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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마음 Dec 21. 2024

덤은 사양할게요

시장에서 붕어빵을 샀다. 작은 천막 속에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있었는데, 남자는 반죽 담당, 여자는 손님 담당인지 여자가 봉투에 붕어빵을 담았다. 중년을 넘어 노년을 향하는 그들을 보니 겨울바람이 더 차게 느껴졌다. 봉투를 받으려는데 여자가 말했다. “손님, 이건 덤이에요.” 세 개에 천 원짜리 붕어빵, 거기에 덤이라니. 안 받겠다고 사양했지만 여자는 괜찮다며 한사코 한 마리를 더 집어넣었다.    

     

혼자 있는 시간, 집에 돌아와 TV를 틀었더니 지역광고인지 전통시장이 나오고 있었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사고 운 좋으면 덤도 받을 수 있어요. 인심이 후한 곳이죠. 정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상인회 대표 같은 한 남자가 입술이 경련을 일으킬 만큼 활짝 웃으며 홍보를 했고, 배경으로 전이나 떡 등 먹음직스러운 것들이 비쳤다.    


아직도 따뜻한 붕어빵을 베어 물었다. 꼬리가 바삭했다. 그녀의 친철함에 대한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것일까. 요즘 같은 물가에 그 자잘한 붕어를 몇 마리나 팔아야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다고, 참. 희끗희끗한 머리에 주름진 얼굴이 안쓰러웠다. TV 광고에 기준해 본다면 분명 후한 인심이 맞지만, 벼룩의 간을 내먹지 그녀의 덤은 너무 큰 것이라 정을 받은 것이 아닌 내가 민폐를 끼친 것 같았다. 의도치 않게 착취를 행한 느낌이랄까. 크게 마음 쓰지 말고 다음에 또 사면 된다고 미안함을 꾹 눌렀다.      


붕어빵 그녀도 TV 속 어색한 웃음의 그도 모두 장사를 잘해보자는 의도겠지만,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좋은 물건을 합당한 가격에 팔면 되지 왜 인심과 정을 운운할까. 훈훈함을 원한다면 친구를 만나거나 동창회나 동호회에 나가 친목을 도모하면 된다. 그런 따뜻함을 느끼려고 시장까지 찾아가는 이는 없을 텐데. 인사를 나누는 단골도 옛말이지, 시장 내에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나 정을 운운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었다. 내가 줄곧 도시의 아파트에서만 살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들은 꽤 좋다고 강조한 덤은 사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받을 것이라 기대했다가 못 받는다면 실망할 수도 있고, 특히 다른 손님은 다 받았는데 자기만 못 받으면 차별당했다는 불쾌감까지 합세한다. 나만 밴댕이 소가지라서 그럴까.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자신의 것이라 여겼던 것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 더 크다고 하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덤을 주다가 다음에는 안 준다면 기대심리를 배신당한 기분일 테고, 또 덤이 계속된다면 정가가 과연 얼마일지 궁금해질 수도 있다. 밑지고 파는 상인이 어디 있냐고도 하지 않나. 가격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다 피곤해진다.      


운이 좋으면 덤을 받는다고도 했는데, 나는 그런 사소함으로 내 운을 시험하고 싶지 않다. 운이 좋다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거나 대학에 붙거나 취직을 하거나, 그런 큰일에 더 어울린다. 사람마다 인생에 할당된 운이 정해져 있다는데 진짜 행운이 다가오다가 ‘어머, 당신은 떡 한 덩어리를 덤으로 받으셨군요. 이미 운을 사용하셨으니, 패스~’라고 지나가면 어쩌나. 고기 몇 그램, 과일 한 개의 덤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시장도 마트와 백화점처럼 정찰제대로 정확히 팔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과 덤이 아니라 물건의 질과 바가지 없는 정확한 가격,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워야 한다. 정말로 뭔가 더 주면서 정을 느끼고 싶다면 특별세일을 하면 될 테고. 나처럼 덤도 가격 흥정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오히려 머리 아파하는 인간도 있음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TV에서는 훈훈한 인심이 최고라며 여전히 정 타령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혹시 저런 홍보 때문에 붕어빵 그녀도 무리하게 덤을 건네었을까. 겨우 그거 팔아서 뭐가 남는다고, 그녀는 인심과 덤이란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붕어빵 장사가 엄청 돈을 벌어 빌딩을 세우기 전까지는 아무도 덤을 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앞으로 붕어빵을 몇 개나 사야 하나. 아마도 날이 더워지기 전까지 우리 집 간식은 줄곧 붕어빵일 것 같다. 제발 그녀의 덤이 힘을 발휘해 다음 겨울에는 그 천막이 아닌, 제대로 된 가게에서 따뜻하게 장사하면 좋겠다.  다음에 갈 때에는 덤 얘기가 나오기 전에 잽싸게 붕어빵 봉투를 낚아채야지.   

                                                                                     (붕어빵이 맛있었던 몇 해 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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