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레이드 힐에서, 크로스 컨트리를 보며
크로스 컨트리 스포츠
트레일 러닝이 산과 숲의 자연지형을 그대로 달리는 반면, 크로스 컨트리는 흙길의 초원이나 언덕의 비교적 덜 험한 자연의 흙길을 달리는 스포츠이다. 트레일 러닝 대회는 최소 10Km에서 100-200Km 거리의 울트라 마라톤으로 열리지만, 크로스 컨츄리는 3-12km 거리로 서양 문화에서 학교나 대학교학생들이 참여하는 하는 스포츠이다.
말콤 글래드웰이나 <뛰는 사람>의 저자인 베른트 하인리히, 2년간 매일 달려 지구를 완주한 스토리를쓴 호주 러너 톰 드니스 등 서구권 작가들 러너들의 달리기 소양이 어린 시절 크로스 컨트리로부터 다져진 경우가 많다.
크로스 컨트리 유래와 역사: 19세기 영국의 퍼블릭 스쿨에서 학생들이 즐기던 ‘페이퍼 체이스(종이를 흩뿌리며 쫓고 쫓기는 놀이)’와 ‘헤어 앤 하운즈(토끼와 사냥개)’라는 달리기 게임에서 비롯되었다. 1837년 럭비 스쿨에서 열린 경기가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이후 점차 조직화되어 1876년에는 영국에서 첫 전국 크로스컨트리 챔피언십이 열렸다. 20세기 들어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되었고, 1903년 국제 크로스컨트리 챔피언십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국제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비록 올림픽 정식 종목은 아니지만, 1973년부터는 세계육상연맹이 주관하는 세계 크로스컨트리 선수권 대회가 매년 열린다.
대회를 보며
6월의 어느날, 크로스 컨트리 대회가 열렸다. 달씨는 아이가 참가한 크로스 컨트리 주 챔피언쉽 (State Championship)을 보러 갔다. 대회는 애들레이드 도시에서 50분쯤 떨어진 Oaks 경마장 일대에서 열린다. 지역별 예선을 거쳐 학교 대표로 선발된 학생들이 주에서 몰려든다. 호주는 주마다 사이즈가 크니 같은 주라도 차로 9시간까지 걸리는 곳도 있다. 주 챔피언쉽을 위해 장거리를 무릅쓰고 모인다.
바람은 매서웠고 비까지 왔다. 두툼한 외투 주머니 안으로 자꾸 손이 들어가는 온도. 하지만 선수들은 싱글릿 하나를 입어야 한다. 보기만 해도 몸서리치게 추워 보이는 차림들. 도로 위 대회가 길의 너비상 참가자들이 줄지어 출발해야 하는 것에 비해, 넓은 잔디밭에서 출발하는 이 경기는 각 조마다 모든 참가자들이 나란히 출발한다.
여저저기 시작 전 워밍업을 하고, 대회에서만 살 수 있는 물품들은 장사진을 이룬다. 연령대별로 호출을 하면 함께 모여 출발선에 선다. 코스는 시작부터 언덕 위로 전진이다.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3Km를 달리는 대회. 달리기 좀 한다는 학생들이 모이는 대회인 만큼 긴장감도 느껴진다. 달씨는 긴장한 딸을 격려하지만 함께 마음이 졸이기도 했다. 전에는 달리기 알지 못하는 자의 강 건너 불 구경이었다면, 달리기를 시작하고는 관전에서 공감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출발은 다 함께 시작하는 넓은 길이었지만 결승선은한 명씩 들어올 수 있는 좁은 문이었다. 얼굴이 붉게 일그러지고, 땀으로 머리가 젖으며 최선을 다한 아이들 개개인이 어찌나 안쓰럽고 예뻐 보이는지 몰라달씨는 가슴이 뭉클했다. 어떤 학생들은 토하기까지했다. 3위 순위권에 아깝게 못 들어간 학생들의 절규가 있고, 잘 끝낸 팀원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안아주는 모습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런 대회가 주(State) 별로 열리고, 거기서 선발된 학생들은 전국 대회 (National Championship)에서 경기한다. 달씨 눈에는 단지 학생들의 스포츠 경기 아니라, 달리기를 즐길 수 있는 인적 자원을 쌓아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달리기 문화와 접근성
사실 이런 풍경은 호주만의 것이 아니다. 동네마다 있는 한국의 조기축구처럼, 모임이나 공터에서 아이와 어른이 한 팀을 이루고, 공 하나만 있으면 누군가가 뛰고 응원하며 꿈이 자라는 환경에서 꿈이 자란다. 어떤 나라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팔을 휘두르고, 어떤 나라는 아침마다 광장에서 단체로 춤을 춘다. 인도의 골목은 언제나 크리켓 경기장이 되고, 브라질의 골목은 월드컵 축구 대표들의 어린 시절 훈련장이다. 아프리카 마을의 아이들은 물 길러 혹은 학교에 가기 위해 달리고, 그중 몇몇은 훗날 마라톤 챔피언들이 된다.
동네나 학교, 지역의 소규모 운동 단위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무심한 환경에 심겨있는 가능성들의 저변이자 즐김의 미학이다. 자연스럽게 ‘참여 가능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경험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과정이다. 달리기로 보면 그 사람들이 나중에 마라톤에 등록하거나, 마스터즈 리그에들어가든, 이미 운동을 즐길 수 있는 큰 인력 풀(Pool)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언젠가기록과 도전으로 흘러가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운동을 향한 자연스러운 접근성이다.
달씨는 어린 시절의 달리기 경험이 주는 임팩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았다. 몇몇 잘하는 학생들만 주목받던 체육대회가 학생 시절 내내 반복되었다.
100미터 못하면 다 못하는 것이고, 100미터를 잘 하면 다 잘하는 것이었을까?
당장 못하는 사람에게도 가능성의 저변을 넓혔더라면,
꼴찌에게도 아낌없는 격려로 부끄러움을 겪지 않게 했더라면,
좀 더 즐겁고 덜 부담스러운 방식으로 접근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달리기를 좀 더 일찍 시작해 봤을까, 체육시간 혐오자가 안되었을까, 운동을 시도하는 문턱이 낮았을까?
경기를 마치고 나온 딸을 다독이며 따스한 커피 한 잔을 들고 그런 생각을 했다.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까?'.
*Cross Country는 한국어 표기법에 맞춰 크로스 컨트리 라고 명칭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