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 여행 기념품은 내 표지
백마, 강매, 야당… 낯선 역 이름을 들으며 중간쯤 읽었던 책 한 권을 완독 했다.
아침에 인스타 스토리로 파주 감리 여행을 간다고 지하철 사진을 올렸다. 노루작가님이 같이 설렌다고 메시지를 주셔서 마음이 따뜻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걸 공유하는데 설렘을 전파하다니, 멋지다.
임 부장님을 만났다. 실물도 역시 친절하셨다. 인쇄소가 이사를 가서 산에 있다고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인쇄업의 흥망성쇠, 디자인과 어도비의 역사, 인생과 육아, 교육, 전원주택의 로망과 실현사이의 간극, 자기 계발과 책.
도착한 인쇄소는 정말 컸다. 주차된 차도 많았다. 직원이 백 명이라고.
큰 인쇄기계 앞엔 내 책 표지를 인쇄한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임 부장님이 내 책은 다음 차례라서 좀 기다려야한다고 인쇄소 투어도 시켜주셨다. 이제 곧 연말이라 캘린더 인쇄가 많다고 했다. 인쇄된 은행달력이 가득했다. 팬들이 만든 모르는 남자 아이돌의 달력도 많았다. 탁상용 달력이 기계 위를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가고 링이 착착 끼워졌다. 신기했다.
공간 끝에 있는 회색 철문을 열고 다른 세계로 들어갔다. 사무실. 각종 상패와 인터넷에서 이미 뵈었던 인쇄소 대표님이 사진 속에서 웃고 계셨다.
인쇄 샘플도 몇개 주셨다. 봄이가 좋아하는 유니콘 만화 책자도 있어 냉큼 집어왔다. 영어지만.
다시 몇 개의 철문을 통과해 아까 처음 왔던 내 책을 인쇄하는 기계 앞으로 왔다. 공부할 때 쓰던 주황색 귀마개를 꽂으신 담당소장님(?)은 조금 어려운 느낌이었다.
약간 임부장님이 매니져처럼 감리를 볼 수 있게 잘 알려주셨다. 가제본으로 뽑았던 책을 두 개를 가져갔다. 보면서 색감을 조정했는데 진짜 감리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인디고인쇄와 옵셋인쇄가 인쇄 방식이 다른 건 알고 있었지만 색감 차이가 컸다. 모조지는 잉크를 많이 먹어 색이 탁해졌다.
C를 내리고 Y를 올리고 m을 내리고. 또 y를 올리고. 자꾸 요청드려서 죄송했다. 그래도 좀 이래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면, 차가워보이 던 인쇄 담당 소장님은 동의하신다는 듯 고개를 짧게 끄덕이셨다. 몇 번의 테스트 끝에 내가 원한 색감이 나왔을 때 내 눈이 걱정스러운 눈에서 사랑에 빠진 눈이 된 걸 느꼈다.
"바로 이거예요! 너무 고맙습니다."
감리하러 오길 잘했다. 내 책은 내가 원했던 색감에 최대한 가깝게 완성될 것이다.
임 부장님께 내지 테스트한 거 가져가도 되는지 살짝 여쭤보니 “그럼 아까 표지도 챙기시지!” 라시며 폐종이통에서 내 표지를 찾아서 돌돌 포장해 주셨다. 감리 여행 기념품이 생겼다.
<감리 기념품 활용>
230925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