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므네 Oct 22. 2023

18. 마침표를 찍을 용기

마침내 첫 책이 태어났다.

마침내 첫 책이 태어났다. 


인쇄의 기쁨과 슬픔이 있었다. 내 책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어 기뻤고, 내가 원하던 대로 온전히 구현될 수 없음에 슬펐다. 감리를 보지 못한 뒷 페이지 색감은 어두웠고, 인쇄 핀트가 조금 어긋난 페이지가 있는 책도 있었고, 어떤 표지는 위아래 여백이 쏠려있었다. 그리고 오탈자는 어떻게든 나온다더니 정말 봄이'가'를 봄이'냐'라고 되어있었다. 그래도 '봄이냐'는 귀여워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했던 색감은 나만 알고 있으니 됐다.


4년 전, '나도 이런 거 만들어 보고 싶다'라고 생각만 했던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셀러로 나갔다. 부스 밖에만 있다가 부스 안 쪽에서 내가 쓰고 만든 책을 보여주고 팔았다. 

다양한 책, 응원하고 싶은 이야기, 사람. 재밌다. 독립출판의 세계. 흥미롭고, 조금 애잔하고, 멋있고, 통통 튄다. 그들의 책을 사고, 응원하고, 팔고, 또 사고, 팔고, 사고, 사고, 사고, 팔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느낌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로 나도 하고 싶어지는 책을 산다. 4년 전 염원을 마침내 이루었듯, 또 나의 염원을 집에 가져와 잔뜩 쌓아 놓는다. '나도 이런 거 만들고 싶다.'


마침표를 찍기가 두려워 계속 이어 그리기만 했다. 누군가 대신 찍어주길 기다리며.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할지 몰라 제대로 쉬질 못했다. 헉헉. 숨이 가빴다. 인터넷에서만 존재하는 내 만화는 누군가의 스크롤 속에 파묻혀 나조차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마침표를 찍을 용기를 냈다. 스크롤 세상 속 내 만화를 붙잡아 종이 한 페이지에 새겼다. 노션에 자고 있던, 아무도 보지 못하던 글을 다듬어 또 종이 한 페이지에 새겼다. 그렇게 새겨진 176페이지. 책의 무게와 두께, 종이의 질감, 페이지를 사락 넘기는 소리. 내 책이 소진되던 날의 나에게 수고했다고, 편히 숨을 쉬라고 말한다. <용문소로일기>는 내 이야기의 첫 번째 마침표였다. 


숨을 크고 깊게 들이마신다. 길고 편안하게 내쉰다. 마침표를 더 많이 찍고 싶다. 

책을 써야 한다. 쓰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이전 17화 17.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이 끝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