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을 건너는데 앞서 가는 여학생의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친구인 듯 보이는 남학생 다리가 더 가늘었고, 실례된 표현이긴 하지만 코끼리 다리라고 불려도 항변할 수 없을 만큼 튼실했다. 다이어트가 필요하지 않을까, 예전이라면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랐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골다공증 진단을 받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도대체 나는 몇 개의 병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이게 경력이 된다면 대기업이라도 단박에 붙겠다. 어릴 때 뚱뚱했다거나 살이 붙은 체형은 골밀도가 높고 그래서 골다공증도 적을 확률이 높다는데, 그 여학생은 골다공증 안전지대일 것 같았다. 튼튼한 그녀가 부러웠다. 살이야 새파랗게 젊었으니 운동하면 문제도 아닐 테고. 젊음과 건강,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살면서 한 번도 튼튼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기 때는 언제 죽을지 모를 만큼 아파서 엄마가 나를 싸안고 눈물을 뿌리며 병원을 오갔단다. 그렇게 보자면 이 나이 되도록 살아있는 것이 다행이지만, 나날이 무너지는 육신과 늘어나는 병명을 지켜보는 일이란 영 괴롭다. 안 그래도 두려운 것이 많아진 세상에서 병과 죽음에 관한 공포가 커져만 간다. 중증환자라는 딱지뿐 아니라 현재 나는 정형외과, 내과, 안과, 치과, 피부과를 골고루 순례 중이다.
이런 칙칙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더니 딸아이 표정이 별로였다. 시험에서 실수를 했단다. 점수가 안 나올 거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나도 공부 때문에 속상했던 적이 많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아쓰기에서 틀리면 어린 마음에도 참 분했다. 왜 이걸 틀렸지, 하면서 지우개로 틀린 부분을 빡빡 지우고 다시 고쳐 적던 기억도 있으니 중고등학교 때야 뭐 말할 것도 테다. 하지만 이 나이 돼서 보니 좋은 대학에 못 갔더라도 괜찮았다.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자고 속 편히 지내는 편이 건강에는 훨씬 이득이었다. 공부를 못해도 다른 길은 있었을 텐데. 아이에게 간식을 차려 주고 용돈을 쥐어 주며 말했다. “이미 끝난 거 생각하면 뭐 해. 시험이 뭐라고. 괜찮아. 살면서 더 중요한 일도 많아.”
유튭에서 <김창옥 TV> 강연을 자주 듣는다. 마음이 심란하고 쓸쓸하거나 대책 없이 화가 날 때면 그의 강의를 찾는다. 사람이 건강하면 바라는 것이 많아진단다. 돈도 많았으면 하고 예쁘면 하고 또 남보다 잘나야 하고, 이것저것 욕심을 부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몸이 아프게 되면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생각하게 된다는데. 딱 그의 말이 맞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동경한다고, 사회적으로 성공해 멋진 명함을 내미는 친구, 강남의 큰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사춘기 아이 때문에 열받아서 날마다 달리기를 하고, 더 속상한 날에는 술을 마신다는 친구가 제일 부럽다. 사춘기야 지금은 괴로워도 시간이 해결해 줄 테고, 얼마나 다리가 튼튼하면, 얼마나 에너지가 넘치면, 얼마나 위가 좋으면 그럴 수 있을까. 그런 훌륭한 체력을 나도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다.
비 예보가 있더니만 하늘이 꾸물꾸물하다. 이런 날은 몸이 더 힘들다. 어젯밤에 읽은 100세 철학자의 책을 생각해 본다. 그는 한 세기를 살아왔지만 한 번도 건강했던 적이 없었고, 오히려 날 때부터 병약해서 그 어머니께서는 아들이 스무 해를 넘기지 못할 거라고 걱정했단다. 책을 통틀어 어떤 지혜로운 명언보다도 이 개인적 사정이 가장 인상적이고 마음에 들었다. 나의 병약함과 한탄, 건강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해 본다. 튼튼하지 않아도, 건강하단 말을 못 들어도 괜찮을 테다. 골골거려도 자기 힘과 제정신으로 오래 살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도 제발 그 병약한 철학자를 닮았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