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에 대한 고찰
유미가 쇼핑백을 들고 왔다. 설이라고 선물을 준비해 온 것이다. 다과시간에 곁들이면 좋을 전병 세트! 세
가지 맛에 개별포장되어 하나씩 꺼내 먹기도 좋게 생겼다. 주는 선물이니 받기는 했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연장자가 되어서 먼저 챙겨주지도 못하고 날름 받기가 거북해서일까. 지난 추석 때에도 유명 제과점의
간식 선물세트와 손 편지를 준비해 와 얼떨결에 받았는데, 이번에도 또 그러다니.
휴가 중인 동료 샘에게 사진과 함께 톡을 보냈다.
“유미가 선물을 또 가져왔다고요?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해야겠네. 부담스러워서 원......”
“그럼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코디 선생님의 지도하에 쪽지도 쓰고 선물도 준비해 온 모양인데, 막무가내로 선물 사절입니다,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울 것 같아요.”
톡은 그리 날렸을망정, 한편으로는 선물이 아닌 잘 봐 달라는 뇌물이 아닌가고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반드시 선물을 해야 할 심리적 부담감을 우리가 유미에게 안겨주었던가 하는 반성까지! 갑질까지는 아니라 해도 우리가 유미로 하여금 눈치를 보게 만들었던가, 기억을 조심스레 더듬어도 본다. 그저 정부의
시책에 따라 사회적 일자리 지원 차 일하러 온 유미에게, 유미가 할 만한 쉬운 일을 맡기고 안내해 준 것뿐인데, 무엇이 그리 감사할 일이라고 선물을 절기마다 준비하여 보내시는고?
소박한 명절 선물이니 그저 감사히 받으면 될 것을, 순수하지 못한 탓도 있고, 답례에 대한 중압감도 없을
수가 없으니, 이래저래 심기가 영 편하지가 않은 것이다. 추석도 한참 지나 크리스마스 때 케이크를 사 보낸 것 말고는 따로 답례를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기필코 답례를 해야 되나? 하지만 받고 나서 답례품을 주는 것도 머쓱한 일이고, 선물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이기도 하니, 밸런타인데이를 기다려 볼까?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선물을 안아 들고 마냥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어린애일 수 있다면!
받는 마음보다 주는 마음이 몇 배는 더 행복할 듯한 선물! 받는 이의 표정과 마음과 몸짓을 떠올리며 선물을 만지작거리며 고르고, 포장지를 고민하는 이를 떠올려 보자! 어린 사슴처럼 뛰노는 심장박동은,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디던 순간 콜럼버스가 느꼈을 만한 무한대의 설렘은, 모두 그의 차지가 된다. 머리맡에 선물을
놔두고 내일을 기다리는 그는 꿈나라에서 선물을 개봉하는 지인을 만날지도 모른다. 혹시나 유미도 그러한
꿈을 꾸었을까.
때때로 도가 지나치지 않는 선물은 인간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심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며 매스컴을 오르내리던 어느 고가의 선물처럼. 만일
선물에도 감정이란 게 있다면 선물은 참 억울할 것 같다. 고가의 것이든, 소박한 것이든 만족과 기쁨을 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은데, 건네는 이의 불순한 의도가 섞이면, 선물은 선물이 아닌 뇌물이라는 오명을 입고, 먼지세례 눈총세례를 오롯이 견디어야 하니...... 대가를 바라고 은밀히 건네지는 선물은, 선물로 지어짐을 후회하고 탄식할지도. 격에 맞게, 받을 만한 사람에게로 나를 보내주오, 사람들! 티끌과 먼지에 잊혀 가는 김영란법이여......
선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중소기업의 명절 선물에 대한 비교 동영상’에 대한 감상을 빠뜨리지 않을 수 없다. 네티즌들이 재직 중인 회사의 매출 규모와 직원수와 명절 선물을 올려 달라 하여 제작된 영상인데, 마냥 우습지만은 않은 것이, 빈손으로 혹은 빈약한 선물을 든 채 퇴근하는 입장에서 타인들의 묵직해 뵈는 선물을 비교, 구경해야 하는 심정이 즉시 읽혀서였다.
우선 주인장은 스팸과 카놀라유가 적절히 배치된 선물세트를 표준으로 정했다. 그 정도면 가히 나쁘지 않다며 상품권을 살짝 곁들이면 퇴근하는 가장의 어깨가 올라갈 것이라 평했다. 그 회사 사장님은 기본은 하는
사장님이라 칭찬 낙점! 한우는 오매불망 상등품이라 더 말할 것도 없이 사장님 엄지 척! 단기알바인데도
한우를 받아왔다는 사람은 대박, 수지맞았다, 축하, 축하의 인사 너스레! 신사임당을 늘어놓고 사진을 찍어
올린 사람, 명절 몇 주 전 택배로 과일박스를 받은 데다 두둑한 현금뭉치까지 받은 사람은, 접속자로 하여금 부러움과 질시와 상대적 박탈감의 회오리에 말려들게끔 만들고, 유감스럽게도, 아무것도 못 받은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아무것도 못 받은 사람은 자신을 갈고닦아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주인장의 유머러스하지만 뼈 때리는 충고에, 그런 곳에서는 희망이 없으니 탈출구를 찾아라, 댓글러들의 격려도 빗발쳤다. 와글와글, 요지경 사이버 세상......
아무것도 못 받느니만 못 한 사람들의 하소연도 넘쳐났다. 치약 두 개, 혹은 사과 두 알을 쇼핑백에 담아 오며 눈물이 나오더라는 사람들. 오너 정도 되는 분이, 들어온 선물 중 좋은 것은 미리 자기 몫으로 챙기고, 시시한 것들만 직원들에게 제비를 뽑아 나눠 가지라 했다니, 과연 실화일까? 그런 걸로 거짓 제보를 하는 이는 없겠지. 물론 형편이 닿지 않아 작은 선물도 들려 보내지 못하는 중소기업 사장님들도 있겠지만, 마트에 가 이삼
만원만 주면 묵직한 선물 세트가 널렸는데, 이건 성의가 없는 거지 돈이 없는 게 아닙니다, 사과 두 알, 치약 두어 개 제비 뽑아 들려 보낸 사장님, 이번에 차 바꾸셨다 들었는데 그러시면 안 됩니다. 직원들은 꼭 큰 거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가장들의 기를 좀 살려 주십시오, 반드시 몇 배, 몇 십배의 성과로 보답할 겁니다.
주인장의 성토는 무심코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현실이기도 하였다. 선물이 무어라고......
‘상여금, 스팸 카놀라유 선물세트, 상품권, 유미의 선물까지 받았으니 기본은 했네.’
가족들이 받아온 명절 선물을 늘어놓고 바라보았다. 흐뭇, 또 흐뭇하다. 포장이 예쁘다고 딸들이 사진을
찍고 감탄사를 화려하게 늘어놓는다. 유미와 코디 선생님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긴 한데, 순간 포착을
못했다. 아날로그 세대의 참을 수 없는 순발력이라니! 나는 공직자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고, 유미의 선물은 뇌물이 아닐 거라 99.99999프로 확신하니, 쓸모없는 고민일랑 이만 접고 건설적인 고민에 임하자.
그나저나 유미에게 줄 초콜릿 선물을 어떤 걸로 골라야 잘 골랐다고 소문이 날까나. 평범하지 않으며 기억에 오래 남고, 서로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달콤 쌉싸름한 걸로 골라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