았어. 사각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죽이 

엄지발가락을 내리찍은 거야. 지독살스럽게 아팠어. 스프레이 파스를 듬뿍 뿌리고 식사준비를 마쳤어. 

약속은 약속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했어. 지난번에는 일 때문에 동참하지 못하여 무척 송구한 마음이었기에, 엄지발가락 아파서 예배도 식사 당번도 못 하겠다고 말할 수가 없었어. 겨우겨우 예배시간 십 분 전 도착. 심금을 울리는 말씀 새겨듣고, 끝나자마자 주방으로 달려갔어. 절룩거리지 않으려 애쓰며 물어 물어 

임무를 완수했어. 


우리 구역은 나이 드신 권사님들이 많아서 나는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해. 모두가 젊은 일손을 기다리던 참이었어. 얼마 전 식기세척기를 헌물해 주신 권사님 덕분에 일손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일은 많았어. 

애벌세척과 세척기 조작하는 일을 맡아서 했어. 고맙다고, 수고 많았다고 치하하는 그분들 앞에서 나는 몸 둘 바를 몰랐어. 그동안에는 동참에 소극적이었거든. 수저 소독과 정리까지 끝나고는 내심 뿌듯했어. 오후 예배 

마치고 와서 아이들에게 다친 발을 보여주었어. 퉁퉁 부은 엄지발가락의 통증이 심각 수준이었거든. 

아이들은 발이 이 지경인데 교회를 갔냐고, 엄마 제정신이냐고 난리를 쳤어. 딸내미가 발가락 사진을 찍더니 약국으로 달려가 진통제와 연고를 사 왔어. 내일 꼭 병원 가라고, 직장 근처의 정형외과를 검색해서 핸드폰 

앱에 입력해 주는 아이들. 

“뼈에는 이상 없겠지?” 

“그렇겠지, 이렇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아이들 앞에서 열심히 엄지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보였어.


내일 출근이나 할 수 있으려나 슬슬 걱정이 드는 찰나, 딸내미가 냉동실을 열더니 물건들을 전부 꺼내 놓았어. 냉동 상태의 식품이 언제든 흉기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냉동실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 나도 다가갔어. 

"엄마는 가만있어. 말만 해. 내가 다 할 거야!"

언제든 한 번 하긴 해야지, 미루던 차에 이런 사고를 당하고 보니 지난날의 게으름에 새삼 자책이 드는 거야. 냉장고 크다고 좋아할 게 없는 거 같아. 마냥 쟁여 놓고 버리는 게 부지기수거든. 날짜 지난 거, 무작정 쌓아 두고 손도 안 대던 정체불명의 가루들, 아까워 넣어 둔 식재료들을 죄다 꺼냈어. 문제의 죽그릇도 아깝지만 

버리기로 했어. 5킬로가 넘는 음식쓰레기를 처리하고 마음이 몹시 쓰라렸어.


사실, 우리 집 냉장고가 좁아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바로 '사공'이 많아진 이유야. 딸내미들이 성장하고부터 각자 사들인 기호식품이나 간식이나 재료들이 일정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니 좁을 수밖에. 그래도 총주방장은 나니까, 이번 사고도 정리정돈에 소홀했던 내 잘못이지. 무거운 건 아래로, 수평으로 쌓기보다 수직으로 차곡차곡 정리를 하고 나니, 조금 안심이 되었어. 수고했네, 치하를 하며 우리는 씁쓸히 웃었어.

왜 우리는 자극이 있어야 움직이는 걸까 하고......



월요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퇴근길, 정형외과에 갔더니 글쎄, 뼈에 금이 갔다는 

거야. 

"움직일 수 있으니 골절은 안 되었을 거라 믿었는데, 금이 갔다뇨? 우리 몸이 이렇게 허술하게 만들어졌을 

리가 없을 텐데, 세상에나 말상에나! 정초부터 이게 무슨 일이람!" 

의사는 우리 몸의 뼈가 생각만큼 강하지가 않다며 겁을 주었어. 목발까지는 필요 없지만 반깁스를 해야 한다며 4주 동안은 조심하고 될 수 있으면 움직이지 말라 했어. 간호사가 그 자리에서 반 깁스를 해 주는데, 나는 발가락만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야. 종아리와 발 전체를 고정하는 깁스였어. 신발 대용으로 초록색 샌들 비슷한 것까지 겹쳐 신고 추운 겨울에 집에 가야 한다고라? 일할 때나 수면 시에도 항상 착용하라고라? 


그러고 버스를 타면 자리 양보 많이 해 줄 거라고 간호사가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넸어. 울고 싶었어. 아픈 것은 고사하고 창피해서 어찌 집에 가나 싶은 거야. 남편에게 전화를 했어. 택시 타고 오라 하는 것을 그냥 

깁스 풀어버리고 신발 신고 왔어. 병가를 내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그냥저냥 조심조심 움직거리며 몸의 자정작용을 믿어 보기로 했어. 

위로가 필요했어. 위로가. 아버지의 쓰담쓰담이 절대 필요한 날이었어. 정말 이상한 날들의 연속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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