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_애들레이드 달리기 은근 맛집

모리알타에서, 콜타르 아래에 대해

by 경쾌늘보


겨울 폭포가 있는 모리알타


사람마다 좋아하는 맛집이 있듯, 달씨에게도 달리기 맛집이 몇 곳 있다.

그중 오늘의 메뉴는 겨울 공기와 폭포 소리, 그리고 오르막 한 접시.


줄곧 차를 타고 가던 길도, 달리다 보면 언젠가 차 없이 가보고 싶어진다. 달씨는 가끔 도서관으로 갈 때나 장 보러 갈 때 걷거나 달려가본다. 그러다 옆 동네산에 달려가보는 건 어떨까 생각에, 비가 오지 않는 어느 날 물병 하나 들고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모리알타 공원 (Morialta Conservation Park).

언덕과 협곡, 폭포가 있는 보호지역이다. 모리알타는 이 지역 호주 원주민의 언어로 물(Mori)과 펼쳐진 땅, 평야 (Alta)라는 뜻이라 한다. 애들레이드 동쪽 끝자락, 도심에서 불과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숨은 산책 성지이다.


3개의 폭포가 있고 폭포대로 코스가 나뉘어 있다. 1 폭포는 쉽게 걸을 수 있는 부담 없는 평지가 대부분이라 가족단위에게 인기 있다. 2 폭포와 3 폭포는 초반에 허벅지 터질 듯한 오르막만 넘기면 산등성을 따라 있는 코스이다. 그러기에 경치와 전망이 남다르다. 오르막과 1시간 반 남짓 시간의 코스이기에 하이커들이나 트레일 러너들이 즐겨 찾는 길이다.


달씨 집에서 거리를 재보니 1 폭포까지 7Km 정도이다. 왕복 14Km 정도면 도전할 만한 여정이라 생각했다. 입구까지 가는 길은 차도와 좁은 인도들이 섞여 있다. 그리고 산을 향해 가는 방향이라 조금씩 경사가 높아지지만 돌아올 때는 반대로 조금씩 내리막이니 참고 간다. 길은 참 솔직하다.




신선한 공기 맛집


공기가 서서히 달라짐이 느껴짐은 모리알타 산의 입구로 들어섰다는 뜻이다. 호주의 다른 대도시가 겪는 공기질의 문제와 상관없이 좋은 공기를 유지하고있는 애들레이드에서도 특히나 공기 맛집이기도 하다.


코스의 갈래길에 500년 이상 되어 보이는 큰 유칼립투스 한 그루가 있다. 그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인기쟁이 코알라가 있다는 것쯤은 달씨도 눈치를 챈다. 코알라들은 셀럽처럼 카메라 세례를 받는다. 심하진 않지만 이미 집에서부터 5Km 경사로를 올라왔기에 그 광경을 스쳐 지나치며 1 폭포 코스로 향한다.


남호주의 6월은 한창 춥고 비가 많이 올 때이다. 강수량이 부족하여 늘 '물 부족 국가'를 면치 못하는 호주땅이 촉촉하게 적셔지는 때이고, 여름 내 말라있던 물줄기들에 물이 채워지는 때이다. 곡간에 쌀이 채워지듯 흐뭇한 장면이다. 또한 시내며 협곡에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시즌이기에, 산에 가득한 우렁찬 물소리에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다른 계절 내내 이름만 폭포였던 폭포들에서 물들이 쏟아져 내리고 돌에 부딪혀 물방울들이 튄다. 거대한 물 에너지가 산 전체를 살아있게 하는 그곳을 향해 달씨도 숨을 헐떡이며 달려간다.


도착하여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를 반복하면 폐 끝까지 전달되는 피톤치드 가득한 공기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한국 같으면 약수터가 있을 것 같은 곳이지만, 대신 벤치 하나에 폭포를 보고 마주 앉은 두 노인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 보인다.


1폭포, 바로 앞에서 카드놀이 하는 두 노인
1 폭포 가는 길의 동굴



콜타르 아래에 대해


모리알타 전체에 노점, 가판대도 쓰레기통도 없다. 분명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창이 큰 카페 같은 것도 없다. 그렇지만 젖은 유칼립투스가 풍기는 특유의 향이 가득하고 나뭇잎에 햇살이 닿아 영롱한 산, 그 붉은 사암 절벽들 사이를 달리는 맛이 더 좋다.


숲 길에서 만나는 야생동물들은 코알라 말고도 더 있다. 분명 야생이지만 사람을 피하지 않는 산토끼, 지렁이 대신 발견한 소시지 조각을 놓칠까 조심스러운 쿠카바라 새, 아기 캥거루를 배에 넣고 길을 건너는 엄마 캥거루 그리고 운 좋으면 길 가다 멈추어 가시등을 보이는 야생 고슴도치까지 볼 수 있다. 물로 꽉 찬 시냇물 아래로 숨은 가재를 잡으려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인기쟁이 코알라 발견한 사람들


온갖 나무와 동물들의 생명들로 꽉 차있는 자연 공간에 발길을 둘수록 자연의 섬세함이 감탄스러워진다.


그럴 때면 달씨는 잘 닦여진 아스팔트나 포장도로 위 인간의 편의성과 산업을 위해, 자동차가 다닐 길을 위해 깔아진 '콜타르 아래에 대해' 인사이트를 준 책, 다비드 르 브레튼의 <걷기 예찬>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차들이 쌩쌩 달려가는 아스팔트가 깔리기 전에는 얼마는 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의 삶의 터전인, 흙이었음을.



아스팔트에는 역사도 없고 이야기도 없다. 심지어 그 위에 사고가 일어났다 해도 자동차들은 그곳에 아무런 기억의 자취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버린다. 자동차는 장소와 역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풍경을 칼처럼 자르고 나간다. 자동차 운전자는 망각의 인간이다. (중략)

반면에 걷는 사람은 전신의 감각을 열어놓고 몸을 맡긴 채 더듬어가는 행로와 살아 있는 관계를 맺는 가운데 매 순간 발밑에 밟히는 땅을 느낀다.

P121-122, 걷기 예찬, 데이비드 드 브레튼


숲의 야생들



엄마 캥거루



자연챙김


달씨에게 달린다는 것은 기록이나 성취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더욱 자연을 관찰하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활동이 되어간다. 자연의 귀중함, 보호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과정이 되고 있다는 것이 더 특별해진다.


돌아오는 길목에 단풍들이 물들어 가고 있다. 학교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배움에 열심인 초등학생들, 그들을 태워왔을 담장 아래 자전거들. 생활권 반경 안의 일상들이 재발견된다. 익숙한 풍경에서 온기를 느끼게 되는 일, 그것이야말로 달리기가 주는 또 다른 선물인지도 모른다.


단풍지는 골목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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