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_장거리 연습과 사벽

리니어 파크 (Linear Park)

by 경쾌늘보


테이퍼링


생애 두 번째 마라톤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앞에선 부족한 러닝 마일리지, 뒤에선 햄스트링 통증. 이래저래 부대끼며 요즘 몸도 마음도 편치 않은 달씨다.


테이퍼링(tapering)이라 불리는 기간이 있다. 지금까지의 훈련을 접거나 줄여 몸의 피로를 덜고 근육을 회복시키는 시간이다. 대회 2~3주 전이면 대부분의 러너가 이 시기를 맞는다.


이번 마라톤을 위해 이렇다 할만한 장거리 연습을 못한 채 달씨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9월 말까지는 연습을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다. 온라인에는 마라토너들의 월간 마일리지가 올라온다.

세상에나 한달에 300, 400킬로미터를 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달씨의 마일리지는 200킬로미터도 못채웠다. 반성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달리기는 각자 몸이 허락하는 만큼 하는 수밖에.



누구에게나 계획이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마이클 타이슨)



9월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달씨는 장거리 연습을 위해 전에 30Km 대회를 했던 리니어 파크 (Linear Park)로 갔다. 애들레이드의 작은 리버를 따라 동에서 서로 한 줄기로 이어주는 길따라 나무가 많아 그늘로 갈 수 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대회에는 중간중간 물 보급이 가능하지만 혼자 하는 LSD (long slow distance)는 물과 에너지젤 등 다 챙겨가야 한다. 고심 끝에 다 들고뛰는 것보다 물을 차에 놓고, 차를 주차한 기점으로 동과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를 하고 내리려 보니 맨발! 달씨가 아침에 급하게 나오며 분명 양말 2켤레를 따로 챙겨 나왔는데, 그 양말들이 없는 것이었다. 가져오지 않은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었다. 장거리 달리기 한다는 자가 양말이 없다니..집까지 가기엔 시간이 아까웠던 달씨는 어차피 러닝삭스를 장만을 생각했던 차에 근처 스포츠용품 샵으로 갔다. 이것저것 살피고 골라 드디어 양말 장착. 새 양말과 신발의 궁합이 맞을지 우려되기도 했다.


평일의 리니어 파크는 더욱 조용하고 인적이 없다. 달씨는 구름이 낀 틈을 이용해 동쪽 방향으로 먼저 가기로 했다. 동쪽의 끝은 리니어 파크의 시작점이기도 한 애쎌스톤(Athelstone) 지역이다. 캠벨타운 (Campbelltown)에서 시작해 위로 올라가며 약간의 경사들을 만난다. 사람보다 훨씬 큰 갈대들이 둑을 따라 자라 있고 그 속에서 퉁퉁 소리를 내는 새들의 연주도 간간히 리듬을 더한다. 달리다 보니 아는 분의 집도 지나가고 어느새 동쪽 끝자락에 닿았다. 거리를 보니 10Km가 지났다.

리니어 파크 길


서쪽으로 내려갈 때는 반대쪽 길로 달렸다. "이쯤 찰진 언덕에 집 하나가 있었는데.." 전에 달리며 보았던 집들이 떠올랐다. "내 기억력 살아있군~" 집들도 길도 그대로였다. 이때까지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좋았다. 주차한 곳으로 가면 20Km를 채우고, 거기서 물을 마시고 좀 더 서쪽으로 내려갔다 차로 오면 30-35Km 거리를 채울 수 있음이었다.



사벽을 만나는 방법


차에 도착해 물을 마신 후 다시 움직이려고 했을 때 달씨는 처음 겪는 몸을 만났다. 다리는 타이어를 단 듯 처음 겪는 무거움과 몸 전체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오늘 장거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마음은 말하지만 몸은 계속 브레이크 제동이다. 앞으로도 나가봤지만 몸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햄스트링 통증까지 더해졌다.


영화에서만 봤던 '사벽' (Hit the wall)을 만난 것이다. 에너지 고갈로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상태이다. 기름 없는 차에 엑셀을 계속 밟아봤자 차는 안 나가고 소리만 요란하고 기계만 고장 날 뿐이다. 러너의 몸이 그 상태가 된다. 몸속의 글리코겐이 다 타버리면, 지방이 대신 연료가 되지만 그 속도는 기름 대신 모래를 태우는 듯한 느낌이다. 에너지가 바닥나자, 달리는 건 의지 밖의 일이었다. 달리기 연료가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몸소 배우는 시간이었다.


달씨는 첫 마라톤에서 사벽을 만나지 않아 다행이라생각했었는데, 이 날 그것을 조우하게 될 줄 몰랐다.

사실 사벽을 만날 모든 조건을 갖춘 출발이었다.


* 장거리 연습에 물 보급 없이 20Km를 달렸고,

* 에너지젤은 1번만 먹었다.

* 게다가 아침도 제대로 먹지 않은 채 시작했고,

* 장거리 훈련을 자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더 이상은 의욕도 없고 체력도 안되었다.



기름 없는 차가 도로에서 덜컥 멈췄던 경험이 있는가?

달씨는 그렇게 27Km에서 멈췄다. 테이퍼링 전 LSD는 여기서 빠이.

한숨이 나왔지만 며칠 내 무리해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더 무모해였다.

"마라톤 연습은 여기까지다. 에혀 나도 모르겠다~."

멈추는 것도 훈련인 것으로.



달리기를 하며

멈추고 싶지 않을 만큼 가볍게 달리는 '러너스 하이'를 맛보기도 하고,

한 걸음 내딛기조차 버거운 '벽'을 만나기도 한다.

달리기의 굴곡들이 쌓여 몸과 마음 어딘가에

고르고 단단함을 만들리라 달씨는 애써 위로해본다.



리니어 파크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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