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_애들레이드 마라톤

달벗과 애들레이드 시티 중심 코스

by 경쾌늘보


달벗 등장


줄곧 꾸역꾸역 혼자 달리던 달씨.

달리기 3년 차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으니, 바로 달리기를 함께 할 사람이 생긴 것이다.

달씨의 친구라 달벗, 달리기 친구이니 달벗이라 하겠다.

호주에 살며 '파트너'라는 단어를 자주 듣는다. 배우자도 partner, 사업 동업자는 business partner,

달리기 같이 하는 사람은 running partner 등.

그렇지만 달씨는 파트너라는 말보다 순우리말인 '벗'을 좋아한다. 글벗, 달벗, 책벗 등.


달벗의 등장은 드라마로 비유하자면, 러닝 인생에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 것 같았다. 누군가 함께 한다는 낯섦과 동시에, 누군가 함께 하며 공감하며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즌 2의 개막이자 어떤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갈까 궁금해졌다.


함께 달리기를 하라는 말로 널리 쓰이는 아프리카 속담,

'If you want to go fast, go alone. If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

빨리 가고 싶다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가라.


혼자 가도 빨리 갈 수 없다면, 함께 가며 멀리 가는 것도 좋으리라.


달리기에서 가장 좋은 페이스는 옆사람과 얘기하며 달릴 수 있는 정도라고 흔히들 말한다. 옆사람이 없었던 달씨는 혼자 말없이 달리는 것도 힘든데 옆사람과 얘기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궁금했다. 둘은 매주 토요일 아침에 만난다. 달리며 느끼는 힘듦이나 기분들을 순간순간 얘기하기도 하고, 일주일간 있었던 일들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5Km가 끝났다.


달벗은 띠동갑 어린 친구다. 혼자 선뜻 달리기를 시작하지 못하던 그가, 어느 주말 아침 달씨를 만나 함께 뛰기 시작했고, 그 달리기는 어느새 몇 달째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출발점부터 달랐다. 달씨는 시작부터 느렸지만, 달벗은 어린 시절부터 달리기를 서럽지 않게 해온 내공이 있었다. 달씨는 세상에 '원래부터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했다. 그래서일까. 달벗이 자신이 아닌 더 실력 좋은 러너를 만났더라면, 잠재된 재능을 더 활짝 펼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함이 불쑥 찾아오기도 했다. 애초에 느린 러너이기에, 기록이나 속도 그 이상의 기대는 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어서.



함께 대회 도전


달벗과의 하이라이트는 달리기 후 마시는 커피타임.달리며 못 나눈 얘기들은 커피와 함께 이어간다. 한 달 전쯤, 이야기 중 한 번도 달리기 대회에 참가한 적이 없는 달벗이 함께 대회에 나가는 얘기를 했고 해보자는 의견을 모았다.


대회는 5월에 있는 애들레이드 마라톤이었다. 지난 해에 등록하고 발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하고 구경만해야 했던 그 마라톤. 애들레이드 도시 중심부를 달리는 애들레이드 마라톤은 줄곧 8월에 열렸다. 8월에는 와이너리 지역인 바로사 밸리에서 열렸는데, 25년부터 두 대회의 시기를 서로 교체했다.


요즘 들어 어깨가 아픈 달씨는 어깨 핑계로, 일이 바쁜 달벗은 바쁜 핑계로 많은 연습은 못했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 중심부 10Km를 달려보기로 했다.



주객전도, 커피타임 주 달리기 객



애들레이드 마라톤 엑스포


달리기 붐 현상은 애들레이드도 예외는 아니어서 작년 대비 행사규모와 참가자가 대폭 늘었다. 배번 수령도 작년 러닝용품 매장과 달리 시내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열렸다. 달씨는 결혼 10주년 식사 이후 간 적이 없는 호텔이라 둘러볼 겸 두리번두리번, 호텔만 빼고 주변이 바뀌었다. 십 년이면 강산은 변해도 애들레이드는 안 변할 것 같았는데 변하고 있다!


Brooks를 포함한 스폰서가 많이 생겼는지 애들레이드에서 참가한 대회 중 처음으로 러너를 위한 선물꾸러미를 받았다. 에너지드링크와 에너지젤이 들어있다. 한국에서는 마라톤 등록 선물로 고급 운동 셔츠며 양말이며 각종 간식들도 준다는 풍문을 들었으나 호주에서는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한 시도였다.



애들레이드 마라톤 엑스포 @Intercontinental Hotel Adelaide



애들레이드 마라톤 코스


일요일 아침 대회를 위해 여느 때와 같이 토요일 아침에 만나, 다음 날 달릴 코스로 향했다.


코스는 노쓰 애들레이드 파 쓰리(Par3) 골프장 근처에서 출발하여, 시작부터 긴 오르막. 오르막의 끝이 보여 내리막이다 안심할 찰나에 다시 경사진 오르막이 기다린다. 그리고는 내리막을 가다 왼쪽 리니어 파크로 들어가 돌아 나와 시티 안쪽으로 진입한다. 토렌스 리버 강둑을 따라가면 애들레이드 오벌(Adelaide Oval) 경기장 앞에서 피니쉬 한다. 이것은 10Km 코스이고, 하프는 더 복잡하며, 풀코스는 하프를 2번 반복하는 것이다.


크지 않은 애들레이드 도시 중심에서 42.195Km 코스를 만들려니 돌고 꺾는 길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달씨가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풀코스를 하려 하지 않는 이유 아닌 이유이다. 물론, 잘하는 사람들은 비겁한 변명이라고 웃겠지만.





대회 전 날 미리가보는 코스



달벗과 첫 대회


시내 한복판의 대회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멀리멀리주차를 하고 시작점을 향해 걸어가는 인파들 사이에끼어 갔다. 5월의 아침 공기는 썰렁했고, 달씨는 손이 시릴까 장갑을 꼈다. 새로 장만한 온 러닝 클라우드 몬스터 2를 신었다. 지난 한국 방문 때 인천공항에서 울며 산 최신 골전도 이어폰까지 장착하니, 겉모습만큼은 베테랑 러너 같았다.


스타트 라인은 축제 같은 분위기가 확연했다. 풀코스 주자들이 이미 출발했고, 곧 하프와 10km 차례였다. 출발 신호가 울리고 두 사람은 신나게 달려 나갔다. 아마 1km까지는.


“먼저 가! 뒤따라 갈게.”


배가 뒤틀린 달씨는 무리에서 빠져나와 왼쪽으로 비켰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가는 달벗의 뒷모습은 이내 러너들 속으로 사라졌다. 초반 러시 조심하라, 에너지 젤은 언제 먹으라 말해놓고 정작 자신이 달리지 못하는 꼴이라니.


겨우 기운을 회복한 달씨는 조금씩 앞으로 내디뎠다. '어제 연습한 코스인데 왜 이렇게 힘들지!?' 코스는배신처럼 숨겨진 오르막을 드러냈다. 공식이라도 되는 듯 오르막에서는 걸으며, 8km 지점에서 달벗과 잠시 스쳤다.


피니시 라인에 도착했을 때, 달벗은 먼저 들어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첫 대회에 참가한 새내기가 완주자를 기다리는 상황에 달씨의 얼굴은 잠시 후끈 달아올랐다. 달리기를 함께 한다는 건 기쁨도 두 배, 부끄러움도 두 배구나!


두 사람은 메달을 목에 걸고 마라톤 빌리지를 둘러봤다. 사진도 찍고, 웃고, 천천히 걸으며 쿨다운. 첫 메달의 성취감, 그 쾌감은 달씨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진정 이 일을 해냈단 말입니꺄!”
누군가의 그 큰 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게 가장 특별했다. 동반 완주였더라면 더 아름다운 그림이었을까? 달씨는 털털하게 웃었다.


함께 달리며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가족, 그리고 이제 달벗까지.

갇혀있는 것 같은 한 이민자의 삶, 그 지도가 두 발로조금씩 넓혀지고 있는 기분.

달씨는 달리기의 좋은 점 하나를 마음속에 더 추가해 본다.


게다가 10km이지만 애들레이드 대회에도 참가했으니, 이 도시를 외면했다는 미안함도 슬쩍 지워본다.




출발 전 그리고 에피소드 1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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