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트레이닝, 교차 운동
'달리기는 어깨로 한다.'
이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달씨는 확신한다.
팔이 올라가지 않으니 달리는 동작도 부자연스럽다.
어깨가 굳으면, 다리도 굳는다.
한동안 왼쪽 어깨에 약한 조짐이 보였지만 잘 올라가기에 의심이 없었다.
그러다 점점 심해지며 결국 자다 깰 정도의 통증까지 갔다. 아침이면 통증이 자신을 깨우는 상황이 되었다. 병원에 가서 진단명을 받았다. Frozen shoulder/ 동결견/ 오십견. 예전에는 오십 세 이상에서 잘 나타났지만 요즘은 그보다 젊은 나이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하여 동결견으로 명칭을 바꾸었다지. 말 그래도 동결, 프로즌 숄더-얼어붙은 듯 어깨에 겨울 얼음이 장착되는 것이다.
동결견을 당하면 불편 없이 무심결에 올리는 어깨 동작들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돌아보게 된다. 헤어 드라이 하기, 머리 빗기, 옷 갈아입기, 주머니에 손 넣기 등등. 기지개는 상상도 못 할 고난이도 동작이었다. 어깨를 들어 올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달씨. 그중 가장 타격은 달리기 할 때였다. 그보다 달리기를 하기 위해 준비할 때부터였다. 무거운 어깨 통증과 씨름하며 일어나서 옷 갈아입는 동작들이 모두 챌린지였다. 그러면 아침 달리기는 점점 멀어졌다.
달리기는 다리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어깨 움직임도 중요하여 어깨로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깨를 움직일 때 통증이 생기니 ‘달릴 맛’도 사라진다. 얼음처럼 굳은 어깨를 녹이는 것은 시간 밖에 없다고 한다.
크로스 트레이닝
언제부터 어깨가 삐그덕거렸을까 달씨는 곰곰이 되짚었다. 작년 첫 풀코스 마라톤 때 주최 측 사진에 찍힌 왼쪽어깨를 부여잡고 있던 자신이 떠올랐다. 달리는데 왜 어깨가 아픈지 모른 채 지나갔고, 그때는 어깨보다 발이 더 큰 문제였기에 발 치료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어깨도 야금야금 안 좋게 병을 키운 꼴이다.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달씨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트레드밀 대신 웨이트 구역으로. 오랜만의 방문인 듯 처음엔 낯설었다. 기구에 앉아 발을 올려보았다. 엄지발가락 부분에 구멍 난 러닝화가 눈에 들어왔다.
“나의 첫 마라톤 완주 신발, 열심히 일했구나. 이젠 보내줘야 할 때가 되었나 봐.”
엎친데 덮친 어깨 부상
달씨가 어른이 된 후 처음 넘어진 일이 생긴 건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오른손에 강아지 끈을 잡고 달리다 튀어나온 바닥 벽돌에 걸렸다.
"설마 넘어지겠어?" 생각한 순간 이미 왼쪽 얼굴까지 바닥을 긁은 후였다.
달씨가 그토록 부르짖은 부상 없는 달리기라 스스로 더 민망했다.
지나가던 운전자가 차를 멈추고 달려와하는 첫마디도
“어깨 괜찮아요?”.
넘어지며 어깨가 땅에 세게 닿아 나뒹군 장면의 목격자였다. 티셔츠 어깨 부분이 찢어질 정도였다.
“하… 하필이면 또 어깨를.”
달씨 입에서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부끄러움에 무조건 괜찮다고 일어난 달씨 얼굴과 무릎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집에 와 이를 본 달씨 아들은 물었다. “엄마, 사자랑 싸우다 왔어?”
러너들이 흔히 겪어 달리기를 멈춰야 하는 부상은
무릎 통증(Runner’s knee), 정강이 통증(Shin splints), 넙다리뒤근 당김 (Hamstring tightness), 그리고 발바닥의 고질적인 족저근막염 (Plantar Fasciitis).
달씨는 이제 그 목록에 ‘어깨’를 조용히 추가하고 싶다. 모든 러너가 겪는 일은 아니지만,
‘달리기를 어깨로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알겠으니까.
부상 예방을 위해 전문가들이 말한다.
“스트레칭은 따뜻한 몸에서, 강한 근육은 꾸준한 휴식에서.”
달래어 가며 달리기
어깨를 달래며, 달씨는 생각했다.
중년의 달리기는 달래며 해야 하는 달리기이다.
“오늘은 쉴까?”하는 마음을 달래야 하고,
몸 구석구석이 보내는 통증을 달래야 한다.
누군가 달씨에게 말한다.
“달리기 안 하고 안 아픈 게 나은 거 아니야?”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또 말한다.
“달리면 자잘한 통증들은 생기지만, 절대 자잘하지 않은 심폐기능이 좋아져요.”
선택의 문제이다. 부상 없이 달리며 심폐 기능까지 쑥쑥 좋아진다면 그보다 좋은 일도 없겠지만,
달씨의 달리기는 생겨나는 통증을 달래 가며 이어가야 한다. 그러면서 몸도 더 알게 되는 것도 부상이 주는 유익?
중년의 달리기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어쩌면 중년의 느림보가 괜한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아도 될 통증을 스스로 만든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편에,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달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하는 궁금증도,
자신에게 도전하고 증명하려는 작은 의지도
서랍 깊은 곳에 두고 있지 않았을까.
Our greatest glory is not in never falling,
but in rising every time we fall. (만델라)
넘어지고, 멈추고, 다시 일어서는 일.
달리기도 인생도, 비장한 각오로 일어서지는 않는다.
다만 멈출 때가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일어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