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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Jan 30. 2023

11화. 사과쨈

언감생심 핫케이크


오늘 아침은 간단히 먹을까?”     

방학이면 찾아오는 우리만의 이벤트,

핫케이크 만들기를 핑계 삼아 아침 해결 프로젝트.

  

오늘 아침 무엇으로 한 끼를 해결지 고민하던 차에 냉동실 한편에 고이 허리를 접은 채 얌전히 박혀있는, 해 먹다 남은 핫케이크 가루를 발견한다.

“우리 핫케이크 만들어 먹을까?”
“좋아요.”     


큰 그릇에 남은 가루를 쏟아붓고 계란 두 개를 거칠게 깨 넣는다. 4명이 먹기 모자란 우유양을 확인하고 물을 넣어 점성을 확인한다.

“시후가 도와줄게요.”
“웅, 아들 살살 저어줘.”


휙휙.

거품기에 매달린 반죽이 거친 움직임에 따라 그릇 밖으로 줄줄이 따라 나간다.

“오, 엄마가 할게.”     


반죽을 적당량 덜어 첫판을 굽는다.

예리한 꼬마 미식가가 광선 레이저를 쏜다.

눈초리가 따가워 손이 떨린다.

휙 하고 뒤집은 반죽이 슬라임 같이 늘어지더니 액체괴물 상태로 뒤집힌다.

어색한 미소로 마주 본다.

“엄마 먹어.”


까칠한 녀석.

항상 이쁘고 깔끔한 것만 드시는 이 양반은 떨어지고 못생긴 건 나의 몫이다.

유치원에선 ‘선생님 먹어.’라고 한다.(죄송합니다)

두 판 세 판 구워지고 솔솔 달콤한 핫케이크 냄새에 기다림에 한계가 온다.

“주라고. 이거 주라고.”     

남편을 급하게 불러 아이들 양을 이쁘게 나눠주 부탁했지만

“같이 먹으면 되지.”

하며 가져가 가위로 서걱서걱 난도질한다. 맙소사.

요리에 클라이맥스는 플레이팅인 것을 그는 모른다.


주방에서 더 빠른 속도로 굽기 시작한다.

먹다 끊기면 끝장이다. 마지막 남은 반죽에 심혈을 기울인다. 마치 처음인 마냥, 혼신의 힘을 다한다.

매우 만족.

뒤에서 보던 꼬마 관중이 또 개입한다.

“시후 거야. 시후가 먹을 거야.”

이쁜 건 칼같이 낚아챈다.

다 굽고 갔을 때 남은 몇 장에 커피 한잔을 더해 먹는다. ‘음. 역시 방학의 맛이구만.’     






방학 중에는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려 애쓴다.

그중 요리는 많은 부분을 채우는 백 점 짜리다.

요리 순서를 기억해야 하는 작업기억
사과를 난도질해야 하는 소근육
천천히 하나가 되도록 섞는 지속적 주의력
잼이 완성되기까지의 기다림


기대 속에 만든 이 모든 것을 무너졌다.

사과쨈 맛없어요. 새 줄 거예요'




뚝딱뚝딱 요리사 우리 엄마는 요똥 딸을 낳았다.

나에게 세상 가장 어려운 게 요리다.

레시피대로 하면 되는 사과잼도 맛없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태어났다.

미각의 문제일까, 손의 문제일까.

그래도 일정한 맛을 유지해 주는 핫케이크가 있어  다행이다.


방학과 동시에 하루 4시간의  잃었. 그러나 여유로운 오전시간을 아이들과 만끽한다.    

핫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훗날 아이들이 커,

‘핫케이크를 만들어 먹으면 오늘을 떠올릴까?’ 하는 생각에 혼자 피식 웃는다.


핫케이크 하나로 엄마 흉내를 낸다.

언감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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