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민 Jan 25. 2023

10화. 라바롤러코스터

국사모의고사 점수 2점


나의 학창 시절 다소 유별났다.

국사시간이면, 국사책 밑에 수학책을 끼어 놓는다.

쪼며 푸는 수학문제의 짜릿함 극강이다.

"경시대회에 널 보냈어야 했는데."

중학교 졸업쯤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건넨 말이다.

난 수학을 사랑했다.


당연히, 얼굴도 모르는 왕들의 업적을 줄줄이 외우는 무의미한 일엔 관심이 없었다.

, 국사 모의고사 점수 2점.


나에게 ‘2점’이란 숫자가 충격보다
완장 같았다.

나의 이런 유니크함이 덕후 아니었을까.   

  

그런 나는 수학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을까.

전혀.

야식으로 시킨 치킨값을 남편과 반반 계산할 때만 간간히 연산을 용하고 있다.

삶이 이렇게 아이러니하다.     






나의 이런 모습을, 시후도 갖고 있다.

지금껏 자라며 관심사가 천천히 옮겨가고 있다.

자동차, 공룡, 동물, 놀이동산, 공연, 이것을 망라하는 그림 그리기까지.

게임을 빼앗기고 현재 가장 집중하는 것은

레인보우프렌즈 캐릭터 색칠하기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시작된 레인보우프렌즈 색칠은 취침시간 직전까지 이어진다.

난 그들을 하루 백 명씩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다. 그 녀석들을 활용해 학습으로 유도하고 있기도 하다.

 



오늘은 덕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중 ‘서울랜드 덕후 시절'의 이야기다. 

여기 사전 정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시후는 또래보다 키가 크다.

현재 130cm가 훌쩍 넘어 또래친구들보다 더 많은 놀이기구를 즐길 기회가 제공된다.

두 번째, 역치가 높다.

그래서 웬만한 어지러움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 높은 기대치를 채우기 위해, 우린 주말마다 과천행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끝을 모르던 욕망은 ‘후룸라이드’의 만행으로 끝이 났다.     



시후는 '라바 트위스터'의 광팬이다.

악동캐릭터 등에 올라타 업 앤 다운하며 뱅글 돌아가는 소름 끼치는 움직임에 희열을 느낀다. 우리 부부는 서로 타기 싫어, 라바 캐릭터 앞에서 묵언의 가위바위보를 한다.


이번에 내가 졌다.

남편은 환호성을 지른다.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른다. 절규에 가깝다.

소리 지르는 엄마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운듯하다.


“엄마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는데?”
“아~~~ 소리 질렀지!”
“엄마 무서웠어.”
“시후가 지켜줄게요.”     


놀이기구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만큼, 스위트함도 충만하다. 이 스위트함에 속아, 난 또 라바 트위스터에 올라탄다. 그 마력에 중독됐다.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의 성향 중 하나,

제한적 관심사. 요즘 표현을 인용하면 덕후.


시후는 덕후다.      
덕후를 반기는 이 시대에, 제한적 관심사는 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일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 것을.


같은 상황다른 시선으로 관점이 달라진다.

그에 따른 반응도 극과 극이다.

환호 또는 불쾌감.

슬픈 전개다.


관심을 바탕으로 한 몰입이, 놀이를 통해 삶이 되, 유니크한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



국사모의고사점수 2점을 받은 나는,

왕조계보를 시대라는 수를 기준으로 나열함으로써 거기서 파생 왕들의 업적을 차례차례 다졌다.

그 결과, 국사 95점으로 경찰에 입문하게 되었다.


모의고사에서 국사 1개 맞았던 나는,

경찰시험에서 국사 1개를 틀린 영광을 얻었다.

물론, 국사책을 하루 수십 번 집어던지며 울었던 과거는 비밀이다.  

   

시후의 지금까지의 관심사들은,

개개의 객체에만 집중한 일차원적 놀이에서, 그것들을 융합한 방법으로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얼마 전, 시후의 첫 번째 이야기를 북으로 묶었다. 그리고 표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고뇌 후 내린 결론은, 

"아이색깔을 공표하자."였다.


시후의 스케치와 알록달록 색감이 가득한 그림을 브런치북 표지로 사용했다.

아주 소중한 첫 브런치북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khmcoco



스케치북에 그려 시후삶의 한 장 한 장이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매일의 시후가 증명하고 있다. 


너만의 알록달록한 색감이,

상대에게도 알록달록한 따뜻함을 전해줄 그날을 위해, 오늘도 비범한 눈빛으로 꽉 잡은 크레파스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언제나 덕후 시후의, 1호 팬이다.



이전 10화 9화. 딱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