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_일 년에 한 번 쑈타임

로열 애들레이드 쇼(Royal Adelaide Show)

by 경쾌늘보

꼭 비가 오는 축제날


8월 말에서 9월 초, 이때면 달씨는 떠오르는 한국의 농담 한마디가 있다.

"기상청 야유회 날인가?"

일기예보 하는 사람들이 소풍 가는 날에 비를 못 피한다는 우스갯소리.

애들레이드에서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로열 애들레이드 쇼' 기간이 그러하다.

그간 맑기만 했던 하늘이 항상 폭풍과 폭우가 오는 얄궂은 날씨로 변한다.


남호주의 수도 도시 애들레이드에는 상설 놀이동산이 없다.

연회비를 내고 수시로 갔던 에버랜드나 주민혜택 받으며 갔던 롯데월드 같은 놀이동산은 잊어야 한다.

달씨 가족이 이 도시에 와서 당황했던 것 중 하나였다.


이곳 사람들은 놀이동산을 가려면 마음먹고 비행기 타고 골드코스트(Gold Coast)로 가든가 아니면 작지만 그나마 놀이동산이라 할 수 있는 시드니나 멜버른의 루나 파크(Lunar Park)로 간다. 달씨는 처음에는 "대체 어찌하란 말이오."라고 외쳤으나, 돌이켜보면 화려하고 상업적인 놀이동산 대신 무료로 자연과 더불어 있는 놀이터가 동네마다 천지인 애들레이드에서 아이들은 자연 속 놀이터를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삼아 커줬다.


그래도 1년에 한 번, 로열 애들레이드 쇼 (Royal Adelaide Show) 기간은 화두가 된다. 8월 마지막 주 토요일부터 9일간 열리는 남호주의 대표 축제다.

쇼그라운드에는 회전목마와 대관람차가 세워지고, 미술·제과·정원 경연대회의 수상작들이 전시된다.

야외에서는 양털 깎기와 트랙터 쇼, 오토바이 점프와‘가장 힘센 사람’ 대회까지.

소박하지만 정겨운 남반구 버전의 박람회다.



가족 연례행사


달씨 가족에게 이 쇼는 일종의 연례 가족행사다.

매년 “이번엔 뭐가 달라졌을까?” 하며 들어서지만, 사실 늘 비슷하다. 그럼에도 번쩍이는 불빛과 사람들의 들뜬 웃음 속에서 한 해가 지나 이곳에 다시 와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달씨 남편은 매번 뽑기 부스 앞에서 없던 승부욕을 불태우며 커다란 인형 하나쯤은 꼭 따내곤 해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보다 더 즐거운 어른이 된다.

뽑기, 불량식품과 놀이기구 등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로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컸다. 아이들이


로열 애들레이드 쇼의 하이라이트는 쇼백(Showbag)이다.

쇼백을 양손 가득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뭇시선을 받는다. 쇼백은 각종 상품들을 한 가방에 넣어 시중보다 약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종류도 사탕부터 옷까지 다양하다. 달씨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온갖 종류의 쇼백은 다 들고 온 것 같은데 그중엔 바로 버려야 하는 예쁜 쓰레기들이 절반이었지만 쇼핑테라피라며 흐뭇해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올해는, 아이들이 쇼백을 거절했다. 더 이상 쇼백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 나이가 되었기도 하고 쇼백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서로 얘기하는 것들 엿듣게 되었다. "쇼백 살 돈으로 밖에서 맛있는 거 사 먹지." 철이 들었나 싶은 성장의 모습이지만, 한편으로 이제 다 컸다고 친구들이랑 가겠다고 뺄 때가 오리라는 짙은 예감도 밀려왔다.


쇼백 매대 중 한곳


반쯤 왔을까에서 만난 운동


매년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보니, 아이들의 커가는 것 그리고 부모의 나이 들어가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것도 쇼에 가는 이유이다. 사진 속 배경은비슷한데 아이들은 키가 자라 있고, 두 어른의 얼굴은 작년보다 조금 쳐져있다.

쇼의 불빛은 여전한데 아이들의 손에 들린 쇼백은 줄어있다.

인생의 절반쯤, 여기까지 지나온 게 아닐까.


늘어나고 바뀌어가는 기대수명 사회에서 어디가 중간쯤인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달씨는 인생의 중반쯤이라 여기지는 때에 한 운동이라도 만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달리기라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제 갈길 갈수록, 달리기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쇼의 불빛이 꺼져도, 자녀가각자의 삶을 찾아간다 해도, 두 발로 달리는 리듬만큼은 계속 이어갈 수 있다고 당분간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각종 전시 (오른쪽: 자이언트 배)


Royal Adelaide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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