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공원, 웨스트 비치
관찰자의 질문
새들을 자주 볼 수 있어서일까, 유독 새가 많아 보이는 나라 호주에 살며 달씨는 새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그들의 삶의 방식도 궁금해졌다. 날개가 있으나 태어난 지역에서 사는 새들도 있지만, 많은 새들 중 철 따라 이동을 하는 새들에 대해 특히나 그렇다. 왜 매년 북반구 그 머나먼 곳까지 날아갈까. 그리고는 다시 돌아올까. 정착이 없는 삶이 운명이라면 그 삶은 어떤 걸까.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이유
남반구 호주의 철새들은 2월-5월 사이, 북반구가 봄의 생명력이 왕성해질 때 이동한다. 한국에 살 땐 한국이 그들의 목적지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종착역은그 보다 더 북쪽 러시아 극동지역이나 시베리아 지역인 것이 놀라왔다. 한국은 기착지, 경유지이다. 새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구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은여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이다.
새들이 도착한 북반구 초 여름쯤에는 눈이 녹으며 곤충식물성 먹이 플랑크톤 등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즉, 부화 후 새끼에게 먹일 풍부한 단백질 (곤충 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대지역에 비해 뱀이나 맹조류 같은 둥지 약탈자 천적이 확연히 적기도 하거니와, 낮시간이 길어 부모새가 먹이사냥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도 확보할 수 있다.
온도보다 먹이가 번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므로 새들은 이동의 리스크보다 번식 성공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반구 여름이 끝날 무렵 다시 남반구로 돌아와 비번식기를 지내며 재충전을 한다.
달씨는 문득 생각했다. 저 먼 길을 오가는 새들의 이유가 생존이라면, 인간이 오가며 삶을 이어가는 이유는 사랑과 관계이겠지.
닮은 여정
누군가는 태어난 곳에서 살고, 누군가는 살 곳을 택해 이동하기도 한다. 그곳이 어디든, 자신을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더 나을 것이라는 바람으로 날아간다.
새들의 위험 감수가 자신들의 안정과 편의보다 다음세대의 생존을 위해서라니 달씨는 왠지 마음이 짠해진다. 어딘가 닮은 듯한 삶.
오로지 자신들의 육체로만 긴 여정을 해내는 부모새들. 호주에 쉬러 온 새들은 다음 비행을 준비한다. 그들에게 스트레스 주지 말고 물 한 모금이라도 보태주고 싶어진다. 그들의 수고와 노고에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봄소식
축축한 계절 끝에 봄이 세미하게 움트는 남반구의 8월이다.
"올 겨울은 일찍 끝나나? 벌써 봄이 오는 듯 해."
달씨는 반가운 소식이 있어서 더 그럴까 생각했다.
달씨가 사는 동네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벚꽃을 닮은 나무가 핑크꽃을 피운다. 담장 사이로 새순이 삐죽삐죽 나오면 정말이지 강남 갔던 제비들(철새들)이 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런데 올해는 달씨 가족에게 즐거운 선물을 물고 왔다. 한국에 사는 오랜 친구 가족과 달씨 가족의 애들레이드 방문.
철새와 함께온 친구들
8월, 한국이 본격 여름휴가철이 된다. 길지 않은 꿀 같은 휴가기간, 많고 멋진 휴가 옵션들 중 비행기를 갈아타는 수고와 긴 시간을 들여 이 밋밋한 도시까지 와주는 사람들. 달씨는 그들의 선택과 수고 또한 고마웠다. 치열하게 사는 일상에서 잠시 철새와 함께 반대방향으로 날아와 휴식을 갖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특별한 시간. 달씨 가족 역시 이민자의 일상을 순간 잊고 북쪽으로 날아가 가족과 친구들이라는둥지에 잠시 머물다 오면 또 한해를 살아갈 힘을 충전하고 오곤 한다.
며칠간 달씨도 덩달아 휴가모드였다.
함께 걸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좋았다.
동네 산책길, 시내에 있는 갤러리, 흔한 햄버거집, 자주 가는 숲길, 서쪽 해변의 햇살로도 충분했다.
함께 달렸다.
빅토리아 공원 파크런을 함께 달리고, 동네를 천천히 달렸다.
함께 먹었다.
바다가 보이는 해변 카페에 앉아 커피도 마시기도 하고, 김밥을 싸 소풍도 가고, 집에서 바비큐 파티도 하고, 한국에 비하긴 쑥스러운 애들레이드 맛집 투어도 했다.
함께 즐겼다.
귀한 공연도 보고 야밤의 달달한 디저트 타임도 수다도 즐겼다.
함께 걷고, 달리고, 함께 맛있는 것 먹으며 즐기는 일.
그 단순한 동행이야말로 ‘휴가다운 휴가’이겠지.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짧았다.
다시 각자의 하늘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
다음 계절을 기약하며 다시 날아오른다.
자녀들을 위해, 주어진 삶을 위해.
그렇게 또 한 무리의 철새들이, 서로의 마음에 한 계절의 기억을 남긴 채 북쪽으로 날아갔다.
남반구의 한 러너의 휴가도 끝나고, 다음의 일들을 기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