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실에 내려오는 세탁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이불, 시트, 매트리스 커버, 담요 같이 양팔을 활개 치게
만드는 품목부터, 상의, 하의, 그리고 모자, 억제대, 쿠션 커버, 양말이나 손수건 같은 자잘한 것들까지. 가장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종류를 개중에서 꼽으라면 단연 매트리스 커버라 하겠다. 매트리스 커버 중에는 유독 고무 밴드가 쫀쫀한 것이 있다. 반으로 겹쳐 각을 잡아야 하는데, 고무줄에 조여진 가장자리가 동그라미에 가까운 모양이 나오니 손과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최근에 주문한 게 어쩌다 잘못 제작되어
왔고 그냥 사용하는 거라 했다. 이곳 **요양 센터에서는 색깔별로 층과 층을 구분하는지라, 힘이 센 황토색 매트리스커버만 보이면 손아귀에 힘이 잔뜩 들어가며 긴장이 되곤 한다. '나를 이겨 봐. 너의 악력으로는 나를 절대 못 이길걸?' 팔짱을 낀 적수가 상대를 약 올리듯 고무줄은 힘을 자랑하며 호락호락 늘어나주질 않는다. 겨우 모서리 솔기를 잡아 주름을 펴 가며 직사각형으로 접는 데 성공하지만, 그다지 맘에 들지는 않는다. 도를 닦는 마음이 여기서도 필요할 줄이야.
난적(難敵)은 또 있다. 옆선이 홱 돌아간 데다 늘렁늘렁, 흐느적거리는 메리야스 앞에서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싶다.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올을 정리하려 해도 도저히 바로잡아지지 않는 메리야스를 어쩌란 말인가? 살살 달래어 옆선이 삐뚤어진 대로 겨우 네모난 모양으로 접는데 성공! 심 봤다, 를 와쳐야 하나?
이와 달리 착, 착, 착, 착 군더더기 없이 네 번 만에 접어지는 옷은 가장 이상적인데, 고무줄바지나 주름도
없고 단추도 없는 혼방티셔츠가 이에 속하는, 반가운 고객(옷)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옷은 매우 드물고, 열 개 중 일곱 개가량은 뒤집힌 채 내려온다. 거기에 속옷이랑 합체가 된 상태의 옷은 또 어떻고!
뒤집힌 옷을 일일이 뒤집기에는 시간도 촉박하고 해서, 일단 합체된 옷만 분리해 세탁기로 보낸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라 목욕 담당 요양보호사 님들이 편의상 한꺼번에 탈의를 시키는 모양으로, 이런 옷은 세탁과 탈수를 거쳐 건조기에서 수없이 회전을 하는 동안 정전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가, 뒤집고 정리하는 손길을 마구 공격해 댄다. 두서너 차례 손이 더 가야 하기에 마음은 바쁘기만 한데, 그들의 공격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비명부터 내지른다. 정수리로 들어온 정전기가 발가락 끝으로 빠져나가는 찰나의 찌릿한 고통! 비명이 절로 나온다. 정전기 그거, 절대 우습게 볼 일 아니다. ‘마이 아프다!’
따끈따끈한 섬유와의 마찰로 손톱 수난 시대가 펼쳐졌다. 가뜩이나 얇은 손톱이 자연 마모가 되다가, 살과 분리가 되기를 반복한다. 매니큐어를 발라도 백 프로 효과를 못 보았다. 손톱도 마이 아픈가......
십 년 관록을 자랑하는 선배의 옷 접는 모습은 흡사 행위예술 같다. 최소한의 힘을 들여 가만가만, 절도 있게, 신속 명확하게 옷을 정리한다. 곁눈질하다 반하고, 무작정 흉내 내려다 쓸데없이 동작이 크다 핀잔을 들었다. 역시 하수는 고수를 단시일 내에 따라잡을 수 없는가. 십 년 세월을 날로 먹으려 하면 안 된다는 선임은 고수답게 걸음걸이조차 조신하기 그지없다. 마음만 급한 후임은 걸음도 성큼성큼 걷는 반면 그녀는 신선이 구름을 타듯 여유로이 걸음을 옮긴다. 하늘 같은 선배의 하늘을 나는 듯한 걸음걸이는 이미 센터 내에 자자하게
소문이 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선배를 사수라 부른다고 한다. 사수를 잘 만나야 회사 생활이 평탄하게 펼쳐지리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수는 십 년 고수답게 차근차근 업무를 가르쳐 주었다. 색상 별로 수건
구분하는 법, 베갯잇 3등분으로 개키는 법, 상하의, 우주복 접는 법, 이불, 침대시트, 매트리스커버 접는 법
등등. 또 정해진 시간에 맞춰 세탁물을 수거하고, 완성된 세탁물을 배달하는 요령과, 화물용 승강기 사용법
등도 세세하게 일러주었다. 그 모든 것을 하루 이틀 만에 익히기는 무리여서 종이에 적바림해 두었다가 혼동될 때마다 꺼내어 보며 익숙해질 때까지 두뇌에 입력하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까다롭던 우주복도 수월하게 접고, 라벨에 쓰인 숫자를 익숙하게 해독해 내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네임 펜이 지워져 흐릿한 상태에서는 ‘가가 가 같은 경우'가 많으니, 일개 숫자 하나도
이 방향 저 방향 돌려 가며 살펴야 몇 층인지 알아낼 수 있다. 그래서 해독이라는 단어를 굳이 등장시켰다.
접어둔 모서리가 닳도록 꺼내보고 또 보던 종잇장이 이제는 필요 없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일머리가 자리를 잡은 모양으로, 선임의 입에서 왜 그리 서두르냐는 말을 듣지 않도록 손놀림이 노련해지려면 아직 멀었지만, 이제 어깨에 힘을 좀 빼고 업무에 임하려고 한다. 어르신들의 요양 생활에 평안과 정갈한 향기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너의 악력으로는 나의 탄성을 이길 수 없을 걸?’
황토색 매트리스커버는 오늘도 내일도 나를 시험에 들게 하겠지만, 끈질김과 인내로 그 시험을 통과할
거라 어금니를 깨물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