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다만 완주자가 되고 싶어
발로 삼키는 그 맛을 보는 날이, 마침내 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42.195Km.
통증과 흥분 사이
레이스 전날 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샌 건, 어쩌면 러너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하다는 밤이었다. 달씨는 새벽 알람에 피곤한 눈을 힘겹게 떴다. 작년과 달리 다행히 늦는 꿈을 꾸지는 않았다.
창문 밖으로 새벽 빌딩 숲 사이를 사납게 휘젓고 다니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첫 마라톤 아침으로 평소에는 사 먹을 일 없는 객지 편의점의 퍽퍽한 바나나브레드 한 조각과 커피라니.
달씨는 테이핑 한 발의 통증 상태를 제일 먼저 확인하고 진통제 한알 털어 넣었다. 무릎에도 스스로 테이핑을 하고 슬개건 밴드도 장착했다. 허리춤에 끼는 러닝밴드 주머니에는 6개의 에너지젤, 크램픽스 2개, 에네지 젤리, K가 준 에너지바, 집에서 가져오지 않아 전날 구입한 이어버드와 진통제를 챙겼다.
마라톤 엑스포에서 산 처음 본 발가락양말과 카본과쿠션 신발을 놓고 끝까지 고민하다 발가락양말과 쿠션운동화를 택했다. 변비까지 있던 그날의 달씨는 화장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아무튼 출발선에 가보기로 했다. (이것이 대회 중 간이화장실 투어를 부를 줄 모른채.)
달씨는 호텔 룸을 나오며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잠시 유투버라도 된 듯, 이 두 가지는 꼭 지키자고 자신에게 말을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개를 떨어뜨리지 않기.
미소로 오늘을 즐기기.
동네 꼴찌들
한동안 떴던 대회날의 비소식은 사라졌다. 대신 바람이 셀 것이라는 예보답게 호텔 문을 열고 나가자 찬바람이 크게 달씨를 맞이했다. 기온 8-9 도라지만체감온도는 바람으로 더 낮은 새벽이었다.
반팔 반바지 차림, 비에 대비해 챙겨 온 우비를 주섬 꺼내 들고 K와 만나기로 한 메트로 역으로 향했다.
자칭 하와이에서 제일 느린 사람과
확정 애들레이드에서 제일 느린 사람이,
시드니 마라톤으로 향하는 폼과 기세는 거의 올림픽출전하는 선수 못지않다며 키득거렸다.
시드니 메트로는 오픈한 지 한 달여밖에 안 되는 새로운 노선이라 모든 것이 깨끗했다. 갈아타지 않고 몇 정거장만 지나면 바로 출발지로 내릴 수 있는 것도 다행이었다.
러너들도 속속 몰려들었다. 메트로는 러너들로 꽉 차서 앉을자리는 물론 없었다.
달씨와 K는 러너들에 섞여 Victoria Cross 역에서 우르르 하차하여 무리를 따라갔다.
콧물 환영식
시큐리티 가드들이 지켜선 문을 통과하여 들어갔다.
하늘에는 촬영용 헬리콥터 3대가 분주하게 하버링 하고 있고, 간이 화장실의 긴 줄은 더디 줄고, 행여 들어갔다 화장지가 없다고 나오는 러너들과 급히 화장지를 채우는 직원들이 바삐 움직였다.
기다리는 동안 몸을 오들오들, 이를 달그락 부딪힐 정도로 추위에 떠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와이에서 온 K는 미국식으로 세컨핸드샵 (중고물품점)에서 5불짜리 외투를 사서 출발 전까지 걸치고 있다 벗어서 버릴 예정이었고, 달씨는 다소 한국식으로 우비를 입고 바람을 버티다 버릴 예정이었다.
출발선 바닥 전자판을 통과하기 전에 러너들은 입었던 외투들을 길가에 벗어두었다. 그 옷들은 다시 자선단체에서 수거해 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얼죽싱이 대세다. 얼어죽어도 싱글렛. 하긴 아기를 낳고 찬물 샤워에 얼음물 마시는 사람들이다.
달씨는 장갑에 암슬리브를 해도 벌써 콧물과의 싸움이 시작된 듯한 바람의 환영식이었다. 지난번 새벽 대회 추위에 얻은 교훈이 아니었다면 맨몸으로 가지않았을까 싶어 다행이었다.
음악없이 몸의 소리만
엘리트 그룹과 A그룹이 6시 출발 시작한 후 Wave별로 출발했다. 기록이 느리거나 없는 러너들이 속한 달씨의 그룹 E는 기다려도 기다려도 한참뒤에나 출발, 아마도 7시가 거의 다 되여서였을까.
주머니에서 어제 산 이어버드를 귀에 꽂아 음악을 들으려 한 순간 떨어뜨렸다. 한쪽은 찾을 수 없었고 시간도 없어 바로 출발하게 되었다. 달씨는 음악 없이 오로지 몸의 소리만 들어야 할 42.195Km가 되었다.
대부분 걸을 예정인 부상자 달씨와, PB를 향해 돌진할 K는 각자의 페이스로 가기로 하고 행운을 빌며 출발선을 통과했다.
옆에 있는 러너와 스몰토크를 하게 되었다. 달씨가 첫 마라톤이라 하니 미국에서 왔다는 그가 또한 Good luck을 빌어줬다. “Have fun!” 달씨도 말했다.
1-10Km, 눈물 핑
달씨는 천천히 달려보았다. 1K 정도 지점에서 해가 뜨니 몸이 더워져 우비를 벗어 버렸다. 출발부터 하버 브리지까지 내리막길을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기분이란!
하버브리지를 건너는 맛은 작년처럼 좋았다. 1Km 정도 되었을까 싶었는데 벌써 3Km를 지나고 있었다.
"이 발로 벌써 3Km를 달렸다고?" 기특하여 그녀도 모르게 눈물이 핑그르르.
6Km 지점, 첫 번째 임시화장실을 들를까 말까 고민하다 멈추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옆줄에 서있는 연예인 마라토너, 션님을 만났다. “어머~안녕하세요!” 그리 반갑게 손들며 인사를 했더랬다.
“엄마는 왜 전화할 때 목소리가 달라져?” 평소 딸이 말했던 그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처음 본 사람에게 더구나 화장실 앞에서 너무 반갑게 했나 싶어 살짝 민망해하며 다시 갈길을 갔다.
10Km까지의 코스는 하버브리지를 내려와 달링하버를 돌아 하버브리지 아래 바닷가와 오페라 하우스가 펼치는 곳을 지나기에,
햇볕도 찬란한 아침이기에,
이 광경에 자신들이 달리고 있기에,
모두 흥분상태였다.
잠시 멈추어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러너들, 그 광경들도 예뻤다.
아프니 최대한 미드풋으로 착지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쯤 되니 달씨 발에서 신호를 보냈다.
달씨 머릿속에서 한 문장의 물음이 나왔다.
"나는 왜 달리고 있을까?"
숙소에서 나오기 전에 손등에 적었던 것을 바라본다.
10-20km, 단짠 인생 맛집
10Km가 넘으니 달기도 하고 짜기도 하다. 그래서 갈 수 있는 맛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달리고 있는 맛, 응원존에 있는 사람들이 이름을 불러주는 단맛과, 그럼에도 땀을 내며 가야 하는 짠맛, 단짠 그대로다.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에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어디선가 익숙한 음악소리가 크게 나서 보니 한국인 러너들이 스피커 볼륨을 크게 틀고 지나갔다. 호주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풀메이컵을 한 러너들, 그룹으로 달리는 러너들, 등에 Korea라는 글자를 또렷하게 넣은 옷을 입으신 분 등 한국분들이 종종 지나갔다.
발에 통증이 살아나서 계속하는 게 맞을지 고민하는 달씨, 휠체어를 타고 두 손으로 밀고 가는 젊은 여자 러너와 에이지 챔피언쉽 초청을 받으신 70대 할머니 러너와 길을 가게 되었다. 적어도 두 발로 걸어가고 있으며, 70대보다 기력은 좋을 텐데 맛이 있네 없네 타령을 하는 자체가 부끄러웠다.
그들의 레이스는 소금이었다. 살아있는 맛, 다른 사람을 살아나게 하는 맛, 정신을 차리게 했다.
드디어 20Km 싸인이 앞에 보였다. 남은 거리보다 지나온 거리를 세라는 긍정적인 태도를 간직하려 했으나,
"아직도 반도 안 됐다고?!"
이 반응이 먼저 나왔다. 달씨가 속해있는 E그룹 중에서도 끝자락에는 20킬로가 되기 전부터 걷는 자들이 속속 늘어났다.
기록보다는 지금 그곳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격적인 사람들, 달씨와 같은 사람들로 보였다. 아직 반도 안 왔지만, 20Km이라는 숫자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바닥에 에네지젤 쓰레기도 많았다.
20-30Km, 왼발 테이핑 오른발 맨발, 그래도 고!
문제가 있는 발은 왼발이었는데 20킬로가 지나니 오른발에 문제가 인식되었다.
발가락이 얼어붙은 듯 마비증상과 동시에 통증이 생겼다.
‘전혀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인데?’
아마도 ‘새로운 것을 하지 말라’라는 규칙을 어긴 대가였다. 바로 발가락양말. 전에 신어본 적 없고, 사용전 세탁을 하지도 않은 양말을 당일 처음 신어본 것이다. 추위에 발가락까지 열이 전해지지 않은 상태에, 새양말의 마찰까지 더해졌다.
달씨는 도저히 더 갈 수 없어 22Km 지점에서 용단을 내렸다. 멈추어 양말을 벗었다. 어쩔 수 없었다. 아침에 여분양말을 들고 올까 하다 안 한 것도 아쉬웠지만 그녀의 선택이었다. 양말을 벗고 피가 통하니 1킬로 지나 나아진 느낌이었다. 대신 물집을 얻겠지만.
왼발은 테이핑, 오른발은 맨발. 맨발의 러너가 간다.
30Km라는 숫자를 만날 때까지의 그 아득하고도 목막히는 맛,
그렇지만 분명 먹다 보면 어느새 조금씩 줄어드는 뻥튀기 같았다.
30-40Km, '사벽' 이라고? 흥분과 호기심
30Km라는 싸인이 보이는 구간에서 지나가는 한국말이 들렸다.
“아~ 마의 구간 시작이다!”.
한국인 남자 러너들이 하는 말이었다.
‘그렇군.’
여기부터는 달씨가 전혀 경험한 적 없는 미지의 구간. 그녀는 30Km 이상 달려본 적이 없었다. 그 길의시작에 있구나 생각하니 오히려 묘한 흥분감이 생겼다.
이제부터가 그녀의 스토리 같았다. 여기부터가 게임 시작 같았다.
‘Hit the wall, 사벽이라는 것을 나도 만나게 될까?’
‘정말 죽을 듯 힘들까?’
‘어떤 육체적 정신적 벽이 있을까?’
그 길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 궁금해졌다.
이 구간은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센티니얼 파크를 통과하는데, 공원이 또 미워지려 했다. 32Km 지점에서 진통제를 털어 넣었다. 이제 가보자!
그때 옆에 진통제가 필요한 상황으로 보이는 한 남자러너가 절룩 거리며 지나갔다. 발을 다친 것 같고 땀을 흘리며 가는 모습이 너무 고통스러워 보였다. 달씨는 그에게 혹시 진통제 필요한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다 싶어 참고 지나갔다.
한편 30Km를 지나 두 발로 달리고 있는 자신에게 칭찬을 듬뿍듬뿍해주었다.
그때부터는 한발한발이 감사였고 기도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계속 말했다.
‘끝은 있다. 끝은 있어. 조금만..’
이것 밖에 다른 위로가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사벽의 맛을 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았기, 아니 못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느린 러너가 갖는 혜택이었다.
40km, 심장과 발을 뛰게 하는 그대들이여
드디어 믿기지 않는 ‘40’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보태닉 가든을 통과하는 코스에 있는 40Km 지점.
거의 다 왔다. 정말 다 왔다.
이 코너를 돌아 한번 더 돌면 내리막길 끝에 오페라 하우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 결승선이 있다. 곧 지나고 끝낼 것이다.
시간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빨리 가고 싶다고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닌 느린 달씨는 궁금하지만 한 번도 체크하지 않았다. 괜스레 좌절하거나 조급해할 것 같았다. 남은 거리, 그녀는 달렸다. 전속력은 할 수 없었지만,할 수 있는 한 달렸다.
도로 양쪽에 이름을 끝없이 불러주며 응원해 주는 사람들은 그들이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까?
촛불이 꺼져가는 것을 촛불 자신이 도울 수 없지만, 살짝 불어오는 입김에도 다시 살아나듯,
그들은 그런 큰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 입김 덕에 꺼져가는 불을 꺼트리지 않고 결승선으로 밀어주고 있다는 것을!
진하다. 이 구간은 낮은 온도에서 오래 끓인 진한 맛이었다. 살리는 응원도 달리는 러너들도.
피니시 라인, 꺼진 소리가 아닌 살아있는 소리
삐----
의학 드라마에서 환자를 연결하고 있던 심장박동 모니터가 꺼지는 소리와 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피니쉬 라인을 지나는 그 소리는 정반대 의미였다.
“너의 심장은 너무 건강히 펄떡이고, 너는 해냈어.”
라는 소리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피니쉬 라인을 통과했다.
달씨가 경주를 끝낸 것이다.
달렸다기 보단 버티었다가 가깝다.
그녀의 첫 마라톤,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2시간이든 4시간이든 6시간이든 러너들 모두가 42.195Km, 각자의 경주를 마친 것이다.
그토록 원했던, 다만 완주자가 되었다.
달씨는 그것으로 족했다.
완주 후 잠시 바닥에 앉아버렸다. 연주가 끝난 연주자처럼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잠시 바닥에 주저앉아 달리기 앱을 끄고 펄떡이는 심장으로 찰칵 사진을 찍었다, 땀으로 얼룩진 완주자의 얼굴을.
그 사이 자신의 PB를 만들고, 그녀를 오랫동안 결승선에서 기다린 하와이 K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의 눈엔 눈물이 한가득 맺혀있었다. 첫 마라톤의 맛을 아는 마라토너기에 오히려 달씨보다 더 감격한 표정과 감동도 달씨가 기억할 첫 마라톤 완주의 귀한 한 조각이 되었다.
마라톤이란 혼자 해내야 하는 고독한 여정 같지만,
혼자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길 위 누군가의 수고와 봉사, 응원에 의해 한걸음 한걸음 갈 수 있다.
인생을 닮았다는 마라톤의 한 부분인 듯 하다
42.195, 완주의 맛을 들이켰다
그 숫자는 통증, 피곤, 갈등, 허기짐, 도전, 성취, 기쁨, 버팀 등 묘함의 복합체였다.
풀코스 완주의 맛은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만 가야하는 오가닉한 정갈한 꾸밈없는 맛과 동시에, 분명 다시 손가게 하는 강한 중독성의 맛이었다.
그날의 강풍으로 급수대의 종이컵들이 반대방향으로 날아다니며,
달씨를 포함하여 러너들의 모자가 벗겨지고, 먼지가 눈에 들어가고,
몸을 수그려야 했고, 몸이 휘청거렸다.
그런 거센 날씨에도 PB기록을 세운 선수들 멋졌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은 수많은 끈기 있는 러너들, 비록 느렸지만 그중 하나였던 달씨!
고개를 떨구지 않고 앞만 보고,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쓴 자신에게도 박수를 보냈다.
매운데, 자꾸만 손이 가
환한 미소로, 환호성을 지르며, 두 손을 높이 들고, Finisher 티셔츠를 입은 등 위에 메달을 달아 사진 찍으려 했는데, 그중 몇 개는 하고 몇 개는 못했다.
달씨는 피니쉬 장면에서 못다한 포즈하기 위해 다시해야겠다고 웃으며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말했다.
해봤으니 됐다 싶으려나 했지만, 달씨 마음 어느 곳에선 외침이 있었다.
"이 발을 고쳐 다음에 제대로,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