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마라톤, 달리기 꼴찌에서 마라토너까지
오피셜리 마라토너
완주의 쾌감과 흥분으로 아픈지도 몰랐다.
달씨는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절룩이며 호텔로 걸어갔다.
길에서 그녀의 걸음과 메달을 보고 한 아주머니가 격하게 칭찬하셨다.
마라톤 '완주'란 모르는 사람에게도 축하 받는 일이었다.
룸에 들어와 무릎과 발에 아이스팩을 칭칭감고 누웠을때, 모든 것이 꿈 같았다.
"오피셜리 마라토너!"
누군가의 축하 메세지에 가슴이 둥둥 떠올랐다.
진통제가 필요없을 만큼.
메달을 호텔 룸 창가에도 걸어보고, 퉁퉁 부은 얼굴과 함께 거울에 비춰보기도 하고, 완주자 셔츠를 입고 자신을 사진 찍었다.
공항 안 '달씨'들
달씨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드니 공항에 갔다.
완주자 티셔츠를 입고, 어기적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보였다.
씨익 웃음이 나왔다.
마라톤, 사서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라 싶었던 사람들, 이제는 전부 또 다른 '나'로 보였다.
아직도 믿기지 않은 사실이었다. 완주자라니.
개선장군의 흑역사 청산
개선장군처럼 그녀 가족들의 열렬한 축하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딸, 너무 대단하다. 다시는 너 달리기 꼴찌했던 얘기 안할께."
엄마의 전화통화 말에 달씨는 웃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큰 진동이었다.
운동장에서 항상 마지막으로 들어오던 소녀,
이제 42.195Km를 버틴 어른.
흑역사가 사라진 듯 뭉클해했다.
What's Next?
바람이 따스해진 10월 초 어느 봄날,
그녀의 '하프 마라톤 도전'이라는 황당한 도전 얘기를 들었던 그 카페에서 달씨를 만났다.
약 2년 뒤 마라톤을 완주한 그녀를 마주할 줄은 몰랐다.
여전히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완주 후 이상하리만큼 안아팠던 발이 일주일 정도 지나 딛기도 힘들 정도로 아파왔다고.
그녀는 완주 라는 타이틀과 함께 화려한 검사결과를받았다. 발목인대 미세 파열, 힘줄 염증, 관절 물참, 신경 옆 물혹..
"이 또한 지나가겠죠."
여유있게 말하는 달씨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음 계획은 뭐에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음..남반구 호주의 주요도시 마라톤들도 가고 싶고,
한반도에서도 달려보고,
작은 소도시들의 알려지지 않은 아기자기한 길들도 천천히 달려보고 싶고,
사실..세계 메이져 마라톤도, 언젠가!"
말 나온 김에 우르르 쏟아져 나오든 듯 했다.
어른의 달리기
"어른의 달리기를 하고 싶어요."
그녀는 말했다.
그동안 참가했던 작고 큰 대회에서 받은 응원과 경험들,
다시 세상에 돌려주는 달리기.
잠시 멈췄다 장난스레 말을 이었다.
"제가 뛰면요, '적어도 쟤보단 빠르다' 라고 다른 러너들에게 자신감과 자부심을 주잖아요.
얼마나 어른스러워요."
그녀는 참가 자체가 이타적이라는 것이다. 반박 할 수 없어 피식 웃을 수 밖에 없다.
속도보다 과정을 즐기고
기록보다 여정을 즐기는
달리기를 하고 싶다 했다:
달리기하며 쓰레기 줍는 플로깅도 하고,
달씨가 받은 것 처럼 마라톤 대회의
자원봉사자로 물도 주고 응원도 해주고,
훈련을 더 많이 하여
시각장애 러너들 가이드가 되어주고,
실력이 는다면 아주 먼 훗날에는 페이서(pacer)도 할 수 있을까, 상상도 해본다.
또 누가 아는가? '울트라 마라토너'에 도전할 지.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욕심없이(는 무슨)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당선이 되는 꿈도 꿔본다.
상금으로 새 러닝화도 사고, 다음 마라톤 참가비도 내서,
다른 마라톤 이야기도 브런치 스토리에 쓰길 꿈꾼다.
자신만을 위한 달리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달리기,
그녀는 그것을 '어른의 달리기'라 불렀다.
느리지만, 끝까지
언제나 달리기 꼴찌였던 소녀,
중년이 되도록 달리기를 끔찍히 여기고,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채 500미터도 못 달리던 그녀.
다음 마라톤에도 역시 뒷자락을 든든히 (허우적거리며) 지키고,
느리게 버티는 달리기를 하고 있을 그녀.
누군가 마라톤 완주 기록이 뭐냐고 물으면
여전히 자랑할 만한 기록이나 속도는 없는 그녀,
꿈꾸는 속도만큼은 빠르다.
달리기 포비아에서
달리기 포기않는 사람으로.
평생 못할 줄 알았던 달리기라는 장애물을 걷어 치우니
그 자리에 작은 시도들을 하나씩 심을 공간이 생긴다.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더 나은', '더 좋은', '더 새로운' 이라는 단어만 넣으면
삶은 갑자기 도전할 가치가 있는 모험으로 변한다.
삶의 발명, 정혜윤
위시리스트는 여전히 엉뚱해 보이지만,
하나씩 해나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작가의 경고:
이 글을 읽는 당신,
언젠가 운동화 끈을 묶고 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왼발! 오른발! 핫둘핫둘!
지금까지 달씨의 도전을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달씨는 2025년에도 마라톤에 나간다지요.
이번엔 대책 좀 있어야 할텐데요..^^.
어쩌다 에필로그를 읽게 되어 달씨가 누군지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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